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내보내는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안) 해설

1. 머리말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가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파괴를 안겨준 한국전쟁이란 비극을 치른 우리 민족에게 평화를 회복하고 정착시키는 평화체제의 구축만큼 절실한 과제는 없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제4조 60항에서 “한국(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3개월 내에……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조선)으로부터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고 명시했다.


유엔 총회도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 28일 결의 711(Ⅶ)에서 정전협정 60항을 이행하기 위한 정치회의가 늦어도 1953년 10월 27일 이전에 개최될 수 있도록 미국이 다른 당사국과 협의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무려 54년이 지난 이제야 비로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정전협정과 그에 관한 유엔 총회 결의를 이행해야 할 핵심 당사국으로서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그 동안 50년 넘게 방기해 옴으로써 한반도는 잇따라 전쟁위기에 내몰린 셈이다.


정전 이후 북은 지속적으로 평화협정 또는 평화보장체제를 요구해 왔다. 그렇지만 주한미군 철수 논의 자체를 금기로 여기는 미국은 형식적인 대응 차원에서 70년대 중후반부터 3∼4자회담 등을 제안했을 뿐, 북의 요구를 거절해 왔다. 남측 역시 미국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순응해 오다 겨우 김영삼 정부에 와서야 수세적 차원에서 4자회담을 제안할 정도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비로소 평화협정이나 평화선언에 대한 본격적인 정책이 시도되었지만 부시정부의 방해로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후 2006년 북의 핵실험이 기폭제가 되어 이뤄진 2․l3합의(“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양 축으로 삼고 있는 바 이로써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본격적으로 점화된 셈이다.


평화는 인간의 집단적 생명권 박탈행위를 제거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권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사회적인 절대 규범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 종전선언도 하지 못한 상태다. 남과 북은 전투행위를 중단했지만 여전히 법적으로는 전쟁상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군사적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군비경쟁이 이어져 왔고, 전쟁 연습이 계속되고, 전쟁위기가 연속적으로 엄습해오고 있다.


한반도 평화(보장)체제는 당사자가 전쟁을 실질적으로 일으킬 수 없는, 곧 전쟁 배제 구조를 장기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한국전쟁을 법적으로 종결하고 그와 함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회복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공격적 국방전력을 방어 위주의 국방전력으로 바꾸는 평화군축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단순히 평화를 구축하는 수준에 머물 수만은 없다. 이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는 냉전의 결과물인 민족 분단과 민족 적대라는 비극적 현상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디딤돌, 통일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남북 적대를 내재화 하고 있는 분단체제 극복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 차원을 넘어서 동북아 평화체제로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자리매김 하면서 그 선행과제로 평화협정 안을 만들고 대중화 하여 궁극적으로 이를 구현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의 실현은 한반도가 지난 60년 이상 겪어온 전쟁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며,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며, 또 이를 발판으로 동북아 평화에 디딤돌을 놓게 되어 지구촌 평화를 증진하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쟁위기를 가져오고 통일을 가로막는 핵심적 요소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곧, 외국군을 철수시키고 외국 군사기지를 철거하고 군사동맹을 금지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 모두 비공격적 방위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런 핵심적 요구사항에 근거하여 이 협정안은,


첫째, 정전협정 4조 60항에 규정된 모든 외국군 철수와 한국(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 9∙19공동성명과 2∙13합의에 명시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permanent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를 명실 공히 이룩하기 위해 큰 틀에서 요구되는 필요조건을 거의 포괄했다. 곧, 평화체제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전쟁 배제 구조를 구축하고 이를 장기적으로 공고화하는 데 요구되는 핵심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가 당사국들의 단순한 평화 공존을 넘어서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동북아시아 나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또 정전협정 60항의 취지에 따라 평화협정 안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본 권리와 외세 개입 배격의 원칙을 명시하였다.


셋째 한국사회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군사동맹 철폐, 군축 등의 문제는 성역처럼 여겨져 불가침 영역에 가깝다. 이런 사회적 인식이 우리 사회에 내면화 되어 오래 전에 관변연구자들이 내놓은 평화협정 안은 말할 것도 없고 9∙19 공동성명 이후 나온,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평화협정 시안조차도 위의 내용들을 불가침의 성역으로 남겨둠으로써 근본적인 한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 협정시안은, 냉전성역에 갇히거나 미국 지배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를 과감하게 털어내는 원칙을 견지하였다.
2. 시안의 기본 틀과 기조 해설


총론 수준에서 이 협정안의 기본 틀과 내용적 기조, 의의, 특징을 살펴본다. 


가. 기본 틀 


(1) 조약이 아닌 협정으로 하고 서명 즉시 발효하도록 한 이유


의회의 비준을 거치는 조약(미국의 경우 의회행정협정도 의회 비준을 받는다는 점에서 조약 범위에 든다.)은 의회의 비준 없이도 법적 효력을 갖는 협정에 비해 그 법적 지위가 높아지고 그만큼 구속력도 크다.


미국의 경우 조약은 상원 2/3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성립된다. 조약과 달리 협정은 두 가지로 나뉜다. 대통령이 의회(상․하원)에 상정하여 과반수의 동의를 획득하는 의회행정협정(congressional-executive agreement)과 의회의 동의와 무관하게 행정부가 맺는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다.


그런데 조약은 구속력이 높은 수준의 국제적 합의라는 매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냉전의식과 반북의식이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상원 2/3 의석 확보란 쉽지 않다. 또 과반을 확보해야 하는 의회행정협정의 경우에도 조약에 비해서는 용이하겠지만 미국 내 정치상황에 한반도 평화협정의 장래를 맡기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반면 미국에서 행정협정은 의회 동의와 무관하게 정부 사이 외교적 합의로 그 절차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체결 절차가 상대적으로 쉽다. 협정으로 한 것은 어렵사리 평화협정에 당사국들이 합의하고서도 국내 절차 때문에 불필요하게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평화협정의 발효가 지체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자는 취지다. 또 조약이든 협정이든 그것이 각 당사국들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데서는 차이가 없다. 
 
(2) 미국과 남∙북, 중국을 당사자로 한 협정


이 평화협정(안)은 미국, 남, 북, 중국 4자를 당사국으로 한데서 그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이 안은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평화를 회복하는데서 핵심적인 지위를 갖는 미국을 당사국의 하나로 명시하고 한반도 평화 회복에 필수적인 사항들에 관한 미국의 이행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평화협정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요건(당사국)을 충족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당사국에서 빠지거나 보증자의 지위를 갖는다면 그 때의 평화협정은 최소한의 요건조차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화협정 당사자에 관한 남쪽 정부의 입장은 2․13합의 이전에 ‘남․북 당사자와 미․중 보증자’라는 ‘2+2’ 형식이었다. 대부분의 관변 연구기관이나 학자들도 남북 당사자 안을 주장해왔다. 이들은 남북 당사자 안이 ‘자주적’이라며 미국을 당사자에서 제외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사실상 지휘하고 지금도 북과 적대관계에 있고, 전쟁수행이 가능한 무력을 한반도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남쪽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이 당사국에서 빠진 평화협정이란 전쟁 위협이 구조적으로 제거되는 평화체제를 세울 수 없고 대한반도 개입을 지속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두둔하는 것이다.


①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이므로 정전협정의 핵심당사자인 미국이 당사자가 아닌 보증자로 지위를 바꾸는 것은 형식논리에도 맞지 않으며 평화 회복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해 주는 셈이다.


또 일부는 형식논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유엔 참전국 모두가 참여해야 하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미국도 반드시 당사자가 될 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북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을 상대로 한국전쟁을 수행한 군사기구인 ‘유엔군사령부’는 ‘미국 지휘 하의 통합사령부’(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로 미국이 실질적인 전쟁 지휘 역할을 전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유엔 참전국을 미국과 동일한 지위와 자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② 미국은 1958년에 완전히 철군한 중국군과는 달리 지금까지 남쪽에 무력을 주둔시키고 있고, 남쪽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으며, 대북 전쟁 위협을 지속적으로 가해 오는 등, 실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전쟁을 주도하는 주체가 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위협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평화협정에서 미국이 빠진다면 그 협정은 평화의 제도화라는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속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다.

③ ‘2+2’형식을 주장하는 경우, 보증형식의 역사적 사례로 로카르노조약을 든다. 그렇지만 로카르노조약에서 보증자로 거론되는 영국과 이탈리아는 실제 보증자가 아닌 협정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로카르노조약을 근거로 한 미국의 보증자 형식의 참여는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또 유엔 또는 미국과 러시아 등이 중동평화조약 등에 증인(witness)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보증자로서 참여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증자에 대한 명확한 역할과 의무 설정이 없이 보증자라는 막연한 지위를 부여하게 되면 당사자로서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면제해 주는 대신 협정 이행과정에서 간섭만 자행할 여지를 줄 우려가 있다. 


④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넘겨준 남측은 군령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기에, 미국이 제외된 채 남측이 단독으로 평화 회복이나 제도화 과정에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남북만을 당사자로 하는 협정은 평화협정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내용도 확보하지 못하고 그 이행도 보장되지 않는, 휴지나 다를 바 없는 협정으로 귀착될 위험을 가진다.


⑤ 1953년 이후 이제까지 평화협정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자국의 당사자 지위를 부정해 오다가 평화협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별다른 해명 없이 당사자 지위를 인정하게 된 것은 남북당사자 안의 문제점을 자인하는 것이다.


또 협정 당사자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4개국 당사자로 밝혀지자, 남북당사자 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한 학자 또는 관변 연구자들이 거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들의 기존 남북당사자 안이 정당성이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 있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셈이다.


