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계-조기통일론은 위험하다”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90년대 말 ‘북한민주화론’을 주창한 김영환 계간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북한에 대한 중국 경계령의 확산으로 인해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북한체제 붕괴 후 조기통일론’은 위험하다”고 주장, 주목을 끌고 있다.

김위원은 최근 발행된 사상이론 전문지 계간 <시대정신> 30호에 기고한 ‘조기통일은 위험하다’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김정일 체제 붕괴후 조기통일은 남북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고 언급했다.

통일비용 최소 500억달러~최대 1조2,000억달러 추산

그는 통일 전의 동서독과 비교할 때 남북한은 경제격차가 심하고, 남한이 책임질 인구의 비율이 높으며, 문화적 이질감 또한 동서독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조기통일은 ▲경제관계와 시장의 왜곡으로 북한의 자체 발전에 부작용을 일으키며 ▲북한 인민들의 성장잠재력 약화 ▲남북주민의 감정적 대립 ▲ 남북간의 격차로 인한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민주화와 정치적 안정이 경제성장과 북한사회의 회생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했다.

김위원은 따라서 “통일이 필요하더라도 조기통일은 피해야 하며 북한이 민주화된 이후 남북간 교류를 확대하면서 조건이 충분히 성숙한 때를 기다려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김정일의 폭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는 일 즉,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 시급하며, 남북관계에는 항상 수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감상에 빠지지 말고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위원의 기고문 ‘조기통일은 위험하다’를 발췌 요약한다.

정재성 기자 jjs@dailynk.com

‘조기통일은 위험하다’

북한민주화=남북통일(?)

7 년 전 중국에서 한국 대기업의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는 어떤 분과 내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화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북한 사람들의 인권과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일한다고 하자 그 분은 곧 “민족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분이시군요”라고 말했다.

내가 통일을 위해 무슨 일을 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그 분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서 순간적으로 매우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곧 북한의 민주화를 곧바로 통일로 보는 과거 많은 한국인들의 사고습관을 떠올리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처럼 10년 전이나 20년 전에는 북한체제 붕괴나 북한의 민주화=남북통일이라는 공식이 많은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있었다. 그래서 남북통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북한체제의 붕괴까지도 싫어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들이 국제정세에 눈을 뜨게 되면서 북한체제 붕괴가 곧 통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중국경계론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기도 했다. 중국경계론이 확산되면서 북한체제 붕괴 후 무리를 감수하고 바로 조기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오랜 세월 분단되어 있는 동안 남북 간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떤 사람은 겨우 60년 동안 분단되어 있었던 걸 갖고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재의 60년은 18세기까지의 600년에 해당되는 시간이라고 한다.

현대 세계는 하나로 통해 있기 때문에 남북이 분단되어 있더라도 서로 세계로 통해 있었다면 분단의 의미는 의외로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은 세계와 통해 있었지만 북한은 문을 꼭꼭 닫고 살았다. 그러니 분단으로 인해 생기는 이질감과 실질적 차이는 매우 크다.

그래서 이러한 이질감 때문에 혹은 북한에 지출해야 할 통일비용 때문에 젊은 세대의 과반수가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통일이 절대적 당위라는 단순한 의무감 때문에 지지하고 있는 것이지 통일이 즐거운 일일 것이라서 지지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여기서 통일이 당위인지 아닌지,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지 않다. 남북의 많은 순수한 마음들이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조건에서 나도 조건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통일을 지지하고 싶다. 그러나 조기통일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보호해주지도 않고 모든 것을 책임지지도 않는다. 현재 북한사회는 사회주의 사회라고 볼 수도 없고 거의 마피아체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민주주의 사회보다 국가가 보호해주는 것이 훨씬 적고 책임지는 것도 거의 없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준다기보다는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곳이 북한이다.

