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묘한 정세변화’ 타령이나 계속할 때인가?

▲ 미묘한 정세변화를 언급한 이종석 장관

요새 북한으로 ‘밥 먹는’ 사람들은 ‘미묘한 정세’ 수수께끼에 빠져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한 조찬강연에서 ‘한반도에 미묘한 정세변화가 있다’고 말한 뒤부터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이어갈 태세를 보이고,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에 팔을 걷어 부치자 이 장관은 이를 ‘미묘한 정세변화’라고 지적했다.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북핵문제는 진전이 없는데 주변국이 다른 주머니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당장 6자회담도 열리지 않는 판국에 미•중이 북한을 두고 밀고 당기는 상황이 이어지면 집중력이 흐려진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주변국이 핵문제를 제쳐두고 우회(迂回)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수록 한반도에서 북핵은 사그라지고 금융제재와 북-중 경제밀월만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장관은 3일 “지금과 같이 미묘한 정세 아래에서는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이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대화•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북핵문제가 잘 풀린다고 남북간 긴장이 해결되는 것이 아닌 만큼 남북관계 발전을 숙명처럼 여기고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 장관의 정치적 입담과는 다르게 정책 브리핑을 충실히 해온 이 장관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발언은 정부가 처한 곤혹스런 입장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북한을 붙들고 나가는 길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9.19 공동성명에 들떠 있던 정부가 지금 와서 ‘미묘한 정세’에 골몰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정부가 처음부터 북핵문제가 우리의 ‘희망사항’대로 진행될 것으로 믿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가 강조해온 ‘주도적 역할’은 실제 지렛대는 없으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말 심부름’이나 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달래고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

공동성명 이후 북한이 先경수로를 고집하는 것은 ‘당장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이 뻣대는 상황에서 정부 주장대로 핵 문제로 입씨름을 계속한다고 과연 해결책이 나올까? 김정일 정권이 지금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마당에 핵문제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옥신각신 한다고, 또 이장관 말대로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까?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를 미루어 볼 때 이는 현명한 대응이 아니다. 때문에 미국이 예전처럼 목소리만 높이지 않고 금융조치를 통해 실질적인 북한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미묘한 정세 변화의 핵심은 바로 미국의 대북 금융조치다.

물론 금융조치가 김정일 정권의 자금 확보에 상당한 장애를 조성한 것이 인정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지는 미국 내에서도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닌 것같다. 또,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남한이 경협을 빌미로 대북 현금지원을 계속 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히 축소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엇갈린 행보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미묘한 정세나 탓하며 불평만 드러내 놓을 일이 아니다. 정부가 그토록 신뢰하고 싶어하는 북한은 94년 1차 핵위기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핵무기가 더 양산됐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묘한 정세 변화에서 우리 정부는 무엇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가져야 한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 해소도 중요하니 남북대화라도 꾸준히 하자는 한가한 소리를 할 때도 아니다. 북한과 ‘대화’만 계속해서 실질적인 긴장해소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화는 계속하되,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는 다른 방도를 냉정하게 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미 양국간에 터놓고 대북 전략전술에 역할분담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미묘한 정세변화’가 한국정부의 자업자득이란 사실을 인정부터 하고 볼 일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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