(3) 민족 내부 특수관계로서의 남과 북의 법적 지위


이 평화협정(안)에서 남과 북은 각기 다른 당사국인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국가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는다. 즉 이 협정(안)에서 남 또는 북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갖는 법적 지위는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가 기본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남과 북은 각기 상대에 대해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로서 이 평화협정 당사자로 참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평화협정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이라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반영한 특수형태의 조약이다. 남과 북 간의 특수한 합의라는 국제법상 의미는 국가와 국가 간의 합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남과 북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규정을 둔 것은 남과 북이 상대방을 서로 국가로 승인하지 아니하려는 통일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서 기본합의서의 체결로 남과 북이 상호 묵시적 국가승인을 한 효과는 발생하지 아니하지만 그것은 조약으로서의 그 밖의 모든 효력을 갖는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각 대표로 남과 북이 이 평화협정에 서명하더라도 남북기본합의서 상에 규정된 남과 북 사이의 관계-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은 남과 북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합의서는 여전히 유효하고 또 평화협정으로 남이 북을, 북이 남을 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에서 규정된 특수관계로서의 남과 북의 법적 지위는 이 협정 전문(“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라는 표현)과 1장 ‘한국(조선)인의 기본권리’, 4장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불가침과 통일’ 부분에 적용된다. 4장에서 불가침 경계선이 국경선으로 표시되지 않고 통일 이전까지의 잠정적인 경계선임이 명시돼 있는 것은 남과 북의 지위가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 또 4장 20조 통일방식에 관한 조항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 등에 의거한 통일을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4) 기본 협정과 부속합의서로 구성


이 협정시안은 하나의 기본협정(협정 본문)과 수 개의 부속합의서로 구성된다. 기본협정은 평화협정이 담아야 할 기본 원칙과 핵심 내용을 담고 있고, 부속합의서는 세부적인 사항이나 실무적 사항을 담는 형태를 취했다.


부속합의서는 그 내용에 따라서 평화협정 본문과 함께 동시에 서명될 문서(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군축 관련 부속합의서 등)와 평화협정이 체결된 직후 관련국들(가령 국제평화감시단 구성 등)이 작성해야 할 문서로 나뉜다.


부속합의서는 아래 사항에 대해 맺어질 것이다.


(1) 4조, 5조, 19조 등이 규정한 외국군 철수와 외국군 기지 철거


(2) 8조, 12조 등이 규정한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한 북미 사이 합의서


(3) 17조 2항에서 규정한 해상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에 관한 남북 사이 합의서


(4) 18조에서 규정한 기존 군사동맹 해체와 관련한 세부사항


(5) 22조에서 규정한 평화지대의 남북 공동관리에 관한 사항


(6) 23조에서 규정한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사항


(7) 25조에서 규정한 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세부사항


(8) 26조에서 규정한 상호 군축의 세부 사항에 관한 부속 합의서


(9) 28조 3항에서 규정한 4자 공동군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부속합의서


(10) 29조 3항에서 규정한 남북공동평화관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위한 남북(북남) 사이 합의서


(11) 7장에서 규정한 국제평화감시단의 운영에 관한 세부 합의서


나. 핵심 기조와 단계별 이행계획


(1) 한국(조선)민족(people)의 자결권을 맨 앞 장에 둠


이 안의 큰 특징은 한국(조선)민족의 자결권을 1장에 규정한데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의 자결권을 기본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남북 분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남북분단은 주지하듯이 우리 민족의 의사가 아니라 전적으로 외세 개입의 결과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가 파괴된 근본원인은 결국 우리 민족의 자결권이 부정된 데 따른 것이다.


정전 이후 남쪽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이 전면적이고 상시적이 되고 남북 분단이 더욱 고착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결권은 극도로 위축, 억제되었다. 남북 화해와 통일에 대한 남쪽 인민의 자주적 요구는 미국 및 분단세력의 탄압 때문에 싹부터 잘리거나 개화되지 못하였으며 북쪽 인민의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수많은 제의도 강제된 남북 대결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외세에 의해 우리 민족의 자결권이 부정돼 온 역사적 과정은 우리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지 않고서는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기대하거나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반도에서 삶의 주체는 곧 우리 민족이지 외세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사(자결권)에 부합될 때라야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외세도 한반도 평화를 바랄 수 있으나 우리 민족의 자결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평화라면 그것이 굴절되고 왜곡된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민족자결의 권리를 가장 먼저 천명함으로써 이 평화협정이 우리 민족 전체의 요구(자결권)에 근거한 협정이 되어야 함을 밝힌 것이다.


(2)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 및 군사동맹 폐기 등 실질적인 전쟁종료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조치의 규정


이 평화협정 안은 한국전쟁의 법적 종결을 선언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데 필요한 군사적 조치를 함께 담고 있다. 이런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 없이 단순히 전쟁종식 선언에만 그친다면 이 평화협정은 껍데기가 되고 도리어 한반도의 군사긴장 구조를 합법화, 영구화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조치로서는 우선 유엔사의 해체 그리고 유엔사의 활동에 법적 근거를 부여한 유엔결의의 효력 상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해 온 미국 군대의 철수와 미군기지의 철거가 필요하다. 주한미군 철수는 평화협정이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회복하며 향후 한반도 평화를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명실상부한 협정이 되는가 아니면 허울뿐인 평화협정으로 전락하는가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파견되었고 또 한국전쟁을 직접 지휘하였으며 한국전쟁 재발을 상정해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적대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마당에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한다면 이는 언제든 대북 공격을 재개할 수 있으며 한반도를 전쟁터로 삼겠다는 의사표시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또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이 용인된다면 그것은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영구화를 의미함으로써 한국의 대미 종속과 주권침해를 연장, 강화할 것이다.


또 평화협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주한미군의 주둔은 남북 간의 군사력 불균형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불균형을 고착, 심화시킴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임은 물론이다. 평화협정의 체결로 남쪽 및 미국을 일방으로 하고 북쪽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전쟁이 종결되는데 한반도에 계속 미군이 주둔한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은 한반도 주둔 미군이 다름 아닌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은 군비경쟁을 한반도에서 동북아시아로 확대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이점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없는 한반도 평화협정은 생각할 수 없다.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주한미군 주둔을 법적으로 근거지우는 한미동맹 또한 해체되어야 한다. 물론 그에 상응해 북이 중국과 맺은 군사동맹도 해체되어야 한다. 이들 군사동맹은 한국전쟁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전쟁의 재발을 상정하여 결성된, 전쟁수행이 목적인 전쟁공동체라 할 수 있다. 군사동맹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기로 한 마당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다.


(3) 남북 불가침과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등의 평화 회복과 영구적 평화 보장 조치의 규정


평화회복은 전쟁종결 선언과 그에 따른 군사적 조치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적대 쌍방(북미, 남북) 사이에 교전국 관계를 끝낼 뿐만 아니라 상호 인정과 내정 불간섭 그리고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사용 포기, 군비경쟁 중지와 군사적 신뢰구축, 군축 등과 같은 조치가 함께 취해져야 비로소 평화회복이 실현된다.


상호 체제 인정과 주권존중, 내정 불간섭 그리고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사용의 포기는 주권국가들 사이의 평화공존과 선린우호관계를 위한 국제법적 원칙으로 정립돼 있다. 그렇지만 이들 내용은 다분히 원칙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으로 군비경쟁을 막고 평화를 영속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만약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 빠진다면 평화회복은 알맹이 없는 속빈 강정이 되고 만다. 이에 이 평화협정은 적대 쌍방 간의 군사적 대치를 해소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조치와 함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함께 포함하도록 하였다.


(4) 핵우산 제공 금지와 북 핵무기 폐기 등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의 하나로 규정


이 안은 한반도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요 내용의 하나로 제시한다.


한반도 핵 문제는 미국이 한국전쟁 중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이래 또 정전협정을 위반해 미국이 남쪽에 핵무기를 반입한 1950년대 후반 이래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미국은 남쪽에서 1990년대 들어 핵무기를 철수했다고 하나 남쪽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공식 정책으로 하고 있으며 대북 선제 핵공격 전략을 국가안보정책으로 세워놓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선제)핵공격 위협에 대한 억지력으로 북쪽이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북쪽 핵문제가 더해지게 되었다. 미국이 대북 핵선제공격을 공언하고 핵우산을 남쪽에 제공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북이 핵무기를 실험, 보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평화협정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우리 민족이 핵전쟁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이 평화협정 안은 한반도 비핵화(핵우산 제공 금지 포함)를 주요 내용의 하나로 담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 문제 특히 북쪽 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6자회담에서 먼저 다뤄지고 있다.


북쪽 핵 문제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대북 핵전쟁 위협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북쪽 핵 문제의 해결(북 핵무기 포기를 포함)을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폐지(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고 대북 핵 위협 및 사용 포기, 대북 불가침에 관한 제도적 보장이 요구된다. 또 북은 에너지개발(핵의 평화적 이용) 차원에서도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북쪽 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핵에너지와 관련된 북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안조치(경수로 건설 등)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위의 사항들은 평화협정에서 담아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이에 이 평화협정 안은 북미 간 평화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 북미관계 정상화, 무력불사용 원칙 천명, 핵우산 제공 금지, 주한미군 철수, 북 핵무기 포기 등)을 담도록 하였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보면 위 사안들은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6자회담 틀 내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서 합의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북 핵 문제와 관련된 6자 회담의 선 합의 가능성을 고려해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을 명시하였으며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은 되도록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와 병행될 때 국민적 설득력과 명분도 더욱 갖게 되고 명실상부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당사국들로 하여금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를 위한 노력 의무를 규정하였다. 다만 동북아시아비핵지대화는 그 당사국들이 이 평화협정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므로 이행의 의무를 ‘노력한다.’로 표현하였다.


한편 한반도 평화협정의 주요 임무로 북 핵무기를 포함한 북쪽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군축은 그 직접적 당사자가 특정한 일부 당사국에 한정돼서는 안 되며 남과 미국, 북을 다 포괄해야 되고 병력도 특정 무기체계에 한정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위의 주장은 형평성과 합리성을 결여한 주장이다. 이 평화협정 안은 군축의 의무와 범위가 대상 국가나 병력에서 북쪽만이 아닌 남과 미국까지를 모두 포괄하도록 하고 있다.


(5) 미군철수와 북 핵무기 폐기 및 남북 군축을 상호 연동하여 실시


이 안은 미군철수, 북 핵무기 폐기, 남북 상호군축이 서로 연동돼서 3년 내에 동시에 이행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3년 내에 철수하도록 하되 그 기간에 북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또 남북은 상호 군축을 이행하도록 하였다.


