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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한류여배우 머리 모양 단속” (미국 뉴욕타임스)
“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 영화 최초 상영” (한국 연합뉴스)
지난 달 28일, 미국과 한국의 대표적 언론들은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는 ‘사상 정보전’의 동향을 알렸다.
앞의 보도는 북한 당국이 한류드라마 ‘올인’의 주연 여배우 송혜교의 머리 모양을 단속하고 있다는 내용. 이번 단속은 최근 북한 국내에서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색적 생활 풍습’을 깨는 대중적 투쟁의 일환이다.
후자는 북한 최신작 영화 ‘피 묻은 략패’ 에 관한 보도다. 여기서 ‘략패’란 독도의 약도를 새긴 패를 말한다.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남북 공조’의 물살을 타고, 독도(다케시마) 문제를 이용해 일본에 공동 대처하자는 정치사상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보도가 있기 한달 전, 북한민주화 투사인 김만철씨는 북한의 내부 문서6통을 입수해 북 • 중 국경을 넘었다. 그 중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내부 기밀 문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색적 생활 풍조를 유포시키는 적들의 책동을 철저하게 깨는 것에 대하여’란 제목의 당원 및 근로자 전용의 「학습제강」이 그것이다. (조선노동당 출판사, 2005년 4월). 이 강연 자료에는 단편적인 위 보도의 배후에 숨은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김정일 독재 정권의 존망이 걸린 사상 정보전 – 그 치열한 공방전의 현 국면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다.
북한 내 사상정보전 동향을 알 수 있는 비밀문건 입수
군사전이든 사상 정보전이든, 싸움의 자웅을 결정하는 것은 ‘국력(國力)’이다. 북한은 현재 두 번째의 대기근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국력이 피폐해 있다. 용감한 ‘핵공세’의 한편에서 김정일 체제의 기초는 착실하게 썩고 있다. 국력의 쇠퇴에 비례해, 정치도 부정 부패로 흐트러지고 있다. 정치가 흐트러지면, 당연히 민심도 어지러워진다. 특히 독재 정권의 사상적 기반은 북한 민주화 세력이나 미국 정권에 의한 사상 정보 공세에 크게 침식당하고 있다.
▲ 입수된 비밀문건 |
김정일 정권은 과연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점치는 열쇠 중 하나가, 북한 내 ‘사상 정보전’의 행방이다.
‘RENK’는 이번에 입수한 내부 문서를 기초로 해 현 상황을 분석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일은 현명한 방어전과 반격에도 불구하고, 퇴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후퇴의 시점에서 김정일은 핵을 폐기하거나, 6자회담에 복귀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이번에 입수한 학습제강은 ‘적들이 유포시키고 있는 이색적인 생활 풍조는 어떤 것인가’, ‘이색적인 생활풍조를 유포시키는 적들의 책동을 철저히 짓부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라는 2개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학습 기일과 시간은 ‘4월 하순ㆍ강의 1시간’, 학습 방법은 ‘자신의 단위(당조직이나 직장 – 역자註)의 현실과 잘 묶으면서 강의를 내용에 있는 대로 진행 한다’고 적혀있다.
15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불과 1시간의 강의로 주민들에게 전할 수 있을 리 없다. 원래대로라면 인쇄물을 배포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북한의 종이 사정은 당 기관지의 용지 배급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또한 대량으로 인쇄하면, 문서가 공개돼 비밀 사항이 외부에 유출될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학습은 문서를 배포되지 않고 필요 사항만 흑판에 필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문서는 엄중한 보관 • 회수를 전제로 하여 인쇄 부수가 한정된 간부용의 ‘강연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다.
비밀문서의 외부유출이 잇따르면서, 북한 당국은 문서 보관 • 회수 체제에 엄중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문서를 은밀하게 중국으로 꺼내와 복사한 후, 원래의 장소에 다시 갖다 놓는 방식을 사용했다. 짧은 기간에 경계가 삼엄한 북 • 중 국경을 왕복하는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기에 충분할 정도의 중요한 문서였다.
