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동북아에서 진정으로 ‘화’(和)하는 길은?

올림픽의 염원은 평화와 꿈이다.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꿈(희망)을 염원한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의 메시지도 평화와 꿈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두고 ‘중화(中華)주의’를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서양문명에 대한 중국의 컴플렉스가 엿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중화제국주의’를 거론하기도 한다.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중국이 올림픽 참가국 입장 순서에서 영어 알파벳 대신 한자(간체) 획수 순으로 정한 것은 오로지 영어에 의한 세계 표준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미 세계화된 언어인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의 발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이머우 감독이 보여주려 한 것은 인류 문명사에서 중국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두루말이’로 상징된 중국 문명사의 파노라마가 전개되기 시작하여 마지막 장면인 체조 선수 출신 리닝(李寧)의 성화 점화까지, 장 감독은 멀리 진시황에서 미래 우주시대까지 인류 문명사 속에서 중국의 역할과 세계의 평화(조화), 인류의 꿈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두루말이’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거의 모두 중국의 것 또는 중국적이었다.

장 감독은 활자의 움직임을 통해 ‘화'(和)’를 만들어내면서 평화와 조화, 화합은 이미 공자 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또 죽간(竹簡)을 들고 ‘공자의 3000 제자는 모두가 하나’라고 외친 것은 공자의 유교는 아시아의 정신을 대표하며, ‘서양문명은 인간의 물질적 번영을 이룩했지만, 중국은 인간의 정신문명을 이끌어왔다’는 자랑도 은근히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올림픽 주제가 늘 그렇듯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주제도 인류의 평화였다. 그런 점에서 뒷말이 좀 있긴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성공했다. 장이머우 감독은 역대 올림픽 개막식 중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 것 같다. 그리고 개막식이 전하려 한 메시지가 세계의 평화, 인류의 꿈이었던 게 분명하다면, 등장한 모든 소재가 중국적인 것이 나쁠 게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소재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모토 아래 ‘굴렁쇠’를 비롯하여 대부분 한국적인 것이 등장했다.

따라서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중화제국주의’로 색칠하려는 것이 도리어 중국 문명사에 대한 또 다른 컴플렉스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상대방의 역사를 폄훼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좋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화'(和) 정신의 진정한 실천이다. 말로만 하는 ‘평화’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가 모두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 시민사회에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인류보편적 삶의 ‘인프라’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권'(人權)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권리(생명권),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 의해 침범 · 훼손되지 않고 존엄과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권리(존엄성 유지 및 자유권), 먹고 살 권리(생존권), 자신의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권리(건강권), 이성과 결혼할 권리(결혼권), 거주하고 이주할 권리, 직업을 선택할 권리… 등등이다.

물론 각 나라의 사회발전 수준이 모두 다른 만큼, 모든 나라가 동일한 인권 수준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명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존 · 유지할 권리는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天賦)의 권리에 해당한다.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스러우며,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이 부여되어 있으며 서로 인류애로써 행동해야 한다.”(세계인권선언문)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나 창조자로부터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권리 가운데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 등이 있다.”(미국 독립선언문)

인권을 규정하는 적지 않은 표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표현은 위 두 가지일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고생 때 다 배운 것이다. 하지만 배우면 뭘 하겠는가? 뇌세포 속에 그저 ‘등록된 글자’로서 들어있으면 뭐하겠는가? 그런 지식은 시험 칠 때, 또는 퀴즈대회에 나가 기억력 테스트 할 때나 필요할 것이다. 공자 식으로 말한다면 지행합일(知行合一), 학행일치(學行一致) 없는 지식이란 허망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인권’과 관련하여 ‘실천적인’ 경구(警句)가 하나 있다. “인권은 평화보다 더 소중하다.”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917년 독일과의 전쟁(1차 세계대전)을 선포하면서 이 표현을 썼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이 없는 상태에서의 ‘평화’, 노예상태를 유지하는 ‘평화’란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의 인권문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중국은 인권을 ‘논할 수 있는’ 사회발전 단계까지는 와 있다. 따라서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인권문제는 좀더 활발히 논의되고 더 신장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인권 이전의 사회’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자체를 논하기 이전의 사회라는 뜻이다.

김정일은 스스로 ‘우리에게 국가 자주권, 즉 국권(國權)은 있지만 개별 인권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쯤은 물론 삼척동자도 다 안다. ‘집단의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이란 모든 개인이 인류 보편적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를 말한다. 또 김정일이 말하는 ‘국권’이란 나라의 자주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수령의 지위를 보존하는 권리, 즉 ‘수령독재권’을 말하는 것이다.

데일리NK가 이미 최초로 보도한 사실이지만, 북한 군대의 제대증에 나타난 북한군의 입대 목적 중에는 ‘수령을 결사옹위하고…’라는 표현이 있다. 김일성 생존 시기에는 없던 구절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 목적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북한의 젊은이가 군대에 가는 목적은 ‘김정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김정일이 나라의 자주권 운운하는 것은 ‘나, 장군님을 사수하는 것이 곧 국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있는 현실 그대로’의 표현이다. 따라서 북한 군인들은 수령(김일성 김정일) 개인을 위해 ‘총과 폭탄'(총폭탄)이 되는 것이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는 ‘거대한 사기행위’다. 21세기까지 축적되어온 인류의 문명사를 조롱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난 주 이명박-부시 대통령의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공식 어젠더로 떠올랐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대북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 내 인권상황 개선의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언급했다. 한미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향후 한미관계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한국 대통령이 정식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지난 10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김정일 정권과 2,300만 북한주민들을 분리해서 대처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김정일이 말하는 ‘나라의 자주권’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주민들의 개별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난 10년간 남한정부가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느냐의 문제와 관계없이, 일종의 ‘對국민 기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난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삶과 인권 개선을 외면하면서 김정일 정권에게 경제지원을 해주었다는 것은, 김정일 정권을 도와줌으로써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더 나쁘게 하는 데 방조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면 북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남한 국민들의 기대를 기만한 것이 된다.

희망적으로 본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중국으로서는 세계에 대한 발언권이 더 높아짐과 동시에 책임감도 더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인민들도 좀더 성숙한 세계 시민으로서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중국은 내부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아울러 ‘인권 이전의 사회’인 북한이 적어도 중국 수준의 인권 수준에는 올라오도록 적극적으로 한국 및 국제사회와 공동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 하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모든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은 꿈이고 희망이다. 마지막 성화 주자 리닝이 성화를 들고 ‘냐오차오'(새 둥지=세계 동네)를 한바퀴 돌며 인류의 희망과 이상을 불 밝히려고 했듯이, 2,300만 북한 주민들은 모두 개혁개방으로 자신의 삶에 희망을 밝히고 싶어 한다. 이제, 중국은 마땅히 북한 주민들의 희망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세계의 화(和)로 가기 전에 동북 아시아 지역이라도 먼저 실천적으로 ‘화'(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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