이는 동시 행동의 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당사국들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의무사항을 이행할 수 있다. 또 3년 내에 의무사항들이 동시에 이행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협정은 그만큼 뚜렷한 이행전망을 당사국의 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남북이 상호 군축을 실시하고 그와 연동해 미군철수가 이뤄지게 된다면 미군철수가 안보 공백을 불러올 것이라는 오도된 여론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 온 많은 남쪽 대중들의 의구심을 더는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6) 평화협정의 통일 디딤돌 역할을 천명


이 안은 통일문제를 전문과 1장 1조 및 4장 20조에서 다루고 있다. 순서대로 보면 전문에서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 협정의 기여 표명, 1조에서는 통일에 대한 한민족의 권리, 20조에서는 통일 방식이 언급돼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과 통일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분단에서 빚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분단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의 궁극적 보장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전협정의 건의로 마련된 조선(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네바 정치회의에서도 주요 의제는 통일방식과 외국군철수 문제였다.


따라서 이 평화협정 안 또한 한반도 평화통일의 원칙과 방식에 관한 우리 민족의 기존 합의와 그에 대한 다른 당사국들의 존중 의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현 정세로 볼 때 평화협정이 통일문제의 해결까지를 직접적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며 통일의 디딤돌 역할을 최대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회복되고 남북이 군사적 대결을 끝내며 외세의 군사적 개입이 배제된다면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노력은 그간 통일을 막아온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어 성큼 통일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통일의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서도 평화협정은 외세의 군사적 개입이나 간섭의 여지를 철저히 봉쇄해야 하며 남북 사이에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 철저히 이행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3. 세부 해설


각론 수준에서 장별 내용과 의의 및 쟁점 등을 살펴본다.


가. 전문


전문에는 이 평화협정(시안)의 당사국과 법적 근거, 목적(취지)이 밝혀져 있다.


우선 전문은 이 협정의 서명 당사자로서 이행의 포괄적 책임(의무와 권한)을 갖는 당사국이 미국과 남, 북, 중국 4자임이 명시돼 있다.


다음으로 이 평화협정의 법적 근거가 조선(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를 위한 정치회의 개최를 규정한 정전협정 4조 60항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런 상기는 이 협정의 기본 임무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라고 하는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그 이행의 본질적 내용이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외국군대 철수’임을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 전문은 이 평화협정의 직접적인 목적(취지)이 정전상태의 종식과 전쟁재발의 방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보장에 있음을 밝힌다. 이는 단순히 전쟁의 법적 종결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전쟁재발 방지와 영구적인 평화 보장을 협정의 목적으로 천명함으로써 평화의 회복과 공고화를 위한 실질적인 이행과제(조치)들을 협정 본문에 담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협정이 분단 민족으로서의 수난의 역사를 끝내고 한(조선)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이 협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한(조선)민족의 통일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정전협정에 규정된 대로 한국(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외국군대의 철수와 통일국가의 수립은 핵심적인 요건이다. 그렇지만 정전협정을 시급히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점과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준비정도, 통일국가수립을 앞당기는데서 갖는 평화협정의 전향적인 의의 등을 고려해 이 협정 전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 이 협정이 기여할(강조 필자)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평화협정 체결이 평화체제의 구축과 함께 민족통일의 디딤돌 위상도 가짐을 명시한 것이다.


전문은 또한 이 협정의 목적이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회복의 의미가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국한되지 않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듯이 한반도는 동북아시아 패권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 세계적 패권국가들의 대동북아시아 군사개입과 첨예한 진영 간 대결을 불러왔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회복된다면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한 세계패권세력들의 군사적 개입이나 진영 간 대립은 크게 약화 될 것이고 남과 북(우리 민족)이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크게 증진될 수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미국, 일본, 남한, 대만,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세계의 경제군사강국이 집결돼 있어 이 지역에서 평화가 증진된다면 세계의 평화지형 또한 크게 바뀌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갖는 이런 상관성은 이 협정의 지역적, 국제적 의의와 호소력을 보여준다.


나. 1장 한국(조선)인의 기본 권리


(1) 1장 한(조선)민족의 자결권 규정


① 실정국제법의 권리로서의 민족자결권과 민족자결권의 국제법적 주체로서의 ‘민족’ 개념


모든 민족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권리 즉 민족자결권을 갖는다. 민족자결권은 처음 정치적 권리로 출발했지만 1945년 유엔 헌장(1조 2항, 55조)에 명시됨으로써 처음 국제법의 법 원리로 되었다. 이어 1960년 12월 14일 유엔 총회는 “모든 민족은 자결권을 갖는다”고 선언한 결의 1514(ⅩⅤ)(식민지 독립부여 선언)를 채택하였으며 1966년 국제(유엔)인권규약(통합 1조)의 채택으로 민족자결권은 조약(실정국제법)상의 권리로 되었고 1970년 10월 24일 유엔 총회의 우호관계선언(결의 2625)에 다시 규정되었다. 또 민족자결권을 규정한 조약에는 국제인권규약 외에도 1977년에 공식으로 채택된 ‘1949년 8월 12일 자 제네바 제 협약에 추가되는,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가 있다. 이 의정서의 1조 4항은 유엔헌장과 우호관계선언에 의해 보장된 ‘민족 자결권’이 식민지 지배 및 외국의 점령 그리고 인종차별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무력충돌에도 적용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민족 자결권은 이제 실정 국제법상의 강행규정으로, 국제법상의 법 원리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민족자결권이 국제법상의 법원리로 되면서 민족자결권의 주체인 ‘민족’(people)도 국제법적 인격을 가진 국제법의 주체로 되었고 자결에 대한 자유로운 법률상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엔헌장 1조 2항과 55조 또 1960년 유엔 총회의 식민지독립부여 선언, 1966년 자결권에 관한 국제인권협약, 1970년 유엔총회의 우호관계선언은 민족자결권의 주체를 ‘peoples’(민족 또는 인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peoples’의 개념은 국제법상 확정된 개념은 아니다.


레닌과 윌슨은 자결의 주체를 민족(nations)으로 봤지만 유엔 헌장에서는 그것이 ‘peoples’로 규정되었고, 이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헌장작성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자결원칙의 주체인 인민의 개념은 헌장이 성립하는 과정에서는 확정되지 못하였지만 유엔헌장 속에 등장하는 States, nations, peoples라는 용어에 대한 유엔사무국의 검토가 있었으며 그에 의하면 nations은 States 뿐 아니라 식민지, 위임통치령, 보호령 그리고 국가에 준하는 정치체(quasi-States)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며, 국가인가 아닌가를 불문하고 모든 정치적 실체(all political entities)를 의미한다. 반면 peoples는 States나 nations를 구성할 수도, 구성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인간집단을 가리킨다.


“모든 인민은 자결권을 갖는다”고 선언한 식민지 독립부여선언(1960년) 속에 자결권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종속인민(dependent peoples), 신탁통치지역과 비자치지역의 인민과 그밖에 아직 독립을 달성하지 못한 모든 인민이다.


국제인권규약에서는 자결권의 주체가 모든 인민(all peoples)으로 확대되는데 이는 그때까지 유엔의 실천과정 속에서 자결권의 주체로 주로 인정되어 왔던 종속 인민에 한하지 않고, 모든 국민 또는 국민의 일부에게로까지 자결권이 확대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국제인권규약의 작성과정에서 “peoples”는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국가와 지역의 인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대규모의 밀집된 민족적 집단, 종족적∙종교적 또는 언어적 소수민”과 “충분히 구분된 일정지역에 거주하는 인종적 단위(racial units inhabiting in well defined territories)” 등에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취지의 시사가 있었다.


국제법률가위원회(the 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민족자결권의 주체인 ‘인민’ 개념의 결정 기준으로서 첫째 공통의 역사, 둘째 인종적 종족적 유대, 셋째 문화적 언어적 유대, 넷째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유대, 다섯째 공통된 지리적 위치, 여섯째 공통의 경제적 기반, 일곱째 충분한 숫자의 사람 등을 든다.


② 한(조선)인의 민족자결권 규정의 의미


1장 ‘한국(조선)인의 기본권리’는 우리 민족의 자결권에 관한 규정이다.


맨 앞장인 1장에서 한국(조선)인의 자결권을 규정한 것은 이 평화협정의 내용이 우리 민족의 자결권에 근거해서 그에 부합되게 구성돼야 함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1장에 한(조선)민족의 기본 권리를 규정한 것은 한반도 평화의 파괴와 미회복이 근본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자결권이 부정된 데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전쟁은 남북 분단에서 비롯됐고 분단은 전적으로 외세가 개입한 결과다. 즉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의 자결권이 부정되고 외세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지배하게 된데서 빚어진 비극이다.


이에 한(조선)민족의 기본권리로서 자결권을 맨 앞장에 위치시켰다. 같은 분단민족이었던 베트남의 경우도 그 평화협정을 보면 맨 앞장에 ‘베트남 인민의 기본적 제 민족권리’가 규정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민족의 자결권을 지칭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독립할 베트남 ‘민족’의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한국(조선)인은 한국(조선) 인민(people)을 뜻하는 용어로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며 남과 북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또 한국(조선)인은 개개인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집단으로서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또 한국(조선)인은 지리적 개념으로 볼 때 한반도라고 하는 일정한 영역에서 생활하는 집단에 적용되는 개념이며 한반도 이외의 영역에 사는 한민족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평화협정이 적용되는 대상과 지역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또 일정한 정착지를 갖지 않는 집시나 유목민족, 타민족의 정착지 내에 흩어져 사는 소수민족은 사회학적으로 민족이기는 하지만 민족자결권(외적 자결권)의 (국제법적)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1조 한국(조선)인의 자주와 주권, 영토 보전, 통일의 권리


① 자주권 규정의 의미


자주의 권리는 외세의 지배∙간섭을 거부하고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자주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한민족이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남과 북 전체의 의사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결정한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통일 문제를 비롯해 주한미군 철수, 군사동맹 폐기, 남북 상호 군축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포함된다.