RENK는 지금까지, ‘이색적 녹화물’(음악 CD나 DVD 영상)이나 ‘불순 출판 선전물’(반정부 삐라나 성서)의 단속에 관한 비밀문서를 잇따라 입수 • 공개해 왔다. 그런데 이번 문서는 지금까지의 것과 성격을 크게 달리한다.
권력층은 포기, 일반 주민 대상으로 ‘이색적 생활풍조’ 단속
북한 당국은 사실상 ‘권력층’에 펴져있는 ‘유해 물자’와 ‘반체제 정보’ 유입의 저지를 도모하는 유인 작전을 포기한 모습이다. 대신 ‘일반 서민 계층’에 경계선을 형성, 악영향의 확대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작전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색적 물자’가 아닌 ‘이색적 생활 풍조’에 대한 대중적 투쟁까지 시작했다. 그럼, 독재 정권이 전력으로 투쟁에 나서는 이색적 생활 풍조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부 문서는 다음의 4가지 상황을 들고 있다.
▲ 안일해이하고 부패 타락한 생활을 하는 것
▲ 결혼식도 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거나 제멋대로 이혼하는 것 같이 고상한 가정생활 풍습을 마구 어지럽히는 것
▲ 옷차림과 몸단장을 괴상망측하게 하는 것
▲ 남의 나라 식을 무턱대고 모방하면서 생활환경을 필요 없이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이 김정일이나 간부 계층의 생활 풍조에 해당하는 것뿐이다. 듣고 있는 주민들은 필시 웃음을 애써 참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김정일의 머리 모양과 그가 즐겨 신는 키높이 구두야 말로 ‘기괴하고 비상식적’인 것의 견본이다. 이것은 불문으로 해 두고, 내부 문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괴상하게 하고 다니는 것
▲ 남의 것에 환장이 되어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문자나 그림이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
▲ 이색적인 음악이 흐르는 기호품(휴대식 라디오, CD재생기, 소형 TV – 역자註)을 사용하는 것
이것으로 발단된 소동이 글 서두에 나온 ‘한류머리 모양의 단속’ 이다.
문서에서는 남의 나라 식을 무턱대고 모방’하는 행위를 ▲ 봉사망(상품판매점)을 꾸리는데서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게 칸막이를 하고 조명을 어둡게 하는 것 ▲ 조잡하고 필요 없는 장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에서 주민들은 은밀하게 무엇을 하는 것일까. 문서는 김정일의 ‘말씀’ 을 인용해 이렇게 지적한다.
“지금 적들은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악랄한 심리 모략 책동을 고집하면서, 이색적이고 퇴폐적인 남조선의 영화나 미국 영화가 들어간 불순 녹화물이나 출판물을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RFA 비난하려다 도리어 RFA 홍보
그 중에서도 ‘악랄한 책동’으로 가장 적대시하는 것이 ‘자유아시아방송(RFA)’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주민 사이에 인기가 높은 단파 라디오 방송이다. 북한 당국은 일반 주민들의 은밀한 방송청취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이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다음 ‘청취상의 주의’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조선어 방송의 시간을 큰 폭으로 늘려, 우리 사회주의 제도를 헐뜯고, 저들의 썩어빠진 생활 풍조를 찬미하는 내용을 계속 불어대고 있다”
▲ 자유아시아방송 바로가기 |
이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동(同) 방송의 계략까지 언급한다. “미제는 1996년9월에 중국을 대상으로, 1997년 2월에 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1997년 3월초부터 우리 공화국을 대상으로 방송을 개시했다”
거기에 덧붙여 “남조선 괴뢰들은 미 중앙정보국의 조종 밑에, 우리 주민 모두에게 퍼지도록 수 천 만개의 소형 라디오를 들여보내기 위해 악랄한 책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경계경보를 발한다. 이것은 마치 강연을 통해 자유아시아방송의 선전 홍보를 해 주는 격인데, 이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북쪽 당국이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 당국이 여성의 머리 모양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문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활 풍조는 곧 사람들의 사상 정신 상태의 반영이기 때문에 내부가 사상적으로 변질하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 옹호 할 수 없게 된다”며, 여기에서도 “수령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며, 모든 행복의 상징입니다”라는 ‘김정일 동지의 명언’이 인용된다. 자화자찬도 여기까지 오면 기가 막힌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이색적 생활 풍조’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여하튼, 혁명의 수뇌부를 노린 적의 ‘엄선의 공격의 화살’에 대해, 김정일은 어떠한 대책을 가다듬고 있는 것인가. 같은 문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근에도 우리의 녹음테이프들과 녹화물들을 더 잘 만들어서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이바지하도록 온정 깊은 조치를 취하시었다. 동방예의국에서 사는 사람들답게 예의도덕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중략) 우수한 민족적 전통과 풍습을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야 한다”
우리식의 녹음테이프와 녹화물들은 북한 주민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서두의 기사와 같이 남한 국민을 상대로는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럼 ‘동방예의의 도덕’은 어떨까? 이것은 남북의 구별 없이 실패가 약속된 것이다. 김정일 체제의 말기 증상을 상징하는 ‘쓸모 없는 대용품’ 일테니 말이다.
