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통일 대장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북한 사회를 끌어갈 김정일 정권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주체사상은 잊혀진 지 오래고, 당과 행정기관은 유명무실해졌다. 경제시스템과 공장은 주저 앉았으며, 주민들의 붉은 충성심은 하얗게 퇴색했다. 이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통치 에너지는 군사력과 핵무기뿐이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마지막 남은 통치 에너지, 즉 핵무기로 국제사회를 협박해 체제와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모험은 9.11 이후 변화된 국제정세와 미국의 확고한 반테러 전쟁 의지에 부딪혀 오히려 스스로의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이 점차 강화되고 있고, 그만큼 김정일 정권의 생명도 짧아지고 있다.

김정일 정권의 선택지는 두 개뿐

이러한 추세는 김정일 정권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김정일 정권이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투항은 곧 자신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통치수단의 상실을 낳고, 통치수단 상실은 곧바로 체제와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순순히 6자회담에 들어온 후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의 여세를 몰아 미사일 발사, 핵실험, 핵수출 등 강도를 높여가며 핵도발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의 선택지 모두가 결국 김정일 정권과 체제의 붕괴라는 하나의 결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정일 정권의 딜레마가 있고, 우리가 김정일 정권의 붕괴 전에 다음과 같은 일을 끝내야 할 이유가 있다.

김정일 정권 붕괴 전 해야할 일 3가지

첫째, 김정일 붕괴 직후에 벌어질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한반도 위기관리 기구 및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기구의 역할은 김정일 정권 붕괴 직후 북한 내에서 벌어질 권력다툼으로 인한 유혈사태, 민간인 사이의 보복 사태, 급속한 탈북 사태 등을 방지하고 신속하게 치안과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기구에는 한국과 미국, 중국 등의 주변국이 공동으로 참가할 필요가 있다.

유엔이 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으나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국, 미국, 중국 등 주변 당사국들로 구성된 위기관리 기구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둘째, 남한 내에 북한민주화를 위한 전진기지를 구축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 붕괴 전에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일 이후 북한을 끌어갈 새로운 민주정부의 역량을 꾸준하게 준비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내부는 민주세력이 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따라서 남한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 및 남한 내 북한민주화 운동세력을 주축으로 김정일 이후 북한을 끌어갈 민주적 역량을 결집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는 즉시, 북한에 들어가 북한 내에 있는 새로운 민주세력과 연합해 빠른 시간 내에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북한민주세력, 한국, 미국, 중국 등 남북 당사자와 한반도 주변국들은 김정일 이후 한반도의 진로에 대한 전략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매우 어렵겠지만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합의에 임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한반도 청사진’을 만들 수 있다.

민족적 지혜 모아야 할 때

그 합의안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 통일 이전까지는 북한의 사실상(de facto)의 국가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 ▶ 남한과 주변국은 북한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지원한다. ▶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남북 간의 자유로운 통일 논의를 보장해야 한다. ▶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존중한다. ▶ 중국은 한미동맹의 전통과 역할을 존중한다.

우리는 지금 김정일 정권의 붕괴와 북한의 민주화, 그리고 한반도 통일로 이어질 민족적 대장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이나 사건에 일희일비 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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