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람들도 김정일은 지겹답니다”

▲ 노동자에게 지시하는 기업 당비서

내 한평생 살아온 북한 땅을 등지고 중국에 나와 살면서 중국사람들에게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중국사람들마다 “어째서 너희 나라는 항상 굶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라고 물어오면 대꾸도 하기도 싫었습니다.

“왜 너희 나라 공안(公安)들은 중국에 있는 북한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가는가? 그렇게 죄지은 사람들이 많은가?” 하고 물어오면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습니다.

부끄러움 모르는 북한 권력자들

몇 년 전, 제가 장춘(長春)에 와서 이곳 교회의 도움으로 살 곳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옆집에 글도 잘 읽고 말도 잘하고 똑똑한 중국 아저씨가 살았는데, 어느 날 제게 하는 말이 북한 대표단이 북경을 방문했다고 중국 신문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북한대표단은 “우리는 사회주의 굳건히 세우고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 아래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중국대표들에게 “우리나라에 한번 방문해 주십시요”라고 요청했답니다. 그러니까 중국대표들은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대답만 하고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옆집의 중국 아저씨는 “북한에 가면 제일 볼 만한 것이 무엇인가?” 라며 물어왔습니다. 막상 대꾸를 하려고 하니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한테 북한 이야기 하지 마쇼!”하고 돌아 앉아 버렸습니다.

외국 대표들에게 우리나라에 방문해달라니, 과연 보여줄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황폐되고 망가진 공장과 농장마을, 뼈에 가죽만 씌운 참혹한 모습, 산과 들은 다 벌거숭이가 되고 압록강만 건너봐도 공동묘지 같은 북한에서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외국대표를 초청하는가?

인민들의 고통을 모르는 당 간부들

하기야 북한에서 간부라는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힘든 인민들의 고초를 알지도 못하며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입으로만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 일에는 세계에서 최고가는 사람들입니다.

리수희
1931년 자강도 출생
1996년 탈북
현재 중국 長春에 거주

94년부터 자강도 산골의 군수공장 유치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 당비서는 노동자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95년부터 국가에서는 먹는 문제를 기업소 자체로 마련하라며 배급을 중단했습니다. 공장은 생산과의 전투가 아니라 먹고 사는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우리공장의 지배인은 노동자들의 먹을 것을 구하려고 파철(고철)을 싣고 신의주에 나가서 중국과 쌀을 교환해 오고,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다 가공해서 그들을 먹이려고 가진 애를 다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배인은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쌀에서 조금씩 아껴서 김일성 현지 교시 사적관도 잘 꾸려서 자강도 단위에서 시범견학이 조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공장의 당비서라는 작자는 견학 손님을 맞이한다며 돼지까지 잡으면서 큰 만찬을 차렸습니다.

도처에서 인민들은 무더기로 굶어 죽어 나가는데 당비서란 자는 제 한몸 출세를 위해 공장의 재산을 가지고 만찬을 꾸리고, 조선노동당의 당증을 목에 걸고 있는 견학단들은 저마다 입술이 번질번질해서 식당문을 나섰습니다.

그날 밤 견학단의 총화회의에서는 “사적지를 참 잘 꾸렸다. 그런데 음식을 너무 잘 차린것 아니야?” 하며 칭찬인지 비판인지 구분도 안 되는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어쨌든 잘 먹었으니 싫다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먹은 음식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이 당비서가 자기 식모에게 “요즘 우리공장 노동자들이 죽을 써 먹는다는데 우리도 죽을 한번 먹어보지” 하고 지시를 했습니다. 식모가 팥을 삶아 껍질을 벗겨 쌀과 함께 잘 쒀서 올리니, 당비서가 하는 말이 “이거 죽도 좋구만! 거, 노동자들이 꽤 먹겠는데?” 하고 한 그릇을 다 비웠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노동자 아주머니들은 너무도 화가 나서 “그 놈의 당비서에게 바칠 음식이면 겨죽을 먹였어야지, 쌀 팥죽은 고급 특식인데 그걸 먹고 우리 생활을 알기나 하나?”며 이를 갈며 격분해 했습니다.

장군님에 대한 충성만 강요

당시 공장 노동자들은 배급소에서 하루 종일 줄을 서야 된장 두 숟가락도 얻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도 공급이 떨어지면 그냥 빈 그릇 가지고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당에 아첨하느라고 연구했다는 간장을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그것이 벼뿌리를 캐서 씻은 다음 삶아서 우러나는 누런 소 오줌 같은 것이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누런 물에 소금을 타면 간장이 된다며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소여물 냄새가 난다며 죄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인민들이 식량난으로 아우성을 쳐도 당과 국가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당 지도원에게 의견을 말하면 고난한 문제는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어떻게 해야 당과 수령님께 충성을 다하겠는가 하는 충성심만 말하라며 핀잔만 돌아옵니다.

아직도 북한의 권세가들은 지금 제 나라의 꼴이 얼마나 부끄럽고 망신스러운지 모르고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존함을 높이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아쉽고 아까운 것이 없이 다 바치면서도 인민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지 벌써 십 년 입니다. 외국에서 쌀과 옥수수를 얻어다 먹는 주제에 쌀을 실어와도 배 깃발을 ‘공화국 깃발’을 띄우라며 이러쿵 저러쿵 큰소리만 치고 있습니다.

그저 김정일 위신이 납작해질까봐 김일성 주체사상탑을 하늘 높이높이 세워 놨으니 그것이 무너질까봐 간이 콩알만 해서 텔레비전 방송도 다 줄을 끊고 일체 외국의 냄새와 콧김도 못 맡게 하고 있습니다.

불쌍하고 불쌍한 북한 인민들이 그 어둠의 죄악 세상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참사랑 품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드립니다. ♣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