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 다해 나무 옮기는 죄인들…감시병은 ‘히죽히죽’”

일반적으로 다들 아름답다고 느끼는 봄을 우리 죄인들은 ‘의붓어머니 봄’이라고 부른다. 교화소 죄인들은 여름을 ‘모기 여름’, 가을을 ‘어머니 가을’, 겨울을 ‘목이 없는 겨울’이라고 부른다. ‘목이 없는 겨울’이란 너무 추워서 몸을 움츠리다 보면 꼭 목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화소에서는 담당 보안원의 지시에 따라 당일의 작업과제가 달라진다. 하루는 우리 1조에 나무 찍기 과제가 주어졌다. 2조는 조장이 책임지고 제방공사에 나가고, 3조는 2개 분조로 나눠져 감방 똥 푸기와 돼지우리 짓는 일이 맡겨졌다.

담당 관리는 3조의 1개 분조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고, 고정 초병이었던 영수는 제방공사로, 또 한 명의 초병이었던 정철이는 우리 1조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나는 14명의 조원들과 함께 도끼와 하산바를 착용하고 목적지인 원골로 향했다.

과제는 한 사람당 직경 25cm, 길이 3m 이상의 피나무를 한 대씩 찍는 것이었다. 원골까지는 10리가 조금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전날 제방 쌓기 작업에서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나는 조원들에게 내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산 위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아침식사 때 뭘 잘못 먹었는지 초병 정철이가 계속 똥 씹은 표정으로 “이런 속도로 언제 일을 끝마치겠나?”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걸음을 알맞게 조절하면서 행군을 진행했다.

“야, 준하 이 새끼야! 뛰라니까? 원골까지 뛰어!”
“선생님, 아이들이 어제 제방공사에서 많이 지쳤습니다. 좀 천천히 가도 됩니다. 어쨌든 입방하는 시간에 맞추면 되지 않습니까?”
“이 새끼 개수작 말고 뛰라면 뛰어!”

나는 입이 써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달릴 때마다 ‘절그럭, 절그럭’ 하고 하산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조원들에게 모두 내 속도에 맞추라고 당부하며 곧 앞으로 나섰다. 나는 구보 속도를 높여 우리와 초병 정철이 사이를 어지간히 벌여 놓은 다음에야 속도를 줄였다.

“석기(‘돌머리’의 은어) 같은 새끼! 자기는 아침에 밥이라두 처먹고 나오니 우리같이 배고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 리가 없지!”

거리낌 없이 대놓고 욕을 하는 나를 보고 조원들은 통쾌한 사람이라고 웃고 떠들었다. 교화소 관리들의 살림집 마을을 지나쳐 산 위를 올라가다 교화소 부소장과 마주쳤다. 부소장과 정치부장, 그리고 몇몇 간부들의 살림집은 마을과 약 50m쯤 떨어져 있었다. 밤에 무슨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듯한 부소장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야, 여기 반장이 누구야?”
“제가 조장입니다. 반장은 제방공사에 나갔습니다.”
“벌목반인 모양인데 초병은 왜 안 보여?”
“뒤에서 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길모퉁이로 초병 정철이가 모자까지 벗어들고 헐레벌떡 뛰어오다가 부소장을 보고는 기겁하여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정철이구나! 그런데 왜 너 혼자야!”
“예, 저기 영수 동지는 제방공사에…….”
“그러면 경비대에 말하고 경비원을 뽑아가야지 왜 혼자 와?”

짜증이 섞인 부소장의 지시에 초병 정철이는 우리에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고 재촉했다.

“에이, 머저리 같은 것이 조장 말대로 걸어왔으면 부소장과 안 만났지!”

조원들이 뒤에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초병 정철이 경비대에 도착하여 경비소대장에게 보고하자 곧 어려보이는 초병이 울상이 되어 무기장 구류를 추슬러 올리며 우리와 동행하였다. 경비대를 떠나자 초병 정철이는 대뜸 나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야 준하, 이 새끼! 너 내가 뛰란다고 그렇게 빨리 뛰면 어떻해?”
“선생님이 빨리 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새끼, 어디에 대고 대답질이야?”

조선말에 “시어머니 역정이 개 옆구리를 차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이 어린 정철 초병이 화를 못 이겨 그 불만을 나에게 퍼붓기로 작정한 것이다. 화가 날 대로 난 그는 여차하면 나에게 발길질을 할 태세였다. 하지만 정철 초병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를 폭력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면 나를 더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교화소 생활에 익숙한 나는 담당 관리원 외에는 초병들이 죄인들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초병들이 나를 때리려고 하면 더욱 더 말로 대들었다. 그렇게 산에 올라 달랑 밥 한 덩어리 먹어가며 힘들게 피나무를 끊어내고 하산길에 나섰다.