다른 당사국들(미국과 중국)이 한국인의 자주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들 국가가 자신의 요구를 남, 북 어디에 대해서도 강요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자주의 권리가 민족의 기본 권리로 규정된 것은 그 동안 이 권리가 미국 등 외세에 의해 침해되어 왔고 지금도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을 군사적으로 종속시키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정치, 외교, 경제, 남북관계 분야까지 지배, 간섭하고 있다. 이런 대미 종속 하에서 한반도 평화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한(조선)민족의 의사는 굴절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의 이익에 맞게 남과 북이 단결해서 이들 문제를 풀어갈 수 없고 미국의 요구와 이해가 우선시되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조선)인의 자주권 규정은 이런 남쪽의 대미 종속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또 앞으로도 배격하겠다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자 동시에 이런 의지에 대한 다른 당사국들의 존중을 의무화한 것이다.


② 주권 규정의 의미


주권(sovereignty)이란 대내적으로는 최고∙절대의 의사 내지 권력(통치권)을 의미하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권력으로부터의 완전∙배타적인 독립성(독립권)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주권은 “국가가 대내적 및 대외적으로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인 독립권과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민족이 주권(sovereignty)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를 형성하고 있건 없건 자기결정에 대한 권리 및 자주적 발전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민족이 주권을 갖지 못한다면 자주를 지킬 수 없고 독립을 이룰 수 없으며 인민의 통일성을 기할 수 없다.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는 국제사회에서 주권은 보통 국가를 통해서 행사된다. 그래서 오늘날 주권은 국가의 속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통일된 민족과 같은 수준에서 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각종의 국가적․민족적 굴욕과 이익 침해를 당하고 있다. 물론 분단된 상태에서 남과 북은 독립된 별개의 국가로서 행세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하나의 국가여야 할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그것도 우리 민족의 의사에 반해 분단된 상태에서 그 주권행사가 온전할 리 없다. 이는 외교와 군사, 경제에서 자신의 주권을 떳떳이 행사하지 못하는 남쪽의 부끄러운 주권행사 실태에 의해서 입증된다.


이 점에서 주권이 한국인의 권리로 명시된 것은 민족통일국가를 통해서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권리를 밝힌 것이다.


주권은 반드시 국가를 매개로 해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이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기 전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당연히 지향하고 가져야 할 주권을 당당히 주장하고 비록 그 수준이 제약된다 하더라도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자기의 주권적 침해를 최소화하게 될 것이고 통일민족국가가 수립되더라도 그에 걸맞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이 각각 독립된 국가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갖는 주권행사의 권리를 미리 포기해 버린다면 당면한 민족 문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주권행사 요구도, 민족통일국가 수립 요구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국가만이 주권을 갖고 민족은 주권을 갖지 못한다고 본다면 이는 잘못으로 국가와 민족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며 민족을 혈통, 언어, 문화, 영토의 공통성에 기초한 사회역사적 공동체로 보지 못하는 사고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이 국가로서 승인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엄연히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북미 관계에서 보더라도 서로 국가로 승인한 바가 없지만 대화와 협상을 하고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주권을 존중한다는 합의를 하고 있다. 또 남은 북을 국가로 승인한 바 없고 북 또한 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각종 분야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를 해오고 있다. 이것은 남과 북이 서로를 국가로 승인한 것은 아니나 그 주권 행사를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과 북은 분단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별도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 경우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는데서 대외적인 주권행사의 수준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은 분단의 결과 누리지 못하는 하나의 민족통일국가로서의 주권적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민족으로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비롯한 민족문제에 대한 전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고유한 우리 민족의 권한에 속한다.


그리고 남과 북은 각기 상대에 대해서 보면 그 주권 행사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로서 이뤄진다. 이런 특수한 관계 또한 그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는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의 주한미군 주둔으로 인해, 또 남쪽 정부에 대한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갖는 자결권 즉 남북 화해와 단합, 통일의 권리가 제약, 침해받고 있다. 이 점에서 북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남의 내정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민족자결의 권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③ 영토보전권 규정의 의미


영토보전(territorial integrity)이 민족의 기본 권리에 포함된 것은, 영토가 민족을 이루는 4대 징표(혈연, 언어, 문화, 영토)의 하나인데서 알 수 있듯이 민족이 지리적으로 일정한 영토에 의거해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역사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분단 때문에 하나의 영토에서 공동생활을 하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영토보전의 권리는 중요하다. 1조에 영토보전이 포함된 것은 남과 북이 각각의 영역에 대해서 외세에 의해서 침해받지 않을 권리와 함께 영토적 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의 권리와 외세간섭 배제를 선언한 것이다.


“모든 인민은 자결권을 갖는다”고 선언한 1960년 12월 14일 유엔 총회결의 1514(ⅩⅤ)의 ‘식민지독립부여선언’도 종속인민(dependent peoples)의 민족적 영토(national territory)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고(4항), 영역의 민족적 통일과 영토보전을 침해하려는 목적의 모든 시도를 유엔헌장의 목적과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불법화하였으며(6항) 모든 국가에게 모든 인민의 영토보전을 존중할 의무를 지웠다.(7항) 이 규정에 따라 영토보전 원칙의 수혜자는 국가에서 종속인민에게로까지 확대되었고 일반 국제법상 국가의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러한 요건을 갖춘 국가를 창설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영토를 생활의 근거로 하는 인민집단도 장래 그들이 건설할 국가의 영토가 될 지역을 보전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근거를 갖게 되었다. 즉 영토보전의 원칙은 아직까지는 자결권의 행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지위에 관하여 자유로운 결정을 내린 바가 없거나 그러한 결정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던 인민들이 장래에 그런 결정을 내려 국가를 창설하거나 다른 국가와 연합하거나 통합하려 할 때의 공간적 기초를 확보해 주는 의미를 가진다.


베트남 평화협정(1973년의 파리협정)도 영토보전을 베트남 민족(인민)의 기본권리(자결권)의 하나로 명시하였다.


④ 통일 권리 규정의 의미


통일이 민족의 기본권리에 포함된 것은 우리 민족이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또 그것은 통일이 한반도 평화의 궁극적인 담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에서도 평화협정의 궁극적 목적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달성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분열된 민족이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은 오래 전부터 민족자결권으로 정립돼 왔고 국제법적 권리로 인정받아 왔다.


유엔총회의 1970년 10월 24일 결의 2625(ⅩⅩⅤ)(국가 간 우호관계원칙 선언)는 민족자결권(self-determination)의 이행방식의 형태로 “하나의 민족(people)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른 하나의 주권독립국가의 수립, 어떤 독립국가와의 자유로운 결합 또는 통합, 다른 정치적 지위로의 변경”을 제시하고 있다. 남북통일은 두 번째 자유로운 결합 또는 통합 형태에 속한다.


다. 2장 전쟁상태 종료의 국제법적 형식과 전쟁 종료 선언


(1) 2장의 취지


정전협정은 순전히 군사적 성격의 협정으로 적대적 군사행동(전투행위)의 정지를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적대적 군사행동의 정지로써는 전쟁상태가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전쟁 결과와 관련된 전후처리 문제들과 교전국들 사이의 평화적 관계의 회복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전쟁상태를 종결하는 공인된 국제법적 형식은 평화협정 체결과 종전 선언(성명)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의 경우 그것이 전쟁상태를 종결하는 국제법 형식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평화협정이나 평화조약에 비해 내용적 포괄범위가 상당히 제한되는 것이 보통이다.


2장에는 한국전쟁을 법적, 군사적으로 종결하는데 필요한 조치들 가령 한국전쟁 종료선언, 정전협정의 폐기, 한국전쟁 참전 외국군 철수 문제, 연합군의 전쟁수행기구 역할을 한 국제연합군사령부(이하 유엔사라 한다.)의 해체 및 그 법적 근거의 실효 문제, 책임과 배상 문제 등이 규정돼 있다.


평화협정이 단순히 전쟁의 종결만을 선언하고 정작 그 전쟁수행에 직접 참여하여 한민족 내부 문제를 국제전으로 비화시킨 외국군대의 주둔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또 국제전쟁수행기구로서 역할을 한 유엔사를 해체하지 못하고 이를 유지, 강화하려는 불법부당한 기도를 그대로 둔다면 말로만 전쟁종결이지 실질적으로는 전쟁종결이라고 할 수 없으며 언제든지 다시금 전쟁재발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


따라서 이런 평화협정이란 한낱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고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한다는 평화협정 취지는 실종되고 만다. 이에 이 시안은 외국군 철수와 유엔군사령부 해체 등을 명확히 함으로써 한국전쟁의 종결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갖도록 했다.


(2) 유엔사 해체와 미국의 책임 규정(3조)


① 미국의 유엔사 해체 책임을 명시


유엔사는 그 직접적 목적(그리고 전제)이 한국전쟁의 수행을 위해 창설된 기구이다. 또 유엔사는 정전 이후 명목상으로 군사정전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정전협정 체결로 오래 전에 유엔사는 창설의 목적이 사라졌고 평화협정 체결로 군사정전 임무도 필요 없게 되므로 해체되는 것이 마땅하다.


유엔사는 꼭 평화협정 체결로 해체사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다음 사실들로부터 오래전에 벌써 해체되었어야 할 기구임을 알 수 있다. 1950년 7월 7일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밝힌 유엔사 설치의 전제였던 한국전쟁이 정전되었고, 정전 뒤 미군 이외의 거의 모든 연합군 전투부대가 한국에서 철수함으로써 위 유엔안보리 결의의 취지인 통합사령부가 사실상 주한미군사령부나 다를 바 없게 되었으며, 미국 자신조차도 1975년 6월 27일 “1976년 1월 1일을 기해 유엔군사령부를 자진 해체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하였고, 1975년 8월 16일에는 유엔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주한유엔군사령부, 판문점군사정전위원회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사시설에서 유엔기를 내림으로써 “유엔 깃발 아래 한국에 진주했던 미군은 명실 공히 완전한 주한미군으로 남게”되었다.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에서 미국 주도의 서방측 안과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규정한 공산 측 안이 함께 통과된 사실로 보더라도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그 해체 사유가 이미 발생하였다.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의 창설로 유엔사는 명목상의 한국 방위 임무를 한미연합사로 넘기고 정전관리 임무만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군사정전위가 무력화되고 그 대신 북미 장성급 회담이 열린다거나 비무장지대 및 판문점 경비를 한국군이 전담하는 등 유엔사는 정전임무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유령기구나 다를 바 없이 되었다.


