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내 탈북자 사회 이미 형성”

“중국으로의 탈북 양태가 최근 가족 연고권자들에 의한 ‘기획 탈북’으로 바뀌고, 탈북 역사가 길어지면서 탈북자 2세의 교육과 탈북자들의 건강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주간 재중 탈북자 실태조사를 하고 돌아온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장인 유천종 목사는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북 양상과 탈북자 사회가 급변하고 있으므로 그 대책의 우선순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목사는 탈북자의 각종 질환 치료와 탈북자 2세 교육 문제가 중국의 사회문제도 될 수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협력을 촉구하고 이를 유도하기 위한 국제여론 환기 활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사해본 탈북자 실태는.

▲탈북자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탈북 양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실제론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은 숫자의 탈북자 사회가 중국에 형성됐다.

2001-2002년, 특히 스페인 대사관을 통한 망명 사건에 따른 중국 당국의 집중 단속을 전환점으로, 무작정 탈북은 급감하고 이미 탈북해 있는 사람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탈북시키는 ‘기획 탈북’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 사는 탈북자가 거처까지 미리 마련해 둔 뒤 조선족이나 중국인에게 중국돈 1천-3천 위안을 주고 북한에 남아있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와 그 가족들까지 탈북시키는 것이다.

중국서 가져 간 휴대폰으로 탈북하는 날짜와 장소까지 연락, 미리 택시를 대기시켰다가 바로 거처로 데려가니 겉으로는 전혀 안 나타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수십명 만났다. 어떤 사람은 5명, 많게는 17명을 데려온 경우도 봤다. 한국에 서 비교적 성공한 탈북자인데, 1만달러를 갖고 중국에 가서 누나네, 형네, 동생네 가족을 차례로 몽땅 데려나왔다고 한다.

그 뒤 매달 1천달러를 보내 6개월-1년 간 생활을 지원해줬지만, 지금은 돈을 안보내도 그 가족들이 중국에서 먹고 산다고 한다.

2001-2002년이면, 대량 탈북이 시작됐던 96년께 탈북한 사람들이 내륙으로 숨어들어가 엄청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중국말도 배우는 등 3-4년 간 중국 사회에 적응력이 생긴 시점이다.

–중국 당국이 탈북자를 단속하고 송환할텐데.

▲무작정 탈북하는 경우이거나, 일하기 싫어 떠도는 사람, 절도 등 사고를 내는 사람들은 자리를 못잡고 잡혀 가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의 단속이 요즘은 옛날처럼 심하지 않다고 한다. 올림픽을 의식한 때문인 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 지는 모르겠다.

옌벤(延邊)에서 공안을 지낸 사람을 만났더니, 북한 당국이 “탈북하더라도 (중국 당국에) 잡히지 말고 어떻게든 돈 벌어 돌아오라”는 식으로 교육시킨다고 하더라.

탈북자가 중국 경제에도 도움을 주지만 북한 경제엔 더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과 중국 내 탈북자의 북한 내 가족에 대한 송금액이 엄청나다. 북한 경제가 과거보다 나아졌다면 생산이나 무역 덕분이 아니라 탈북자들이 암암리에 인편을 통해 송금한 달러나 위안화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 내에 일종의 탈북자 ‘불법 이민사회’가 형성된 셈인가.

▲그런 셈이다. 탈북 양태가 불과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무작정 탈출에서, 공관을 통한 기획 망명을 거쳐, 가족 연고자에 의한 기획 탈북으로 급변한 것이다.

탈북자들은 최근 옌벤과 그 근처엔 많지 않고, 동북 3성 중에서도 내륙의 조선족 동네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가족들끼리 도와주고 있다.

이번에 직접 가 본 한 조선족 동네엔 200가구 중 17가구가 탈북 여성과 결혼한 가정이었다.

그 17명 중 16명이 애를 낳고 산다. 아이를 낳지 않은 50대 여자는 북한에 있는 두 딸을 탈북시켜 다 조선족 남자와 결혼시켰는데, 다 하나씩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탈북자 2세들인가.

▲탈북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이 이제 3-4살, 많게는 7살 되는데 이들만도 2만-3만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새로운 탈북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 아이들은 호구가 없어 유치원에도 못가고 있고, 앞으로 취학도 못하게 된다.취학 신고를 하면 신분이 공식적으로 드러나 꼼짝없이 단속에 걸리기 때문이다.

–탈북자 전체 숫자를 3만-5만으로 추정하기도 하는 데 비하면 너무 많은 숫자인데.

▲3-4년 전부터 기획탈북이 많아져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대량 탈북이 시작된 1996년부터 계산하면 중국에 숨어 살고 있는 탈북자가 100만명을 넘을 수도 있다.

— 그 근거는.

▲북한과 크게 무역을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북한의 국장급을 만났더니 최근 북한 당국이 인구조사를 한 결과 1천700만-1천800만명으로 나타났다고 하더란다. 발표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북한 인구 통계치 2천200만-2천300만명에 기근으로 인한 아사자와 사망률 증가 등을 감안하더라도 100-200만명이 어디로 갔겠나.

기획탈북이 엄청난 숫자다. 돈만 좀 있으면 북한 내 가족들을 다 데려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보위부가 2002년 만들었다는 탈북자 방지 대책 문건 보도도 봤지만, 2002년만 해도 이미 옛날 얘기다.

–탈북 양태와 탈북자 사회 변화에 따른 인권단체의 대책은.

▲탈북자 2세의 교육 문제 외에 기존 탈북자의 건강.질환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하고 있다.

이번에 조사해보니 전 연령층에서 폐질환, 위장병, 치아, 실명 등의 질환을 호소했다. 특히 30대만 해도 절반 이상이 각종 질환을 앓고 있었으나 돈도 없고 잡혀갈까 겁나 병원 치료를 못받고 있었다.

꽃제비 출신은 영양실조가 많고 여성들은 성병이 많고, 두세번 팔리고 도망치고 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이 생긴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탈북자 문제는 붙잡혀 강제송환당하거나 먹고 사는 문제였고, 이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탈북자들의 건강과 2세 교육 문제가 새로운 인도주의적 기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탈북자 대책의 주안점을 바꾼다는 뜻인가.

▲미 국무부와 유엔을 접촉해 중국 당국이 이들 문제 해결에 협력토록 압박을 가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기존 탈북자 가운데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치료와 요양을 위해 우리가 요양소를 차릴 경우 신변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것과, 탈북자 2세의 교육을 위해 아이들이 일정한 연령에 달할 때까지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에게 임시 영주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워싱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