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올림픽 위해 탈북자 청소”

10년 가까이 탈북자 지원과 북한인권 개선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이 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NGO 활동가 팀 피터스(Tim Peters)씨다. 피터스씨는 헬핑 핸즈 코리아(Helping Hands Korea)라는 구호단체를 98년 설립해 중국 내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피터스씨는 1996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북한의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남한의 화려한 교회들이 고통속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도움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피터스씨는 기독교인의 사명을 되새기며 중국에서 탈북자 구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10년 가까이 활동해오면서 그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된 탈북자들도 적지 않다.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희망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묵묵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전경련에서 일했으나 지난해 그만뒀다. 정부 관료 출신인 신임 전경련 부회장이 피터스씨의 북한인권활동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 이러한 어려움에도 피터스씨는 “직장을 그만둬 탈북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그는 중국에서 재중 탈북자들을 돕는 활동을 비롯해 북한 내 어린이, 고아, 임산부들에게 식량을 직접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피터스씨는 “아직도 북한과 중국에서 북한주민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고 했다. 피터스씨의 중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탈북자, 고문과 처형 공포에서 벗어나야”

-현재 중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서너번 탈북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면 처형당하거나 온갖 고문으로 고통을 받다가 수용소로 보내진다. 이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이 안전하게 제 3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들이 쉴 곳을 찾는 다면 한국으로 가든 제 3국으로 가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소방관이 불 속에 갇힌 사람을 구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탈북자들이 기아의 고통과 고문, 처형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바랄 뿐이다.

또 북한의 학교, 유치원, 고아원 등으로 음식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쌀이나 옥수수 등과 같은 곡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1차로 요리된 음식물을 두만강 건너 음식이 필요한 곳에 직접 제공한다.

-음식을 보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다른 데로의 유용을 막기 위해서이다. 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한에 합법적으로 식량 지원을 하려면 적십자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렇게 지원된 식량은 함경도, 황해도 등 다른 외곽지역이 아닌 평양으로 보내졌다. 옮겨진 식량은 평양거주 로얄층, 군대 등에 보급됐다.

이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결과, 음식으로 지원을 하면 유통기한이 있어 유용하기 어렵고 음식이 정말 필요한 주민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 이 방법으로 북한주민들을 직접 돕고 있다.

-음식이 주민들에게 직접전달 되는가?

96년 당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유용되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 우리는 중국에서 북한으로 식량을 지원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나를 비롯한 NGO 활동가, 조선족, 조선족을 친척으로 둔 북한주민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직접 지원하고 있다.

직접 전달하는 역할은 조선족들이 한다. 조선족들 중 북한에 친인척들을 두고 있을 경우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통해 우리가 보낸 음식이 유용되는지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족과 조선족의 친척들인 북한주민들을 통해 교차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정부, 탈북자 외면 안된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 북송은 여전한가?

그렇다. 중국은 한달에 수백명의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다. 이는 말할 수 없는 폭력이다.

중국은 유엔 인권위원회 회원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내 탈북자에게는 어떤 인도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검거, 강제송환의 비인도적 정책을 펴고 있다.

-구체적으로 탈북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현재 동북지방의 중국 공안들의 탈북자 단속DL 매우 심하다. 우리는 몇 년 전까지 탈북자들이 숨어 살 수 있는 피난처를 10개 이상 운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1-2개에 불과하다. 더구나 가족단위로 피난처 생활을 같이 하지 못하고 산속에서 1인 1피난처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외진 곳에서 검거의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중국정부는 탈북자들을 ‘청소 대상 1호’로 삼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탈북자 단속이 심해지고 있어 탈북자들의 상황은 최악이다.

한번은 나의 아내가 의사와 함께 의약품을 전해주러 피난처에 찾아 갔다. 아내와 의사가 만나려고 하는 탈북자는 여성으로, 다음날 캄보디아로 떠나기로 되어 있어 의약품이 필요했다. 피난처에 도착했을 때 탈북여성이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의약품이 꼭 필요했지만, 제 3국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이유에서 만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정부가 얼마나 집요하게 탈북자들을 검거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반증인 것이다.

-중국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노력은 뭐가 있나?

한국정부가 문제다. 한국정부는 탈북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2003년 수감된 최영훈씨, 2년간 수감됐다가 석방된 김희태씨, 이외에도 많은 한국 선교사 및 활동가들이 중국당국에 체포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대해 이 정도인데 탈북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무역 교류를 우선시하다 보니 중국에게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자체를 꺼려한다. 중국 또한 한국정부의 무역을 중시하는 경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매우 슬프다. 한국정부에 대해 실망을 감출 수가 없다.

인권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의 건국이념에 맞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제와 인권, 분리돼 있지 않아”

-정부 역할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 또한 중요한데

NGO 단체들이 계속해서 탈북자들의 현황과 중국 당국의 비인도적 정책에 대해 폭로해 나가야 한다.

먼저 미국 NGO 활동가들은 워싱턴의 외교부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워싱턴 외교부가 탈북자들을 위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중국내 탈북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지적해야 한다.

두 번째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즉 경제와 인권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거래에 앞서 중국이 인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

세 번째로 기업들을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동남아시아, 중국 등 제 3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탈북자들을 고용한 기업들에 대해서 세금공제와 같은 혜택을 주고, 탈북자들이 제 3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살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들은 해외공장에 탈북자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 이것이 잘된다면 제 3국에 비즈니스 타운을 건설하여 탈북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내 일부 좌파세력은 북한인권문제에 소극적인데

나는 1975년 박정희 정권 시절에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활동을 하다가 추방당한 경험도 있다. 이후 다년에 걸쳐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에 헌신하게 되면서 진보운동세력의 생리를 알게 됐다.

진보세력은 북한의 이데올리기인 주제사상에 친숙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을 추종했다. 그러나 그들이 배우고 공부한 북한의 이상적인 사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의 현실은 기아로 수백만이 굶어 죽고 수십만의 북한주민들이 탈출하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사회이다.

아직까지 진보세력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고 여전히 북한정부에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지난 12월에 중국 내 3명의 여성 탈북자들을 동남아시아로 탈출시켰다. 이 세 명의 여성 중 2명은 강제낙태를 경험한 여성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중국에서 탈출시켜 안전한 동남아시아로 보냈다.

이후 한국에 입국해 나는 12월 25일 탈북자들이 참여하는 송년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3명의 탈북청소년들이 찾아와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유인즉 동남아시아로 보낸 3명의 여성중 한명이 자신들의 어머니라는 것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중국에 탈북자들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추위와 배고픔에 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탈북자들이 강제송환의 공포와 기아의 고통에 벗어나는 날까지 나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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