2조에서 유엔사의 해체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명시한 것은 유엔사가 유엔 헌장에 의거해 설치되어 유엔 사무총장의 지휘를 받는 유엔의 기관이 아니라 한낱 미국의 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엔사 설치의 법적 근거로 인용되는 1950년 7월 7일의 유엔 안보리 결의 내용은 “병력과 기타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이러한 병력 및 지원을 미국이 통제하는 통합사령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권고한다.”고 되어 있다. 위 유엔의 권고는 유엔의 지휘를 받지 않고 통합사령부를 통해서 유엔 회원국들의 군대를 직접 지휘통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에 충실한 것으로 유엔사령부가 사실은 미국의 통제 하에 있는 통합사령부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권한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사실은 1994년 5월 28일 북한이 정전협정 대체와 유엔군사령부 해체에 관한 조처를 시작해 달라는 요청을 하자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안보리는 안보리의 통제를 받는 보조기구로서 통합사령부를 설립하지 못하고 미국 주도의 사령부 설립을 권고”했다면서 “통합사령부 해체는 유엔의 어떠한 기구의 책임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다”라고 답변한 데서도 드러난다.


② 유엔사의 법적 근거가 실효되었음을 확인


3조 2항은 유엔사의 설치∙활동 근거와 관련된 유엔 결의가 이미 실효되었음을 당사국들이 확인하는 규정이다.


유엔사와 관련된 유엔의 이전 결의가 실효되었음을 확인하는 까닭은 미국이 유명무실화된 유엔사를 어떻게든 되살려 북과의 전면전쟁을 비롯한 한반도 유사 시 북에 대한 군사작전을 합법화하고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뒤에도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장악을 계속하려는 기도를 노골적으로 펴고 있기 때문이다.


실효 확인이 필요한 유엔 결의는 다음과 같다. 유엔회원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지원하도록 권고한 유엔 안보리의 1950년 6월 27일 결의 83(S/1511), “병력과 기타 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이러한 병력과 지원을 미국 통제하의 통합사령부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권고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통합사령부의 사령관을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통합군사령부가 재량에 따라 유엔기를 쓸 수 있도록 승인”함으로써, 유엔사(통합사령부) 창설의 직접적인 법적 근거가 된 1950년 7월 7일 결의 84(S/1588), 또 “한국 전체(한반도)의 안정 상태를 확보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고”, “통일, 독립, 민주 국가의 수립을 위해 유엔 감독 하(under the auspices of the UN)에, 선거를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권고한” 1950년 10월 7일 유엔총회 결의 376(Ⅴ) 등이다.


그러나 이들 결의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60항(외국군대의 철수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의 권고)의 이행을 결의한 1953년 8월 28일의 유엔 총회 결의 117(Ⅶ)에 의해 그 효력이 정지되고 또 대체되었다.


이에 이 평화협정 안은 유엔사 창설과 관련된 유엔 결의가 벌써 실효되었음을 당사국들이 확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유엔 결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유엔사를 평화협정과 무관하게 계속 존속 또는 부활시키려고 하는 미국의 의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당사국이 유엔결의의 실효를 ‘확인하는’ 것으로 한 것은 굳이 유엔에서 실효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그 법적인 실효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또 유엔에서 실효절차를 밟을 경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과 시간낭비를 불러일으키고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나라들이 평화협정에 개입할 여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외국군대 철수와 외국군 기지 철거 규정(4조, 5조, 6조)


① 모든 외국군대 철수의 규정(4조)


4조는 외국군 철군과 외국군 기지 철거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이 들어간 것은 한국전쟁이 비록 남과 북으로 갈려 치러졌지만 외국군대가 참전하였고 그 외국군이 지금까지도 철군하지 않고 계속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군부대가 철수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이 종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증거다.


정전협정 4조 60항이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를 위한 정치회의 개최를 권고하였던 것은 외국군대의 철수가 한국전쟁의 종식과 평화회복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다른 평화협정 사례를 보더라도 분쟁국(또는 국내분쟁)의 어느 한 쪽을 지원하여 외국군대가 교전당사자로 참전한 경우, 예외 없이 외국군 부대의 철수를 규정하고 있다.


이 평화협정 안 4조에서 말하는 외국군대란 다름 아니라 주한미군을, 외국군 기지란 미군 기지를 가리킨다. 다른 연합군 전투부대는 오래 전에 다 철수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는 6조에서 확인하고 있다. 6조는 북쪽에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지는 않지만 협정의 형식적 균형과 한국(조선)전쟁 중의 중국군 개입의 역사성을 반영하기 위해 설정한 조항이다.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은 정전 뒤 3차례로 나누어 철수하였는데 1958년 10월에 완전히 철수하였다. 이후 북은 어떠한 외국군의 주둔도 허용하지 않고 있고, 한두 번을 빼고는 일체 외국군과의 합동 군사훈련이나 전쟁연습을 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까닭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군대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부대가 바로 주한미군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연합군의 중추세력으로 한국전쟁을 지휘하였다. 한국전쟁 시 주력부대의 역할을 한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비로소 한국전쟁은 법적, 실질적 종결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종전 시 주한미군을 철군한다는 입장을 세우고도 미 군부(합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미국의 정책을 뒤늦게나마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전쟁 중 한국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강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는데 그것은 종전 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주한미군이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철수해야 하는 까닭은 또한 주한미군이 대북 적대정책의 실현도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평화회복의 관건은 북미 사이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군사적 수단을 포기함으로써 북을 공격하거나 붕괴시킬 의사가 없음을 보증해야 한다. 대북 적대정책 실현의 도구인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서 북미 사이에 관계정상화를 이룬다면 이는 기만적인 관계정상화로 평화협정의 최소한의 요건도 충족시킬 수 없으며 북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주한미군이 대북 적대정책의 실현도구라는 것은 대북 (선제)공격전략(교리)과 그에 입각한 작전계획(가령 작전계획 5026, 5027, 5028 등) 및 무기체계를 갖고 있고, 이런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에 따른 대북 공격연습(키리졸브∙독수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등)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는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주한미군이 대북 적대정책의 실현도구로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전쟁재발 위기를 야기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은 한반도에서 휴전 이후 거의 모든 전쟁 위기가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된 사실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까닭은 또한 한반도 평화회복을 위해 요구되는 또 하나의 요건인 남북 간 불가침약속(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다.


주한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고 설사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되더라도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이상 한국군이 대미 군사적 종속(군사교리, 작전계획, 정보, 무기체계, 군수 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즉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게 되면 한국군의 대미 군사적 종속이 불가피하고 그 경우 한국군은 자신의 자주적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미국의 요구에 따라야 되므로 평화협정 상의 군사적 이행의무(4장 15조의 무력 사용 또는 위협 금지, 18조의 군사동맹 해체 규정, 24조 외국군과의 군사훈련 금지, 25조의 군사적 신뢰구축, 26조 군축, 27조 한반도 비핵화 등의 규정)를 준수할 수 없거나 준수하더라도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주한미군의 주둔에 따른 대미 군사적 종속은 우리 군이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우리 민족이익과 국가이익에 따라 전수방어적인 안보전략과 군사전략을 세우고 북과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추진하고 동북아시아 나라들과 협력안보를 추진해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또 주한미군이 평화협정 이후에도 계속 주둔한다면 남은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대미 종속을 허용하게 되어 북과의 각종 민족적 합의를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되므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은 근본적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며 그 경우 평화협정은 속빈 강정이 될 공산이 크다.


주한미군이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철수해야 하는 까닭은 또한 주한미군 철수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합의를 통해서 그 주된 임무가 한국 방위에서 지역기동군 역할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주한미군이 대북 적대정책의 실현수단만이 아니라 더욱 본질적으로는 동북아시아 나아가 아시아태평양 패권실현 수단(핵심은 대중국 패권정책의 실현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주한미군의 지역역할을 감안하면 평화협정 이후에도 한반도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전략의 전진기지로 전락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되며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패권전쟁에 휘말리게 돼 한반도 평화협정을 통한 동북아시아 평화조성의 의미는 상실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평화를 회복한다고 하면서 전쟁수행 무력으로 와서 지금까지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북 전쟁시나리오에 따라 거의 매일처럼 전쟁연습을 벌이는 등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실현도구인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면 전쟁재발 방지와 영구적 평화보장이라고 하는 이 평화협정의 취지나 북미관계 정상화 등의 본문규정은 구두선에 그칠 것이며 평화협정은 말뿐인 협정, 사실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합법화하는 기만적인 평화협정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유엔사령부의 설치와 주한미군의 주둔은 별도의 창설 근거를 갖는 별개의 법적 군사기구”라며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 해체는 불가피하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역할은 ‘중립적’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하여 평화관리 및 지역안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법적 근거나 임무의 차이를 내세운 이런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에 대한 영구 패권 추구에 장해물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에 충실한 주장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외부(북)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표방하기 때문에 그에 의거하여 주둔하는 주한미군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정전협정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한․미와 조․중 사이의 적대적 대결과 냉전의 산물임을 애써 무시하는 주장이다.


한미군사동맹(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을 잠재적 적으로 설정하여 맺어진 동맹(조약)인데 미국(주한미군)이 중립적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중립을 지키려면 전쟁 시 어느 쪽에도 가담해서는 안 되는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과의 전쟁(또는 무력충돌)−그것이 방어전쟁이든 침략전쟁이든 상관없다−시 남쪽을 지원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이런 전제와 목적 하에서 평시에도 대비를 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이 중립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사실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논리다.


