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6자회담 ‘해결사’ 다이빙궈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목표 재확인과 ‘다자대화 복귀 용의’를 받아낸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북핵 6자회담이 고비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그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지내 북중간 당대 당 외교채널로 북한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북한통’이어서 다이 국무위원에 대한 북한의 `호감’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 위원은 소수민족인 투자(土家)족 출신이라는 약점에도 직업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해 탕자쉬안(唐家璇)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뒤를 이어 후진타오 정권의 대표적인 외교통으로 통한다.

그는 후진타오 주석이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3년 7월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첫 6자회담을 이끌어 냈다.

곧바로 그는 미국으로 날아가 딕 체니 부통령을 면담, 조지 부시 대통령 앞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제2차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간 접점을 찾는 데 중재 역할을 했다.

그는 역시 6자회담이 표류하던 2005년 4월에는 극비 방중한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핵문제를 논의한 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었다.

또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뒤에는 탕자쉬안 당시 국무위원과 함께 방북해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로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던 북한을 설득한 뒤 다시 미국으로 날아가 부시 행정부를 설득, 이듬해 북미간 2.13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는 지난 7월 27~29일 미국의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중 경제전략대화에선 외교안보 분야를 맡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했다.

다이 국무위원은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시절인 2000년 9월 대외연락부 대표단의 단장으로, 외교부 상무부부장이던 2003년 7월엔 중국 정부특사 자격으로 각각 방북한 데 이어 2006년 10월엔 특사로 방북한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수행해 방북하는 등 지금까지 4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의 방북시 2000년엔 오찬을, 2003년엔 만찬을 각각 마련했지만 2006년에는 연회나 오.만찬 소식이 보도되지 않았으며 북한 매체들은 이번 방북에서도 김 위원장과 식사를 함께 했다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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