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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랜드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포스코 경영연구소, 중국의 개혁포럼(차이나 리폼), 일본의 세계평화연구소, 러시아의 현대한국학연구소 등 한반도 주변 한·미·일·중·러의 북한 연구자들이 공동 연구한 ‘북한체제 근대화’ 보고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5개국 6개 연구소는 2005년 6월부터 ‘북한 근대화’라는 주제를 놓고 서울,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등을 오가며 협동연구를 해왔다. 당초 북한측에도 공동연구를 제의했고, 세미나 개최 전 매번 초청장을 보냈으나 결국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6개 연구소의 입장을 종합해 미 랜드연구소가 대표 작성한 ‘북한체제 근대화’(Modernizing the North Korean System. Objectives, Method and Application: 북한체제의 근대화: 목적, 방법, 적용) 보고서는 북한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정책수단을 정치, 경제, 안보, 사회문화 4가지 영역(바스켓)에서 제안하고 있다.
▲ 정치적 바스켓 : (북한에) 새로운 정치적 사고를 도입하고 북한 체제의 진보적인 변혁을 촉진한다. → 북한의 국제회의 참여 독려, 미-북 및 일-북 직접 양자 혹은 다자대화와 이를 통한 관계정상화, 남북한 국제기구의 공동 참여
▲ 경제적 바스켓 : 경제개방, 투명성, 생산적인 기술을 촉진시킨다. → 교역과 투자 자유화, 핵심 프로젝트를 통한 경제 ‘실험’ 독려, 소유권과 투자와 합작 사업을 위한 규정제정
▲ 안보 바스켓 : 군사적인 위협을 감소시키고, 군사적인 신뢰구축을 증진시키며, 북한 내 군부의 역할을 완화하며 지역 안정에 기여한다. → 철저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 화생방 무기 및 기술에 대한 강력하고도 검증 가능한 판매기술이전 금지, 남북한 간 군사력 규모 및 배치에 대한 상호 조정
▲ 사회문화적 바스켓 : 시민사회의 발전을 지원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사항의 충족에 역점을 둠으로써 북한사회와 문화의 진보를 고양시킨다 → NGO 및 전문연구소간 상호교환 방문, 문화교류 및 북한과 국제사회의 종교 지도자들간 상호 교환방문과 정보교환
이 보고서는 현재 미 랜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으며, 저작권은 랜드연구소가 갖고 있다.
한편, 이 보고서는 각각의 정책수단들에 대해 우선 순위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북한 스스로 정책 우선순위를 선택하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랜드연구소 측은 이 보고서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당국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5개국 프로젝트에는 국방대 한용섭 교수와 김연수 교수 등이 참여했다. 지난 6일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김연수 교수를 만나 ‘북한 근대화’ 보고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는 전근대적 특징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 근대화로 갈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며 “5개국 6개 연구소는 합동 연구를 통해 북한이 근대화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정치, 경제, 안보, 사회문화 등 4가지 영역에서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구소들도 북한의 근대화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6자회담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접근을 더 중요시했고, 미국과 일본은 안보적 접근을 더 우선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측에서 영향력있는 연구소가 참가한 것은 북한의 근대화를 촉구하는 중국의 간접적인 메시지로 해석할 수 도 있다”며 “중국은 북한의 현상유지가 아니라 자신들 방식으로 개혁개방을 이루는 것을 대북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북한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국내에서도 ‘북한 근대화론’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은 이미 지난해부터 ‘북한 근대화 구상’을 주제로 북한 전문가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김연수 교수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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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근대화’란 개념이 어떻게 나오게 됐나?
“근대화라는 개념은 근대화 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될 수 있는 특질을 말한다. 변화에 대한 열망, 시장경제 체제 지향, 경제적 개방, 외국과의 교류 확대, 합리성 추구, 교육 제도, 시민사회 형성, 정치적 다원화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근대화는 UN 회원국 중 GDP 상위 70개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 특징이다. 북한측에서는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고 반발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발전된 국가들에서 포착할 수 있는 공통의 특징을 북한이 따라가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현재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인 일인 지배 체제이고, 경제적으로는 자급자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군사적으로는 과잉 군사우위인 전근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북한 근대화론’은 북한의 전근대성을 근대로 옮기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고 있다. 개방화, 시장화, 다원화를 북한 근대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방법론적으로는 북한의 전근대적 특징을 식별하고, 이런 특징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작업의 목적은 북한이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보고 자신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아이디어를 찾아보라는 데에 있다. 근대화를 위한 방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북한의 정상화(Normalization)와 근대화라는 개념을 같이 썼지만 이에 대해 중국 측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럼 북한이 지금 정상이 아니냐는 반박이었다. 중국 뿐 아니라 근대화라는 표현이 북한 측이 더 수용 가능할 것 같다는 측면에서 ‘근대화’로 정리하게 됐다.”
– ‘북한체제 근대화’에 대해 2005년부터 5개국이 공동연구를 해왔다. 총 몇 차례 세미나를 가졌나?
