지금 이종석 장관은 ‘이창호 바둑’ 배울 때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반발, 3월 하순으로 예정된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을 4월로 연기한다고 11일 통보해왔다.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인 권호웅 단장은 “우리는 귀측이 6.15 공동선언과 온 민족의 평화염원에 어긋나게 북남상급회담을 예정대로 할 수 없게 만든 조건에서 부득이 회담을 4월의 적당한 날로 미루기고 하였음을 통지하는 바”라고 말했다.

북측의 통지문은 물론 일방적으로 보내온 것이다. 북측의 이같은 반응은 이미 예상돼온 것이다. 따라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북측이 장관급회담 연기통보를 해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지난 7일 북한 외무성 이근 미국국장이 미국을 방문, 미 재무부로부터 위폐 브리핑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미국의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사실은 9일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부대변인이 “북한이 불법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계속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언한 데서 알 수 있다.

또 10일 뉴욕 타임스는 미국은 6자회담만으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시키기 어렵다고 보고 협상과 함께 북한을 ‘죄는’ 대북재제를 위한 사법적 조치를 준비중이라고 보도, 현재 미국은 ‘대북제재’와 ‘협상’이라는 두 가지 전략으로 북한을 다루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북한은 더이상 미국으로부터 북에 유리한 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핑계삼아 남한정부를 압박, 한미간 균열을 조장하는 동시에 남북대화를 일시 중단함으로써 남한정부를 시험해보려는 계산인 것이다. 즉, “남북관계가 잘 되길 원한다면 남한 너희들이 먼저 나서서 경색된 미-북관계를 한번 풀어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으로서는 남한이 열심히 ‘활약’하는 가운데 북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면 좋은 것이고 잘 안 돼도 한미관계만이라도 벌여놓을 수 있다.

北 통지문 무시하는 게 최선

둘째, 남북장관급 회담의 남측 대표인 신임 이종석 통일부장관을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지난해 6.15 남북공동행사 전 북한은 남한정부의 재외 탈북자 463명의 일시 입국허가와 관련, “정동영 장관은 평양에 발붙일 생각도 말라”고 엄포를 준 다음, 이후 대북 비료지원을 계기로 정장관의 방북을 ‘윤허’해주고 ‘평양 대변인’으로 활용해왔다. 이번 장관급 회담 연기통보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신임 이종석 장관 길들이기의 첫 수순인 것이다.

권호웅의 통지문은 비교적 부드러운 톤으로 되어 있지만, 내막은 이장관에게 친미냐, 친북(친김정일)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면서 “한달간 시간 여유를 줄테니 잘 생각해봐라”는 의미다. 따라서 앞으로 한달간은 ‘이종석 테스트 기간’이다. 이장관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북한의 통지문은 처음부터 무시해버리는 것이 좋다. 지금 급한 쪽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다. 그리고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고 나올 수 있는 지렛대는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몰아가고 중국이 점잖게 타이르면 북한은 나오게 되어 있다. 괜히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한답시고 섣불리 나섰다가 중국의 입지마저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요즘 중국에서 “남한 때문에 도리어 김정일을 다루기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장관 할 일은 권호웅에게 ‘답장’이나 쓰면 돼

한미군사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물론 북한은 당분간 강경전술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미-북간 위폐접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속 원칙적으로 나가면 급한 쪽인 북한이 굽히게 되어 있다.

북한이 아무리 강경전술로 나간다 해도 지금 당장 핵실험 등의 과격행위로 나가기는 어렵다. 그렇게 될 경우 김정일은 미 일 러는 물론 중국과도 완전히 돌아설 각오를 해야 한다. 기껏 해봐야 일시적으로 남북대화를 닫거나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한 두번 ‘장난’ 치는 수준일 것이다.

또 서해상에서 장난을 걸어오면 교전수칙대로 하면 된다.

따라서 이장관은 느긋이 기다리면서 북한이 체면 구기지 않고 내부적으로 ‘항복’해올 때 다시 대화에 나서면 된다. 지금은 바둑계 이창호처럼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줄 때다. 이장관이 지금 할 일은 권호웅에게 ‘답장’이나 써주는 것이다.

내용은 “권단장 고맙다. 인내력 테스트 기회를 줘서…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연락해라. 기다려주마” 정도로 하면 될 것이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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