미국이 맺은 군사동맹은 그것이 쌍무조약이든 다자조약이든 다 방어를 표방하지만 패권주의국가로서의 미국의 속성 상 미국의 패권에 방해가 되는 나라를 대상으로 한 적대적, 침략적 성격을 띤다. 1949년 서명된 북대서양조약(나토 결성), 1951년 (구)미일안보조약 및 1960년 신미일안보조약, 1951년 미비(필리핀)상호방위조약, 미대만방위조약, 앤저스(태평양 안전보장)조약 등은 하나같이 대소 및 대중 포위를 위한 동맹조약으로 미국의 패권주의전략의 산물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또한 그간 주한미군이 채택하고 실행해 온 대북 공격적인 군사전략과 군사교리, 작전계획, 군사연습, 무기체계 등에 비춰서도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리고 한미동맹과 한미상호방위조약 그리고 주한미군 자체가 대북 적대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 또는 지역안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성립될 수 없다.


② 3년 안 단계적 철수 규정


주한미군은 철수하되 다만 3년 안에 단계적인 방식의 철수도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시한을 설정하고 단계적인 방식도 가능하도록 한 것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남북 간 상호군축이나 북한 핵무기 폐기 등과 연동되도록 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주한미군 철수가 일방적인 조치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보장 체제의 다른 구성 부분(북 핵무기 폐기와 남북 간 상호군축)과 동시적으로 이뤄지게 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 회복과 정착이 남과 북, 미국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조치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 속에서 각자 의무사항을 상호 조율된 조치로서 이행해야 안정적으로 담보될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과연 주한미군 철수와 미군기지 철거가 물리적으로 3년 안에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이전 주한미군 철수 사례나 해외 미군 철수 사례에 비추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밝힌다.


일제 항복에 뒤이어 들어온 주한미군은 1948년 9월 15일에서 1949년 6월 29일 사이의 9개월 만에 3만 명 가운데 500명만 남기고 철수하였다.


또 한국전쟁이 끝난 뒤 주한미군 규모는 1953년 32만 5천명에서 1955년 8만 5천명으로 줄었는데 이는 미군 24만 명이 철수하는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또 1971년 7사단 철수 시에도 2만 명의 미군이 불과 5개월(1970.10.15∼1971.3) 만에 철수한 전례가 있다.


필리핀의 경우 클라크 미 공군기지는 1991년 6월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몇 개월 만에 철거됐으며, 수빅만 미 해군기지는 필리핀 정부가 1991년 12월 31일 미국에 주필리핀 미군기지 협정의 종료를 통고한 때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1992년 11월 24일 완전히 철거됐다.


5조의 미군 병력 1:1 교체 허용 규정은 주한미군이 철군하기까지의 과도적 기간에 혹 이런 저런 명목(가령 주한미군 보호나 한반도 우발사태 대응 등)으로 추구할 수도 있는 군비증강의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다. 또 이 5조에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주한미군이 보유한 장비를 한국군에 무상이든 유상이든 넘기는 것도 금지된다. 이는 26조의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 금지 규정에 해당된다.


(4) 전쟁 책임과 배상(7조)


보통 평화협정 또는 평화조약은 전쟁상태의 종결의 일환으로 전쟁배상(전쟁으로 인한 손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전패국이 전승국에 갚아주는 행위)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적대 쌍방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서 승리한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서 전쟁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에 7조는 전쟁의 적대 쌍방 당사자들 사이의 전쟁책임문제, 가령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학살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 인적 물적 피해에 관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재판, 처벌, 배상, 보상 등의 법률적,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해 분쟁의 여지가 없도록 하였다.


위 규정은 어디까지나 적대 쌍방 사이에 적용되는 규정이며 노근리 학살과 같은 한․미 사이의 문제 또는 조․중 사이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대쌍방이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해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되 사안에 따라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가령 전쟁 중이나 정전 기간에 발생한 실종유해 송환, 국군포로나 인민군포로, 납북자와 납남자, 북파공작원과 남파공작원 따위의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당사자 사이나 개인과 당사자 사이에 이해와 협상을 통해 해결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 3장 북미 사이의 관계정상화와 불가침


(1) 3장의 취지


이 장은 교전 당사자였던 북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데서 요구되는 기본 사항들을 규정한 것으로 평화협정에서도 핵심적 부분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국교가 수립됨으로써 평화적 관계로 전환한 지 오래이다.


이 협정의 당사국이 남, 북, 미, 중으로 되는 까닭을 설명한 부분에서 이미 살폈듯이 북미 간 평화관계 회복 없이는 한반도 평화 회복은 난망하다. 그것은 미국이 북을 공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군사력을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고 또 남쪽의 군사주권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간 관계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설사 남북이 평화상태로의 전환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한반도 평화회복은 근본적인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 간 불가침선언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적대관계가 지속됨으로써 이 합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북미 간 관계정상화가 한반도 평화회복에서 갖는 본질적인 중요성을 말해준다. 이점에서 4장 남북 간 불가침에 앞서 3장에 북미 관계정상화 부분이 규정되었다.


물론 북미 사이에도 적대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데 요구되는 기본 사항들의 일부를 천명한 공동성명이나 합의, 예로 상호 불가침과 자주권 존중, 조선의 평화통일 지지를 천명한 1993년 6월 11일 조미공동성명, 1994년 조미기본합의문, 2000년 조미공동코뮈니케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공동성명이나 합의는 내용이나 형식(서명 주체 등) 양면에서 전쟁상태를 종결하는 평화협정과는 거리가 있었고 또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했다.


(2) 평화적 관계로의 전환(8조, 9조, 10조, 13조)


국교수립(8조)이나 불가침(9조), 상호 주권존중과 내정 불간섭(10조), 분쟁의 평화적 해결(13조) 등은 교전국들이 전쟁상태를 종결하고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데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들로 북미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교수립과 관련해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 북 핵문제의 일정한 해결 단계−핵 프로그램과 시설의 폐기−에서 국교가 수립될 가능성도 있으나 이 안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또는 체결과 거의 동시에 국교가 수립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것은 교전 당사자 사이의 준 전시상태와 첨예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서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 국가관계를 정상화해 나가는 국제관례이며, 이에 정치군사적 문서로서의 평화협정 자체에서 관계 정상화가 다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는 북미관계 정상화를 냉전사고가 지배하는 미 정부와 의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는 판단도 작용하였다. 만약 평화협정 체결 전에 북미관계 정상화(정치적 문제의 해결)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평화협정 체결(군사적 문제의 해결)과제는 의연히 당면 과제로 되며, 주한미군과 북 핵무기는 북미 양자에게 제거해야 할 집중 표적물이자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지렛대로서 역할하게 될 것이다.


국교 수립을 위해 필요한 상호조치의 구체적 내용에 관한 북미 간 부속합의서는 6자회담의 한반도 비핵화 과정 및 북미관계정상화 과정의 내용과 상호 연동된다.


9조 무력 사용 또는 위협의 금지는 조미 사이에 전쟁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평시에도 무력을 행사하거나 무력으로 위협하여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무력 사용 또는 위협 금지 규정은 국제연합 헌장 제 2조 4항의 무력사용 또는 위협 금지 원칙에도 부합한다. ‘무력사용’ 또는 ‘무력위협’의 금지에는 상대방에 대한 무력침략(침공)은 물론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한 무력시위나 전쟁연습, 또 국제법적으로 불법인 무력복구(상대국의 국가소유 또는 그 국민소유의 재산압류, 선박․항공기의 나포 또는 억류, 영토의 점령, 평시봉쇄)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자위 목적(상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의 무력사용까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5027-04 등 그 목적이 ‘북한군 격멸, 북한정권 제거, 한반도 통일여건 조성’으로 되어 있는 대북 선제공격적 작전계획 및 이런 작전계획의 수행절차를 숙달하기 위한 키리졸브연습∙독수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등은 ‘무력 위협’에 해당되므로 금지된다.


사실 한미연합훈련은 북에 대한 전쟁위협이라는 점에서 또 각종의 대북 공격무기와 병력을 한반도 밖에서 들여온다는 점에서 적대행위의 완전 정지를 규정한 정전협정 2조 12항과 조선(한국) 경외로부터의 군사인원과 작전무기의 증원 금지를 규정한 2조 13항 ㄷ 및 ㄹ 목의 위반이다. 따라서 한미연합 군사연습의 중지는 북미 사이의 평화적 관계 회복의 전제이자 기왕의 불법행위를 중단하는 의미를 갖는다.


무력 사용 및 위협 금지는 평화협정 체결 뒤 북미가 불가침조약(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국제법적 보장을 받게 되어 보다 완결적인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미 불가침조약(협정)은 평화협정의 이행을 촉진시키는 순기능을 하게 된다. 북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 북미신뢰를 높임으로써 이 협정 안의 핵심 부분인 ‘주한미군 철수와 북 핵무기 폐기의 동시 이행’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


10조는 주권 존중과 상호 내정 불간섭 원칙을 밝히고 있다. 미국이 핵, 인권, 위조지폐, 마약, 기아 등을 문제 삼아 북에 대해 각종의 국내법적, 국제법적 제제를 가하고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거나, 나아가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매도하면서 정권 및 체제 교체를 시도하는 것은 상호 주권존중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에 위배된다.


