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허용 대상에 北 주민 빠져

내부 강연 통해 “대미 대결전 승리의 축포”로 소개할 수도

북한 정권은 27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 장면을 한국의 MBC와 미국의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녹화 중계했으나 ‘전 세계’에서 북한 주민들은 빠졌다.

북한 당국은 “미국의 반공화국(반북) 고립.압살책동에 맞서 핵무기를 보유했으며 미국이 여전히 적대국임을 부각시켜 왔기 때문에 자칫 ‘대미 굴복’의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폭파 장면을 내부에 그대로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폭파 후 발표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대답에서 핵신고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냉각탑 폭파는 전혀 내비치지도 않았으며,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되는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TV, 대외용인 평양방송도 오후 8시 메인 뉴스와 10시 마감 뉴스에서 외무성 대변인 ‘대답’ 전문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냉각탑 폭파를 알리면서 아무리 ‘최고지도자의 결단’임을 부각시킨다고 해도 지금까지 내부적으로 핵보유국으로서 자부심을 강조해온 마당에 자칫 주민들이 “핵무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거나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도 공식 매체를 통해 폭파 영상이나 사진은 물론 폭파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냉각탑 폭파 사실을 주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밝히기보다는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함께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있다는 큰 틀에서 보도할 것”이라면서 “완전한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고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에 대응해 행동한다는 논리를 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사회에 대해선 핵문제의 해결 의지를 선전하겠지만, 대내적으로는 ‘핵강국 북한’이 주도권을 쥐고 ‘굴복해오는 미국’에 승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민심 관리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왜 (북한) 언론매체들을 통해 계속 미군철수를 주장하느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질문에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답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완을 막기 위해 주민들에게는 외부세계에 대해서 와는 다른 논리를 전파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의 대외무역이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해외출장 등이 늘어나는 만큼 냉각탑 폭파 사실을 마냥 숨기기도 어려워 내부 강연이나 학습회 등을 통해 “대미전 승리”의 결과물이라는 식의 나름의 논리를 개발해 소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고철더미에 불과한 냉각탑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거나 ‘미국이 선군정치에 굴복해 쓸모없는 냉각탑의 폭파비용을 댔다’거나 ‘미국이 우리에게 굴복해 억지로 씌웠던 테러지원국의 감투를 벗김으로써 미국과의 대결전에서 이긴 축포’라는 등의 논리로 내부 선전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북한은 최근 주민들에게 미국이 약속한 50만t의 식량지원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미국이 우리와의 핵대결전에서 무릎을 끓고 바치는 선군정치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들은 북한 당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말과 행동간 괴리로 인해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무너지는 사태를 무엇보다 경계한다면서 줄곧 핵보유국으로서 긍지를 강조해온 처지에서 사전교육 없이 핵문제 해결 과정을 알리는 데 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 매체들도 그동안 핵협상 과정과 진전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대신 핵문제가 미국의 적대정책의 산물이며 근본적으로 북.미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되풀이 주장하고 있다.

아예 냉각탑 폭파 사실을 내부적으로도 밝히지 않아 구전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려지더라도 북한 매체들은 적대적인 국제환경 속에서 ‘자위적 억제력’의 정당성과 ‘적대국으로서 미국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내부 동요를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다만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2.13합의’에 대해 “회담에서 각 측은 조선(북한)의 핵시설 가동 임시중지와 관련해 중유 100만t에 해당한 경제, 에네르기(에너지)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조선과 미국은 현안 문제들을 해결하고 완전한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쌍무회담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소개한 것처럼 미국 등의 상응조치 위주로 전하면서 폭파 사실을 곁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북한 정권으로선 냉각탑 폭파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 ‘문제 해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해소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소개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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