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만 알았는데…” 남북 이산가족 눈물의 상봉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이 23일 첫 단체상봉을 갖고 꿈에 그리던 가족들과 만났다.


23일 오후 3시7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이산상봉 단체상봉에는 북측 상봉대상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60여년 만에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다.


상봉단은 상봉행사를 위해 이날 오전 8시15분쯤 사전집결지인 강원 속초를 출발, 오후 1시20분 상봉장소인 금강산에 도착했다. 이어 오후 3시께 금강산면회소에 남측 가족 357명이 대연회장에 먼저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 들뜬 표정으로 북측 가족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 뒤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북측 가족이 입장하자 테이블 곳곳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남측 가족들은 대부분 6·25 전쟁 중에 소식이 끊긴 부모, 형제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상봉의 기쁨도 배가 됐다.


우리측 최고령자인 이오순(96)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남동생 조원제(83) 씨를 만났다. 조 씨가 들어오자 한 눈에 동생을 알아본 이 할머니는 동생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고 오열했다. 조 씨도 “누님, 누님, 우리 누님, 이게 얼마만이오. 난 누님이 안계실줄 알았고 누님”이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오빠 류근철(81) 씨를 만난 류정희(69) 씨는 “오빠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며 무당에게 점도 봤다”며 “어떤 무당은 죽었다고, 또 어떤 무당은 살았다고 한 뒤로 찾는 걸 포기했다”고 말했다. 류 씨는 “사망신고까지 한 오빠가 살아서 우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적 같았다”며 “아직도 죽었나 살았나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6·25때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형 김봉기(83) 씨가 죽은 줄 알고 수십 년 간 제사를 지내왔다는 동생 김연주(79) 씨는 “형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제사를 지냈다. 알고 있었냐”고 말했다. 그러자 형 봉기씨는 “몇 십년이나 제사를 지내다니 이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냐”며 긴 탄식을 했다.


이번 상봉을 위해 해외에서 거주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가족들도 있었다.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꾼 미국 국적의 김경숙(81) 씨는 이날 북한에 살고 있는 오빠 전영의(84) 씨를 만났고, 캐나다에 거주하던 최정수 씨는 언니 최정애(80) 씨와 상봉했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북쪽 박창순(86) 씨의 남쪽 가족 또한 서울에서 공부하다 박 씨가 행방불명되자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를 했다고 한다. 동생 박풍림(74) 씨는 “형이 학비와 숙식비가 면제되는 체신학교에 다녔는데 6·25때 시골로 못 내려와서 돌아가신 줄 알고 사망신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날 상봉에 함께 참가한 형 형순(93), 여동생 소림(81), 남동생 세림(77) 씨는 창순 씨와 서로 나이 차이를 계산하면서 띠를 서로 묻고 옥신각신하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한편 상봉단은 이날 단체상봉에 이어 오후 7시부터 우리측 주최로 진행된 환영만찬을 끝으로 이산상봉 첫날 공식행사를 마무리 했다. 이들은 24일에는 개별상봉(오전 9시~11시), 공동중식(정오~오후 2시), 가족단위 상봉(오후 4시~6시)을 갖는다. 25일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상봉 일정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