13조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함께 다른 평화협정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평등하고 공정한 해결’이 추가로 강조된 것은 그동안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한다고 하면서도 초강대국의 지위를 이용해 북한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양보나 굴욕을 강요해 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3)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규정(11조)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 관계의 평화적 관계로의 전환에 필수적 요소의 하나로 규정된 것은 북미가 서로에 대해서 각기 핵 공격 위협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 문제, 즉 북 핵 프로그램과 시설 및 핵무기 폐기와 함께 주한미군의 핵무기 배치를 포함한 남의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에서 협상되고 있기 때문에 이 협정(안)에서는 그 결과(9·19 공동성명, 2·13 합의, 10·3 합의 등)를 존중한다는 정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하에서 북미 간 직접 대화가 활발해질 경우 북미 간 직접 대화가 6자회담에 선행하고, 의제와 내용도 규정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4) 주한미군 철수와 북 핵무기 폐기의 동시 이행(12조)


대북 전쟁을 목적으로 주둔하는 주한미군과 그에 대한 대응 전력으로서의 북의 핵무기 개발∙보유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결되지 못하고 쌍방이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데서 비롯되는, 상호 연계된 문제다. 주한미군 주둔과 대북 핵 위협의 역사는 반세기나 되는 반면 북의 핵무기 개발∙보유는 최근 일인 데서 보듯이 북 핵무기 보유의 근본 원인이 미국의 대북 핵 공격 위협에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한 연구 그룹이 “북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의 대북 군사적 행동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는 단순히 인원과 장비의 철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특히 대북 군사정책의 철회와 대북 군사정책의 이행체계로서의 한미동맹의 폐기를 상징한다. 이를 통해서 북의 핵무기 보유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북이 두려움 없이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주한미군 철수를 북 핵무기 폐기와 연동시키는 것은 남·북·미 관계의 전면적인 전환, 새판짜기를 함축한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와 북 핵무기 폐기를 연동시키는 것은 북미가 각자 자신의 의무를 응분의 대가 속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대북 적대정책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주한미군과 그 핵심 대응 수단으로서의 북 핵무기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선행하여 폐기되기 어려운, 곧 동시에 제거되어야 하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마. 4장 남북 불가침과 통일


(1) 4장의 취지


북미 사이에 전쟁상태의 종결과 평화상태로의 전환이 필요하듯이 또 다른 교전 당사자로서 남북 사이에도 전쟁상태의 종결과 평화상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북 간 평화적 관계로의 전환이 일반적으로 국가 간에 맺는 평화협정과 구분되는 것은 남북은 평화협정 체결 후 반드시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서 통일이 갖는 중요성 때문에 4장에 통일 관련 조항을 넣게 되었다.


남과 북 사이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1992년에 발효되었다. 이 기본합의서 및 부속 합의서에는 남북이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사항들, 예컨대 상대 체제 인정과 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상호 불가침, 간접적 침략의 금지, 불가침 경계선 규정, 군사적 신뢰조성과 단계적 군축 등이 규정되어 있다.


이 조항의 많은 부분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합의서로 가름하지 않은 것은 남북기본합의서가 평화협정과 위상이 다른 데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남북 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했어야 할 몇 가지 주요 사안들을 해결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북기본합의서는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 협정을 준수한다”(남북기본합의서 제5조)고 규정함으로써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양립되는 것으로 하였다. 또 남북이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데서 결정적 위치를 차지하는 경계선 문제에서도 해상경계선과 구역을 해결하지 못했다. 또 군사적 신뢰조성과 단계적 군축에 대해서도 그 기본 원칙만 합의했을 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으며, 군사동맹 폐기와 외국군 철수 문제 등은 아예 다루지도 못했다.


(2) 상호 체제의 인정과 존중(14조)


14조 1항은 남북이 서로를 평화공존의 대상으로, 민족 내부 문제를 풀어갈 동등한 주체로서, 또한 상호 협력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상대방의 체제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라고 할 때의 ‘체제’란 이념․제도․정권․인적 구성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념으로서 남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제도와 정치적 실체(정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다만 이 규정이 국제법상 국가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파괴․전복 행위의 금지’는 체제의 인정․존중의 기본 전제이며, 남북 간 오랜 불신과 반목을 고려해 화해와 협력, 신뢰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파괴․전복 행위’란 상대방 체제를 교란․와해할 목적으로 사전에 계획된 폭력․비폭력의 제 수단을 동원한 물리적 위협 행위를 뜻한다. 여기에는 간첩 파송, 무장 게릴라 침투, 요인 암살, 테러, 선박․항공기의 납치, 주요시설 폭파 등의 폭력적 수단과 방송, 전단 살포 등의 비폭력적 수단이 포함된다.


2항의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한 법률이나 규정은 개정 또는 폐지”한다는 것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하기 위한 제도적 요건의 하나다. 남북은 적대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한 많은 법을 두고 있어 이것들이 폐지 또는 개정되지 않으면 상호 체제의 인정․존중은 선언적 규정에 머물기 때문이다.


남쪽 헌법은 영토조항(제 3조)을 두어 북쪽 지역을 포함하는 한반도 전역을 효력이 미치는 장소적 적용 범위로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상호 체제 인정과 존중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북을 반국가단체로 표현한 법령에는 몰수금품 등 처리에 관한 임시특례법(제 2조), 향토예비군설치법(제 2조), 전투경찰대설치법 시행령(제 32조의 2), 국가보안유공자 상금 지급 등에 관한 규정(제 8조), 교정시설경비교도대설치법 시행령(제 25조).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제 10조), 군인사법 시행규칙(제 70조) 등이 있다. 또 북한 괴뢰 또는 수복․미수복지구 따위의 표현이 담긴 법령 등도 있는데 이 또한 폐지 또는 개정돼야 한다.


이 밖에도 국적법이나 형사관련법제, 국가정보원법 등도 이 평화협정의 취지에 맞게 개정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


또 북을 주적으로 한 충무훈련 등 관련 규정도 폐기되어야 한다.


북쪽도 마찬가지로 남쪽을 적이나 괴뢰 또는 혁명 대상으로 규정한 법이나 규정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3) 무력 사용 또는 위협의 금지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15조, 16조)


① 무력사용 금지 원칙(15조)


국제법 원칙인 불가침(무력사용 금지)은 분쟁문제를 포함하여 국가 간의 모든 문제들을 그 나라의 독립과 자주권을 침해하면서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렇지만 남북 불가침은 그 목적(평화공존만이 아닌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점)과 내용(국가 간 자주권 존중이 아닌 민족 내부의 상호 체제 인정, 국경선이 아닌 경계선 설정 등)에서 국가 간의 불가침 원칙 적용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남북 불가침 규정은 일반적으로 체약국들이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을 의무를 규정한 국제조약과 차이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대부분의 불가침조약은 일국이 제3국을 침략하기 위하여 자국의 주변 국가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상대 체약국의 중립을 보장받음으로써 제2의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든가 또는 침략 가능성이 있는 상대방과 조약을 체결하여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불가침조약은 보통 관계정상화조약 또는 우호조약 등에서 상호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남북 불가침 규정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불가침조약과는 달리 국가 간 평화공존이 아닌 민족 내부의 평화공존에,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데 목적이 있으며, 이에 국경선이 아닌 경계선을 승인한다. 또한 남북 불가침 규정은 상호 침략의 포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적대관계의 청산과 관계정상화 등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위한 각기 법제의 정비 나아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위한 노력(제 5장), 군사동맹의 폐기와 외국군 철수 등의 사안까지도 포괄하는 보다 전반적이고 진일보한 내용을 규정한다.


그런데 이 규정을 이행하는 데서 북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나 남은 특별한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에서는 남이 무력행사 또는 위협 금지 조항을 준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항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와 군 통수권의 자주적 행사가 필수적이다.


②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16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무력의 위협 또는 사용을 동반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즉 한반도 평화와 안전이 위태로워지지 않는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은 무력 불사용 의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대화와 협상은 적대와 반목보다는 타협과 화합을, 일방주의보다는 상호주의를 지향하는 개념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규정은 민족적 차원에서 남북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무력이나 폭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분쟁을 해소하는 것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제 3자의 개입에 의한 주선, 중개, 조정 등의 분쟁 해결 방법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규정은 무력사용 금지 조항과 함께 남북이 평화공존하기 위한 요건이다. 이 규정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을 배제함과 아울러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평시 협력관계의 구축이 요구된다.


또 남북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히 미국과 중국이 남북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존중하고 그에 저촉되는 행위, 예컨대 어느 일방을 편들거나 아니면 어느 일방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는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4) 남북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17조)


남북 사이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될 경계선과 구역이다. 국경선으로 표시하지 않고 경계선으로 표시한 것은 남북 관계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임을 고려한 표현이다.


지상 경계선과 공중 경계선은 정전협정에서 합의된 바 있어 문제가 안 되며 남과 북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 9조 및 제 11조에서도 확인하였다.


그러나 해상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정전협정에서 그 군사분계선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데다가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협의 과제로 남김으로써 군사적 긴장과 무력충돌의 원인이 되어 왔다. 이 점에서 해상 경계선의 합의는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 평화공존의 토대를 제공한다.


다만 해상 경계선의 구체적인 확정은 부속합의서에 규정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평화협정 본문과 별도의 합의가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북방한계선(NLL)은 유엔군사령관이 남쪽의 있을지도 모를 북진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으로 해상 경계선 개념이 아니다. NLL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제법적 근거를 갖는 것도 아니다. 또 북도 이를 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아 끊임없이 분쟁 대상이 되어 왔으며 남은 어떤 법적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힘으로 이를 강제해 왔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취지에 맞게 서해 해상 경계선은 국제법적 근거 위에서 남북이 함께 수용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유엔해양법과 같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국제법 근거에 따라야 하며 남북이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전제 하에 풀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서해 해상 경계선에 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서해 5도는 정전협정 제2조 13항 ㄴ목의 규정에 의해 남(유엔사령관)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곳이므로 북은 이 5개 섬의 남의 관할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 5개 섬을 직선기선으로 연결한 선을 남과 북의 서해 해상 경계선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으로 타당하지 않다. “직선기준선을 긋는 경우에는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여 만을 형성하거나, 인근 해안을 따라 일련의 섬이 산재해 있는 지역일 것, 해안의 일반적 방향으로부터 현저히 벗어나서는 안 되며, 기선 내의 수역은 내수제도에 편입시킬 만큼 충분히 본토에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서해 5도의 경우 남측 해안의 일반적 방향으로부터 현저히 벗어나 있고 내수제도에 편입시킬 만큼 남측 육지에 가깝게 연결되어 있지도 않아 직선기선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


둘째 대향국이나 인접국의 영해 설정 방식을 규정한 유엔해양법 15조(대향, 인접국 간의 영해의 경계획정)를 준용한다. 유엔해양법 15조는 “2개국의 해안이 상호 대향 또는 인접하고 있는 경우에는 양국 중 어느 국가도 양국 간의 별개의 합의가 없는 한 양국의 각 영해의 폭을 측정하는 기선상의 최근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의 연결인 중간선을 넘어서 영해를 확장하지 못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백령도 그리고 대청도 및 소청도와 북쪽의 영해기선 사이 또 연평도와 소연평도, 우도와 북쪽의 영해기선 사이는 그 거리가 12해리 이내에 든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유엔해양법 15조에서 규정한 중간선 개념을 적용한다.


