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 원조사

중국의 대북 원조는 1950년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지원한다(抗美援朝)’는 명분으로 인민지원군을 참전시킨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기간의 대북 원조액을 총 14억5천만루블(약 7천290억위안)으로 잡고, 중국측이 북한에 이런 거액의 ‘채무’를 탕감해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중국은 1954-1957년에 북한에 공업원료, 공업제품, 식량, 농기구, 어로기구, 철도 건설 및 복구, 열차 차량 제공 및 수리 등의 방식으로 16억루블(약 8천억위안) 상당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비밀 해제된 중국측 자료에는 1950년부터 1960년 6월까지 22개국에 대한 중국의 무상원조와 차관 액수는 모두 40억2천800만위안, 그중 북한.베트남.몽골에 제공된 액수가 대부분인 35억3천900만위안으로 돼있다.

전문가들의 주장과 외교문서는 숫자상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전자가 거의 모든 전쟁비용 및 인민지원군의 북한 주둔비용까지를 포함시킨 반면 후자는 순수한 대외 원조액만을 계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 말 이후 대약진운동 실패와 문화대혁명, 경제 개혁.개방 등 국내 상황 때문에 중국의 대북 지원은 한동안 주춤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재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가 펴낸 연례 외교백서 격인 ‘중국외교개람'(1995년까지)과 ‘중국외교'(1996년 이후)에는 1990년부터 중국의 대북 경제원조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이해 11월 연형묵 북한 총리의 중국 방문때 중국정부의 북한정부에 대한 경제원조 협정이 체결된 것으로 돼 있다.

이어 북한의 농업정책 실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탈북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1996년부터는 양국 최고지도자들과 주요 당.정 대표단의 상호방문 때마다 중국이 무상원조를 제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체적인 내용이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분적으로나마 내용이 공개된 중요 무상원조 사례는 ▲1995년(북한지역 수재), 긴급 재난구조 물자(3천만위안 상당) ▲1996년 5월(북 홍성남 부총리 방중), 식량 2만t ▲1996년 7월(중 뤄간(羅幹) 국무위원 방북. 조.중 상호원조조약 체결 35주년), 식량 10만t ▲1997년 6-7월, 2천만원 상당의 물자 및 식량 8만t ▲1998년 10월(북 정권수립 50주년), 식량 10만t 및 화학비료 2만t, 원유 8만t ▲1999년 6월(북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방중), 식량 15만t 및 코크스 40만t ▲2000년, 세 차례에 걸쳐 학생교복 500만벌(4억위안 상당) ▲2001년 3월(중 쩡칭훙<曾慶紅> 공산당 정치국 후보위원 방북), 중유 1만5천t ▲2001년 9월(중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방북), 식량 20만t 및 중유 3만t ▲2002년 4월(고 김일성 전 주석 탄생 90주년), 5천만위안 상당의 물자 ▲2004년 4월(용천 폭발참사), 1천만위안 상당의 긴급물자 ▲2005년 10월(중 우의<吳儀> 부총리 방북), 중유 1만t 등이다.

그러나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의 북 김정일 위원장 방중 ▲2001년 7월의 북.중 상호원조조약 체결 40주년 ▲2003년 10월의 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방북 ▲2004년 4월의 김정일 위원장 방중 ▲2005년 10월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방북 ▲2006년 1월의 김정일 위원장 방중 ▲2006년 7월의 북.중 상호원조조약 체결 45주년 ▲2006년 8월의 북한 수재 구조 긴급물자 지원(식량, 식품, 중유, 약품 등 인도주의 원조) 당시의 무상원조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