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 성인 유랑자도 늘고 있다

기자는 지난 9월 6일부터 북-중국경 지역을 순회취재하면서 중국에 온 수 명의 북한주민들을 만났다.

미사일 발사와 수해, 북중관계의 이상신호 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자는 이들로부터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북한주민은 10여년 이상 이어진 식량난과 희망없는 삶에 절망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빨리 전쟁이라도 나서 중국으로 도망가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은 전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는 극심한 먹이사슬로 이제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지금 북한은 7, 8월의 수해를 거치면서 어린이 꽃제비들은 물론, 성인 유랑자들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른 유랑자들은 일을 해서 먹고살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훔치거나 주워먹고 사는 게 목숨을 부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북한정권은 “미국의 세계화는 공화국을 쳐부수는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선전하면서, 주민들을 수령결사옹위로 내몰고 있는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른 주민들의 김정일 정권 혐오감도 더 깊어지고 있다는 것.

최근에 만난 북한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획취재- 북한 민심은 돌아섰다’를 나눠 게재한다.

기자가 여권을 소지하고 친척방문차 합법적으로 중국에 온 북한주민을 처음 만난 지역은 양강도 혜산시 압록강 건너편 중국 장백현 국경지역이다.

그는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최모(45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최근 북한에는 어린 꽃제비뿐 아니라 걸식하는 성인 유랑자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성인 유랑자들과 어린 꽃제비들이 1997년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다시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꽃제비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7, 8월 수해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어른 유랑자들이 늘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성인 유랑자가 급증한 원인은 집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자유롭게(?) 유랑하는 것이 차라리 생존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고 또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출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9. 27 상무’의 실태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9. 27 상무’란 96년 9월 27일 김정일이 꽃제비를 분리 수용하라는 지시에 따라 만든 임시 조직(수용소)이다.

[다음은 최씨와의 인터뷰 전문]

– 성인 유랑자들이 얼마나 늘었나?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다. 장마당과 역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있다. 98년도(식량난 말기)와 비슷하다.

국가가 배급을 못준다고 공식 선포한 일은 없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배급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근로자들은 직장(기업소)에서 월급을 그때 주지 않아도 받을 생각도 안한다. 몇 년째 밀린 월급을 못받아도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다. 이미 체념한 것이다. 또 기업소가 월급도 못준다. 배급도 없고 월급도 주지 않으니 자기 집과 생활터전을 더 지킬 필요도 없다.

그냥 자유롭게 이곳저곳 떠돌며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생존수단이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 그래도 자기 생활터전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생명 부지에 더 낫지 않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화근이다. 집에 있으면 인민반 생활을 해야 한다. 또 공장, 기업소에 출근은 해야 하는데, 이것이 더 부담스럽다. 인민반 생활이란 게 인민군대 원호물자 지원하는 것도 많고 공동자금도 내야하고, 서로 감시하고 감시받는 것이 전부다.

기업소에 나가봐야 월급도 안 주면서 일을 시키고 생활총화(자아비판)나 학습(우상화 사상학습)만 시킨다. 그러니 그냥 앉아서 굶어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 차라리 지정된 거주지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편하고, 그나마 먹고사는 데도 좀 낫다. 집이 없고 직장도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 나이 어린 꽃제비에 비해 성인 유랑자는 어느 정도 되나?

어린 꽃제비가 7 정도라면 어른은 3 정도다. 성인 남녀는 대략 반반 정도 된다.

– 유랑자하면서 어떻게 먹고 사나?

어른들은 시기, 협잡. 도득질로 살고, 아이들은 장마당에서 음식을 덮치거나 주워먹고 산다.

– 사기, 협잡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나?

말하자면 인민군 후방 가족에 사기 치는 것이다. 인민군 후방가족이란 가족중 한명이라도 군에 복무하고 있는 가정을 말한다. 선군정치로 후방가족이 아닌 집이 별로 없다. 후방가족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사기, 협잡이 많다.

예를 들면 군 복무자 가정 환경과 살아가는 실태를 조사한 뒤 “먹을 알이 있다”(뜯어먹을 게 있다)고 판단되면 자녀들이 복무하는 군 부대의 실정도 어느 정도 미리 파악한다. 그런 다음 그 부모에게 찾아가 “(당신 자식과)함께 군복무를 하는데 지금 자녀가 영양실조에 걸려 돈을 좀 가져오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사기친다. 부모가 믿을 수 있도록 그럴 듯하게 말해야 된다.

부모가 사기를 눈치 채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식 문제라 대부분은 넘어간다. 이런 사기는 군에 복무중인 군인들이 실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이미 보편화 된 것이다.

– ‘유랑자’라고 하니, 러시아에서 떠돌아 다니는 집시족이 생각난다.

러시아 집시족과 어째 같은가? 그들은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허용된 한도에서 각자 생활단위를 갖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경제활동도 자유롭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유랑자들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을 잡아서 가두는 곳이 9.27 상무다.

– 그러면 9.27 상무에서 유랑자를 모두 잡아가두면 되지 않는가?

잡아가둬도 어떻게 하든 도망쳐 나온다. 또 9.27 상무가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유랑자들이 많이 늘었다. 지금 집과 일터를 갖고있는 사람들도 언제 유랑자가 될지 모른다.

원래 9.27 상무는 부모를 잃었거나 돌볼 사람이 없는 어린 꽃제비들을 수용시키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생겼다. 그러면 원산, 남포 등지에 있는 보육원, 애육원과는 어떻게 다른가?

보육원이나 애육원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국가가 행정적으로 공식 인정하고 혜택을 주는 곳이다. 9.27 상무는 행정서류도 없고 떠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강제 구금하는 곳이다. 따라서 국가 혜택이 없다. 상무에 동원된 사람들도 유랑자들을 모아 먹여 살리기도 어렵다.

– 요즘 9.27 상무 실태는 어떤가?

그곳에 들어가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저 강제노동 하다가 죽는 곳이다. 대책도 없다. 그곳에 있다가 도망치면 잡아오고, 잡아오면 또 도망치고 한다. 악순환이다. 중국으로 탈출하면 한순간이라도 삶의 목표를 가져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남아 있으면 계속 되풀이 하다 죽는 것뿐이다.

– 그럼, 유랑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밖에 없다. 우리나라(북한)에서는 방법이 없다. 9.27 상무는 각 도, 시, 군마다 하나씩 다 설치돼 있다. 지금 떠도는 유랑자들은 모두 한두번씩 9.27 상무에 잡혔다 도망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등록된 문건서류는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계속)

중국 창바이(長白)=최전호 기자(평북출신, 2003년 입국)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