‘민족 전통의 놀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 등은 농담으로 웃어 넘겨줄 수 있다. 문서는 ‘조선식 인사 방법’에 대해 길게 야담을 늘어놓는다. “악수를 하지 말고, 우리 식으로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조선의 인사는 몸을 깊숙이 숙이면 최대의 정중성을 표시하는 것이고 절반 정도 숙이면 일반적인 인사의 표시로 되며, 고개만 숙이면 인사에 대한 답례 또는 가까운 친구들 사이의 예절로 된다. 조선의 인사는 단정하고 고상하며, 위생적으로도 좋은 인사 방법이다”
여기까지라면 청중도 쓴 웃음 짓는 것만으로 끝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복장과 식생활’ 에 관한 부분이 나오면,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폭발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이색적 생활풍조’ 유포자는 바로 김정일
“모든 당원과 근로자는, 민족 옷을 입는 문제를 가지고 직장과 가정에서 서로가 교양사업을 잘하여 누구나가 다 조선옷을 떳떳이 입고 다니도록 하여야 한다”
▲ 이것이야 말로 ‘이색적인 생활 풍조’ |
“위대한 장군님은, 선군 영도로 바쁘신 중에도, 지난 해 6월 몸소 민족 음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여 주시었다. 당원과 근로자는 (중략) 외국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식생활 수준이 높은 것으로 여기는 그릇된 관점을 철저히 없애고 우리의 민족음식을 즐겨 만들어 먹도록 하여야 한다”
민족의상 대신 양복을 입는 것을 단속하는 것이겠지만, 일반 서민에게 의복을 골라 입을 생활의 여유는 없다. 양말은커녕 운동화도 없어서 맨발로 구걸하는 하는 꽃제비가 시장이나 길거리에 넘치는 것이 북한의 실상이다.
최근 10년간 민족의 음식이든 외국의 음식이든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먹지 않으면 영양실조가 되거나 아사하는 것이 서민의 식생활이다. 야생초나 나무의 가죽을 먹어서라도 어떻게든 배고픔를 견디는 것을 ‘우리식의 고유한 식생활의 풍습’으로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호화로운 외국 요리에 매일 입맛을 다시는 ‘위대한 장군님’이다.
북한의 민중이 독재자에게 날마다 억압당하고 있는 비참한 생활이야말로, 21세기의 인류에 어울리지 않는 ‘이색적 생활 풍조’다. 이런 것을 북한에 유포시키고 있는 ‘적’(=김정일)의 책동을 철저하게 깨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김정일 체제는 국경을 넘어 불어오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바람에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와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제2의 고난의 행군’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서울의 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 영화를 보고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영화/ 일본 간사이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 오사카 출생(1954) – 평양 조선사회과학원 유학(1991) – (現)간사이(關西)대학 경제학부 교수 – (現)<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대표 – 주요저서<북조선 수용소군도>, <재일 한국, 조선인과 참정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