진짜 힘든 일은 지금부터였다. 나는 제일 뒤에서 앞 사람의 나무를 내가 끌고 있는 나무 앞머리로 받쳐 주기도 하고, 경사막에서는 하산바를 벗어버리고 같이 끌어올려 주기도 하면서 중간까지 내려왔다.

내리막길에서 내가 끌던 나무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애송이 초병이 내 나무에 올라타서 미끄럼을 타는 어린애 마냥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내 나무는 굵기가 굵어서 가구 재료로 쓰기에 딱 좋았을 뿐만 아니라 올라타도 평평한 매생이처럼 생겼다.

봄철이라 골짜기는 얼음이 녹으면서 땅이 질척거렸다. 내리막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길에 다다랐는데도 이 애송이 초병이 나무에서 내릴 생각을 안 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씨팔 재수 없는 새끼!’라고 욕을 했지만 겉으로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악으로 있는 힘을 다해 경사막을 올라서자 나무에 올라타고 있던 애송이 초병이 “너 힘이 장사구나? 교화소 철문 앞까지 나를 한번 끌고 가봐라!” 하며 히히닥거렸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을 애써 참다가 좋은 꾀가 떠올랐다.

그래서 비틀거리는 척하면서 큰 바위에 나무를 충돌시켜 버렸다. 나무 위에서 중심을 잡느라 총을 멘 채 까마귀가 날갯짓 하듯 허둥대던 애송이는 바위에 부딪힌 나무와 함께 진흙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서 목의 경동맥을 시퍼렇게 세우며 68자동보총의 개머리판을 내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하산바를 메고 있던 나는 허리를 숙여 애송이 초병의 공격을 피했다. 호걸처럼 멋진 동작으로 68자동보총을 휘두르던 애송이 초병은 내 등에 무릎이 걸리면서 다시 진흙탕으로 곤두박질 쳤다.

어깨에서 하산바를 벗으며 아래를 보니 10m 밑에서는 초병 정철이와 조원들이 서서 나와 애송이 초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진흙탕에서 뒹굴던 애송이 초병이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을 향해오던 개머리판을 손으로 막았다.

무심결에 총을 막는다고 막았지만 어느 순간 그 총은 내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총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애송이 초병도 당황하긴 매 한가지였다. 애송이 초병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내손에 쥐어진 총을 한 번 쳐다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10m 아래에 있던 초병 정철의 격발기 당기는 소리를 들은 것은 내가 먼저였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애송이 초병 앞에 총을 내던지고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서 주저앉았다. 초병 정철이는 허둥지둥 나무 몽둥이를 찾아들고 올라와서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애송이 초병 또한 이악스러운 발길질을 시작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으로 얼굴을 꼭 싸쥐고 때리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초병 정철이는 한 10번 몽둥이질을 하고 그쳤는데, 애송이 초병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온갖 쌍소리를 내뱉으며 발광을 했다.

그날따라 일이 안 되려고 했는지, 자기 집에 돼지우리를 지으러 갔던 담당 관리원은 목재가 부족하여 자기 집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교화소로 돌아갔다가 부소장에게 불려가서 호되게 비판받고 우리가 작업하는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담당 관리원은 애송이 초병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나와 그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초병 정철이를 발견했다. 가뜩이나 부소장에게 욕먹은 일로 초병 정철이에게 화가 나있던 담당 관리원은 우선 애송이 초병에게 발길질을 하고 다음으로 초병 정철이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 왜 때립니까?”
“야 임마! 그만큼 올라가면서 간부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제일 사람이 없는 시간에 하필이면 부소장 눈에 걸려? 그리고 뭘 잘했다고 이 아이한테 행패야?”

본인이 두들겨 팰 때는 아까운 줄 모르더니 그래도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자기가 관리하는 죄인을 두들겨 패는 것을 보니 화가 난 모양이다.

“이 새끼가 내 총을 뺏었습니다. 알고나 편드시오. 쳇.”

담당 지도원은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고해 바쳤다.

“그것 봐. 제풀에 제가 놀라가지고. 도적놈들 앞에서 망신스럽지도 않나?”
“아, 지도원 동지! 너무 이 새끼만 감싸고도는 거 아닙니까?”
“됐다 임마. 너는 말할 상대도 안 돼! 야, 너희들 빨리 나무 끌고 입방하라!”

나는 아직도 놀란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우리 조원들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웃어보였다. 보이지 않게 돌아서서 웃음을 참고 킥킥거리던 조원들과 함께 나는 신이 나서 한걸음에 교화소까지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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