“1차 워크숍은 2005년 6월 랜드연구소에서 열렸고, 2차 워크숍은 2005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있었다. 이 워크숍에서는 북한의 근대화는 세계 정치·경제 체제에 북한을 정상적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또 북한에 변화의 열망을 자극시키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것과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센티브 뿐 아니라 그에 반대되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공유했다.
3차 워크숍은 2006년 5월 베이징에서 열렸는데 이때부터 우리 연구소도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 근대화를 위한 각 연구소의 입장을 개진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이때 북한의 정상화란 용어에 중국이 강하게 어필해 ‘근대화’로 확정됐다.
그해 11월 도쿄 워크숍에서는 3차 회의를 중심으로 대강의 운영 계획이 만들어졌다. 북한의 근대화 시스템에 대해 각국이 코멘트 하는 형식이었다. 2007년 4월에는 서울에서 마지막 워크숍이 열렸다. 이때는 랜드연구소가 북한체제의 근대화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각국이 코멘트를 했다.
보고서가 1년 뒤에야 나온 것은 미국 측에서 여러 가지 대북전략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북한 문제 해법을 놓고 각국이 서로 의견이 많이 달랐을 텐데
“대체적으로 6자회담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중국은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경제적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도 지금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압력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러시아도 경제적 문제에 집중하며, 이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안보적 측면을 더 중시했다. 특히 일본은 북한이 현존하는 안보위협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6자회담이 반드시 성공해야 일북관계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은 실제로 정치, 경제, 안보, 사회문화 영역에서 북한과 교류를 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 10년간 이 4개의 수단 중 경제적인 부문에만 너무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것의 궁극적인 결과가 핵실험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북한이 핵실험을 결행케 하는 의지를 한국이 제공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부분이라고 본다.”
– 이번 프로젝트에는 6자회담 참가국 중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동참했다. 북한의 비핵화 달성 이후 6자회담을 동북아다자안보기구로 발전시키자는 구상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6자회담이라는 것은 북한 체제의 미래에 대한 목표가 없다. 핵문제 해결이라는 우선적 목표만 있을 뿐이다. 6자회담의 진행과정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5개의 분과위가 설치돼 북한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만, 큰 그림만 있지 과정이 빠져있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북한 핵문제를 넘어서 안보적 위협을 발생시키는 체제 내적 속성을 해결하자는데 있다.
지금은 핵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라 있지만 핵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북한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체제의 전근대적 특성에서 비롯되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북한 체제 시스템을 변화하자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 ‘북한체제의 근대화’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북한변화 로드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실용적 접근을 앞세우고 있을 뿐 큰 틀에서의 대북정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용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 개혁개방 확대, 시장경제체제 전환, 남북한 군비통제, 남북관계 제도화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을 추진하는 원칙으로는 먼저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고 국제공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 경제, 안보, 사회 문화 영역의 유기적인 구조화가 이뤄져야 하고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전 정부에서는 포괄적 차원의 통일정책도 부족했다. 새 정부에서는 통일정책에 대한 세부적인 구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센티브 뿐 아니라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도 사용해야 한다. 기다리는 정책도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 북한은 대미관계, 직접적 군사 행동, 남한 내부의 여론 악화라는 3중 압박을 통해 남북관계를 북한의 주도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변화의 속도와 폭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정책도 감수해야 한다.
‘북한 근대화’에 있어 결국 한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주변국의 참여, 비용 문제 해결, 국민들의 지지 획득 등을 위해 정치력의 발휘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과 통합적인 외교력이 필요하다.”
– ‘북한 근대화론’과 ‘북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체제 전환)’는 어떤 상호관계가 있을까?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레짐 체인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 자체는 북한의 정권 교체는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체제나 리더십 변화보다는 보다 광범위하고 근본적으로 북한 체제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대안모색에 관심을 집중했다. 또 ‘정권 교체’ 혹은 ‘리더십 교체’라는 용어가 본래 의도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근대화를 추진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체제의 폐쇄적인 특성과 전근대성 자체가 북한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전근대성을 노출시키면 양자 모두 위협이 될 수 있겠지만 전근대성의 개량 과정 노출을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 북한의 근대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중국 측이 참여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세미나에서 북한의 현상유지가 중국의 정책적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은 북한이 자신들 방식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이 근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간접적인 권고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에서 열린 회의는 북한도 모니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개혁개방 해라’ ‘남측과 관계 개선해라’는 등의 표현은 안하지만 체제의 근대화가 북한이 택해야 할 길이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다.”
– 혹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논의도 있었나?
“워크숍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체제 변환 과정에서 정치변동의 가능성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난 15년간 북한은 능력이 없는 정권이라는 것을 바닥까지 드러냈다. 그럭저럭 (체제를) 연명하면서 안보적 위협으로 근근히 버티게 할 것인지, 원칙적인 체제의 근대화를 유도할지에 대해 생각해 봤을때 답은 자명하다고 본다.
북한은 실패한 국가다. 이제는 김정일이 때려죽일 놈이라는 식의 얘기는 불필요한 논의다. 북한 재건계획이나 국가건설에 대해 논의할 단계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