그러나 악랄한 현 체제가 붕괴되고 나면 북한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뭔가 보호받고 싶은 생각이 급격히 증대될 것이다. 남한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갖가지 많은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보다도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과 책임감이 상당 수준으로 발달해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극단적 기아상태와 혼란상태에서의 자기보호 능력은 남한 주민보다 낫겠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법치사회에서의 개인적 책임감과 자기보호 능력은 남한 주민보다 많이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북한 주민이 국가로부터 뭔가 보호받은 것은 별로 없지만 제대로 된 국가가 등장하면 국가가 많은 것을 돌봐주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관념은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정상화된 이후에 북한의 사회복지가 빠른 속도로 개선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북한이 정상화되더라도 남한의 복지수준과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를 억지로 메우려는 것은 어느 쪽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남한 입장에서 북한의 사회복지를 남한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는 남한의 경제적 능력으로 봤을 때 매우 큰 희생과 타격이 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이것은 좋다고 할 수 없는데 세계의 어느 곳을 보더라도 그 사회의 발전수준에 비해 지나친 사회복지가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경우는 없었다. 사회발전 수준에 비해 지나친 사회복지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주적 태도와 자립적 열정을 꺾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도한 사회복지 혜택이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사회복지 혜택을 주는 측에서나 받는 측에서나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일단 그러한 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아무도 그것을 개혁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자기관성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한 수준의 사회복지 혜택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커져 그것을 잃고 나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조기통일의 다섯 가지 문제점

통일이 궁극적으로 필요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논외로 하자. 이 문제로까지 논의가 확대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지고 논리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일단 궁극적으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통일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꼭 그것이 조기통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 조기통일로 인한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남한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반도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 남한으로부터의 엄청난 지원이 없더라도 북한은 민주화되고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기만 한다면 자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매우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북한의 경제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규모의 지원이나 투자는 시장과 경제관계를 왜곡시키고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남한으로부터의 엄청난 지원은 북한 사람들의 자립, 자조, 자력갱생의 정신을 약화시켜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넷째, 통일된 조건에서 편법적인 남북차별은 성공하기 어려우며 제도를 이리저리 바꾸고 많은 기교를 부려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무수히 나타날 것이다.

다섯째, 통일된 조건에서 남북 간의 감정적인 대립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통일은 시급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통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잘 모른다. 학생들에게 통일이 왜 필요한가를 물어보면 북한에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든지,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나고 함께 살 수 있어서라든지, 남북한의 경제적 장점을 보완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든지 등의 대답을 하는데 이는 통일이 되던 안 되던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민주화된다면 통일되지 않더라도 교류나 이산가족 문제나 경제협력 문제는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일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통일이 되면 안보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별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통일이 되면 안보비용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북한과 미, 일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남한이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간다면 다층적인 안보보완 장치가 마련됨으로써 통일되었을 때보다 오히려 안보위기가 줄어들고 안보비용이 더 싸질 수도 있는 것이다.

통일되면 의무병 제도가 없어져서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단 북한이 민주화되고 나면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안보위기는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되면 통일이 되던 안 되던 새롭게 형성된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적절한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고 현재 병력이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많으니 병력의 일정 정도 감축이나 복무기간의 약간의 단축은 있겠지만 의무병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모병으로 충분한 수의 우수한 병력을 뽑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되고 또 그 예산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통일이 되고 안 되고와는 본질적으로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통일이 미뤄질 때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우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문제는 필자가 『시대정신』 지난 호에 쓴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인가>에 충분히 설명했듯이 그런 우려는 대부분 기우이며 오히려 과도한 경계가 불필요한 안보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설사 통일이 필요하더라도 조기통일은 피해야 하며 북한이 민주화되고 난 이후에라도 남북 간에 교류를 확대하면서 조건이 충분히 성숙한 때를 기다려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무조건 통일을 미루는 것이 꺼림칙하다면 형식은 연방제 비슷하게 하고 내용적으로 국가연합과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상황과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서 이러한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은 통일에 준하는 이런저런 정치적 부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각오하고 추진해야 한다.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 다시 말해 북한 인민을 김정일의 폭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 시급한 것이지 통일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 북한민주화는 빠를수록 좋지만 통일은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 남북관계에는 항상 수많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감상에 빠지지 말고 냉정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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