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아사드 정권 지지와 탈북자 북송

I.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의 정부군은 지난 1년간 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거점 도시 홈스(Homs)를 무차별 포격하여 천 명에 가까운 어린이, 여성, 민간인을 살해한 후 저항군의 거점지역인 바바 암로(Baba Amro)를 접수했다. 정부군은 이곳에서 마치 나치가 폴란드의 유태인 집단 거주 지역의 건물을 하나하나 수색하여 발견된 자를 즉결 처분하듯 전쟁범죄와 같은 학살 만행(蠻行)을 저지르고 있다. 1년 동안 계속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에서 이미 8,000명 정도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이러한 학살행위의 배경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지난달 5일 유엔안보리가 시리아 정부 비판 결의안을 통과 시키려 했지만 이 두 국가가 나서 반대했다. 영국에 유학했던 안과의사 출신 아사드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걱정하지 않고 자국민을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일종의 대량학살 면허를 받은 셈이 됐다.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는 시리아에 대한 무기 판매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권 확대를 막기 위한 전략적 계산에서 나왔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의 비토권 행사에 대해 “결의안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은 다른 어떤 나라의 태도에도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중대원칙과 이익을 반영할 뿐이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국이 주장하는 원칙이란 명분상 ‘내정 불간섭’이지만, 실은 티베트와 위구르 등에서 발생한 저항과 자치 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탄압이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과 닮음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학살방조를 허락 받은 아사드의 만행이 히틀러의 나치 수준에 접근하자, 국제사회로부터 거세 비난에 직면한 중국은 시리아 정부와 저항세력간의 즉각적인 휴전 협상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면피용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난 해 중동의 봄에서 카다피를 지지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인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인권유린 방조국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II.
박선영 의원의 의로운 단식과 북한인권단체 및 차인표, 윤복희, 구준엽, 강원래 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의 절규 콘서트 ‘Cry with us’로 탈북자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입장은 ‘기근이나 경제적 이유에 의한 불법월경자는 난민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유엔난민협약이 2차 대전과 1951년 이전의 사건에서 출발했던 만큼 난민의 지위에 대한 규정이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중국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든 말든 송환시켜서는 안 되지만, 인도를 방문해 종교행사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의 티베트인을 구류장에 불법적으로 억류하면서 강압적으로 재교육시키는 행위를 자행하는 중국 정부의 모습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중국 자체의 인권상태가 열악한 상황에서, 북한정권이 중국에 ‘탈북자들을 고문하기는커녕 범법자로도 취급하지 않겠다’고 형식적으로 약속해주기만 하면 중국이 탈북자들을 안하무인(眼下無人)격으로 북송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탈북자들의 북송을 막기 위해서는 훨씬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하나는 북한인민 전부가 사실상 한국 국적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고, 북한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는 모든 탈북자들에게 즉시 한국국적을 활성화시켜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이다.북한이 탈북자들을 자국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결국 북한법에 의거한 것이고, 한국이 탈북자들을 자국민으로 간주하는 이유 역시 한국의 헌법에 의거한 것이다. 이럴 때 한국과 북한 모두와 국교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 탈북자들의 국적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본인들의 의사일 뿐이다.


그러나 중국이 탈북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을 것이 뻔 한 북송을 눈 깜짝 하지 않고 감행하는 이유는 유엔난민협약에 대한 법적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핵개발국 북한을 그럭저럭 유지시켜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점은 2002년 북한의 핵개발이 발각되면서 시작된 6자회담을 끊임없이 끌고 가는 중국의 태도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전략적 이해를 위해서라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수천 명의 희생쯤은 개의치 않는 것이 중국의 입장으로 굳어지고 있다. 


III
한국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여행자 증명서를 발급하는 것만으로는 북송을 막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중국정부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한 탈북자 북송이 중단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한중 FTA가 그것이다.


2004년 한국정부와 중국정부는 한중FTA에 대한 민간차원의 연구를 시작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협약체결을 논의하고 있다. 공산품에 대한 관세가 거의 10%가 되는 중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한국의 공업제품은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훨씬 큰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중국의 공산품과 농산품도 한국에 더 싼 값으로 들어올 수 있겠지만, 대차대조표를 보자면 한국에게 이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한중 FTA에 대해서는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사실은 요즈음 시리아 사태와 탈북자 북송 문제에서 분명해졌다. 경제 G2 중국에게 한국은 여러 나라 중의 하나이지만, FTA로 중국 경제에 깊이 의존하게 될 것이 분명한 한국에게 중국은 한국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나라가 된다. 물론 현대 국제사회에서 경제가 서로 의존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나라와 정치적, 도덕적 가치관이 아주 다를 경우, 한국경제의 중국의존성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인권상황이 극히 열악하고 또 인권야만국의 대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경제초강국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깊이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속국, Neo-한사군(漢四郡)이 될 수도 있다.


이점은 개성공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에서도 분명해진다. 현재 한국 국민의 특징적 행태 중의 하나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이고, 이점은 기업이고 개인이고 무관하게 광범위하게 퍼진 행태이다. 만일 중국에 한국 기업의 대다수가 깊이 의존할 경우, 중국이 한국 경제의 중국의존성을 지렛대로 한·미동맹을 해체하거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요구를 해 올 경우, 현재 한국 좌파의 반미·종북 행태, 새누리당의 천박한 좌클릭 행태로 보아 현 한국사회에는 중국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제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명박 정부는 차라리 정치적으로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멀리하고, 오로지 국익의 차원에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굳이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한중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모든 탈북자의 한국국적 취득을 내걸 필요가 있다. 또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세력 모두의 힘을 합쳐서 정치적, 도덕적 가치가 다른 중국과 한중FTA를 맺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 재삼, 재사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중국이 한중FTA를 통해 장기적으로 한반도를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중국영향권으로 복속시키려는 장기적인 의도와 충돌시키는 방법이다. 그래야 중국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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