그런데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는 북쪽 영해기선으로부터 12해리가 넘으므로 이 경우에는 12해리를 해상경계선으로 한다. 북쪽도 2006년 5월에 열린 4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서해 5도와 북쪽 육지가 만나는 부분의 바다는 절반씩 가르고,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는 영해 기준을 따라 북쪽 해안에서 12해리까지 북쪽 관할로 하자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셋째 북쪽의 영해기선에 대한 합의 문제를 비롯해 세부 사항들은 부속합의서에 따르는 것으로 하였다. 부속합의서는 물론 남북이 맺는다. 그것은 남북 해상 경계선의 확정이 남북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 설정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 및 중국이어서 평화협정에서 (해상)경계선을 설정할 때 역시 미국, 중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해상) 경계선 설정은 어디까지나 남북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 일로, 미국이나 중국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남북 사이의 합의가 존중되고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한편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39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NLL은 유엔사 차원에서 논의할 문제다”(중앙일보, 2007. 11. 8)라고 한 주장은 NLL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불법적인 선인만큼 유엔사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폐기 선언하겠다는 의미 이상의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고 유엔사가 이를 마치 경계선으로 고착시키려 하거나 자신이 해결 주체로 나서는 것은 적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영토보전에 관한 남북의 자주적 결정 권한을 부정하는 것이다. 남북의 해상 경계선은 NLL의 존립 유무와 별개의 사안으로서, 외세의 개입을 차단한 가운데 국제법적 근거 하에 국내외적으로 그 합리성이 인정되도록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5) 기존 군사동맹의 해체와 이후 군사동맹 참여 금지(18조)


① 한미동맹 및 조중동맹 해체 규정(18조 1항)


18조는 남과 북이 각기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맺은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을 이 협정의 발효일로부터 3년 이내에 해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은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 체결)에 의거하여, 북은 중국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조약(1961년 체결)에 의거하여 쌍무적인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군사동맹의 해체는 동맹의 법적 근거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조약을 폐기하고 외국군대를 철수하며 나아가 평시 또는 전시에 동맹을 가동하기 위해 설치된 각종 인적, 물적 군사지원체계(주둔군과 현지군대 사이의 각종 군사조약 포함)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사이에는 700개가 훨씬 넘는 각종의 군사조약들이 체결되어 주한미군 및 전시 증원 미군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의무화하고 있는 데 이런 군사조약들 및 이에 의거한 지원체계가 폐지되어야 한다.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은 그 역사적 기원이나 대상과 목적, 성격을 볼 때 한국전쟁의 종식과 교전국 간 적대관계 청산 및 관계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회복, 우리 민족의 자결권 존중과 한반도 통일 기여라고 하는 이 평화협정의 목적과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은 남에는 미군이 주둔하는 반면 북에는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냉전 시대 동서진영 간 적대적 대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한미동맹은 대소, 대중 봉쇄를 목적으로 맺어진 동맹이며 조중동맹은 한미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또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은 각기 북과 남을 잠재적 적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전쟁 시 동맹 참가국에 대해서 군사력 지원(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점에서도 똑같다.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전쟁이 법적으로 종결되고 남북이 평화적 관계로 전환되면 한국(영역)을 외부(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한다는 한미동맹의 목적이 사라지게 된다. 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미 관계도 적대적 관계에서 정상적 관계로 바뀌고 북미 간에 불가침조약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조중동맹 또한 그 존립의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한미동맹은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동맹(방어동맹)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에도 존속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있으나 이는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을 무기로 미국의 대한반도 패권을 영구화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미국과의 공고한 동맹의 힘으로 국내 권력을 영구독점하려는 친미사대주의세력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한미동맹의 법적 근거를 이루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에서는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미합중국의 양해사항)라고 하여 외부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표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한미동맹은 단순히 방어만을 표방하는 방어동맹이 아니라 공수동맹(offensive and defensive alliance)이며 그 역사적 기원이나 이후 전개과정을 보면 본질적으로 대북 공격동맹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 정권과 당시 미국 정부의 동상이몽 속에서 맺어진 한미동맹은 그 목적이 겉으로 표방한 것과 달리 이승만의 무력북진통일과 정권안보 그리고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에서 긴장고조와 전쟁위기의 근원으로 되어 왔다.


이승만 정권이 한미동맹을 체결한 것은 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무력 북진통일을 꾀하기 위해서였고, 냉전의 전초기지를 자임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자신의 정권안보를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승만의 의도는 1953년 8월 8일 경무대에서 있었던 변영태 장관과 덜레스 장관의 한미 공동방위조약 서명 소식을 관영언론인 ‘대한뉴스 공보처’가 제24보(영상뉴스)로 ‘한미공수동맹 서명식’이라는 제목 밑에 보도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한국군이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북 전력우위를 확보하였고 이런 우위는 한국전쟁 기간 시작되어 정전 뒤에도 한동안 계속된 한국군 10개 사단의 20개 사단으로의 증강으로 더욱 굳어졌다. “(한국)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한국군은 1년도 지나지 않아 병력에서 수적 균형을 회복한 뒤 인민군에 대해 우위를 확보해 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하기 이전인 1954년 6월 9일 미 8군사령관 테일러 대장은 “만일 한국군 지상군이 북한 지상군과 일 대 일로 맞붙는다면, 현재의 (한국군) 공군력의 열세를 고려하더라도 한국군이 우세하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대북 군사적 우위는 한국군 단독으로도 얼마든지 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고 굳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이 필요하지 않았음을 입증해 준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응한 것은 북의 남침 위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군사전략 상의 필요. 즉 구소련 및 중국 봉쇄를 위해서였다.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무력통일 전쟁에 말려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여 돌려주었던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다시 장악한 뒤에야 비로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발효시켰다. 물론 미국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이승만의 북진무력통일을 경계하였지만 그런 사실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한미동맹의 대북 공격성을 부인하는 것이 될 수 없다.


한미동맹이 방어동맹이 아닌 대북 공격동맹임은 그것이 정전협정을 위반해 불법적으로 체결된 데서도 드러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조선(한국경외)경외로부터의 군사인원 및 무기의 증원을 금지한 제2조 13항 ㄷ 및 ㄹ 목 그리고 외국군대의 철수를 규정한 제4조 60항 등의 정전협정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이런 정전협정 위반은 한미동맹이 단순히 대북 방어를 넘어서 대북 공격을 목적으로 체결된 것임을 알려준다.


한미동맹이 공격동맹임은 그 군사전략과 군사교리, 작전계획, 무기체계, 군사연습 등이 대북 (선제)공격과 점령을 기조로 하고 있는데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제 한미동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합의로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지역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활동범위로 하는 침략동맹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미동맹이 냉전 해체 이후에 그 역할을 노골적으로 대북 전쟁동맹에서 지역 군사동맹 나아가 세계 군사동맹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은 한반도를 미국의 지역, 세계 패권의 전초기지로 영구히 전락시키는 것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사 한미동맹이 방어동맹이라 하더라도 남쪽 단독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자력 방위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동맹이란 남이 단독으로 북의 공격을 억지할 수 없을 때 외세의 힘을 빌려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인데 남은 자신의 군사력만으로도 북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남한은 1976년부터 국방비 지출에서, 1980년부터는 총국방비 누계에서 북을 능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제는 북이 현저한 군사력 열세로 남의 공격을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북이 2005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2006년 핵실험을 하였지만 그로 인해 남 우위의 남북 군사력 균형이 변한 것은 아니며, 전쟁수행력에서나 현존 군사력에서 여전히 남이 북을 압도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핵 전문가들은 베트남 전쟁 때의 핵무기 사용에 관한 미국 국방부의 연구용역 보고서 등을 예로 들어 북의 핵무기 보유수나 위력을 고려할 때 한국군 병력이나 군 시설에 대한 파괴력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남이 미국 도움 없이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하더라도 북에 승리할 것이며, 북의 핵무기는 단지 남과 미국의 공격에 대한 억지(보복) 효과를 가질 뿐이라고 보고 있다.


또 한미동맹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까지도 미국의 개입을 허용하는 등 한국의 주권을 광범하게 침해하는 동맹이라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자결권을 존중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도록 되어 있는 평화협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편 주한미군이 철수는 하되 군사동맹은 계속 유지된다면 주한미군이 다시 들어올 근거로 되며, 그 경우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를 항구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미래의 전쟁을 잉태한, 불안정한 협정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의 해체(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을 실행하기 위한 각종 한미군사관련 조약 및 협정 폐기)는 한국전쟁을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고 교전국 간의 적대관계의 평화적 관계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며,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막고, 우리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받기 위해 확보되어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라 하겠다.


② 향후 군사동맹 참여 금지(18조 1항)


남과 북이 각기 향후 군사동맹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우선 동맹이 본성적으로 평화협정과 양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맹(Alliance)이란 “대개 현실의 적이나 잠재적으로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적성국가에 대항하여 제3의 국가와 힘을 합침으로써 서로 힘을 보강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한 상황 하에서 동맹 구성국 이외의 국가를 상대로 군사력을 사용(또는 불사용)하기 위한 국가 간 공식적인 제휴”를 뜻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남북 어느 한쪽 또는 양쪽이 각기 외국과 동맹을 맺는 것은 다시 상대를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평화협정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동맹은 경험적으로 보더라도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위태롭게 한다. 한미동맹이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을 억지한 것이 아니라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전쟁위기를 수시로 불러온 것이 그 좋은 증거다.


싱어와 스몰(D. Singer & M. Small)은 “동맹이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촉발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동맹이 전쟁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동맹결성이 “국가 간 불신감과 긴장을 조성하여 오히려 대항동맹의 결성을 촉진하는 동시에 국가의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상호작용의 기회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동맹국과의 관계를 한층 긴밀히 하면 할수록 역으로 이것은 적대국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결국 동맹의 안보 딜레마를 초래한다. 결국 결속력이 강한 동맹관계는 국제체제의 주요 행위자인 국가를 양 진영으로 분화시켜 전쟁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인다.


“(사람들은) 동맹이 일반적으로 동맹들 사이의 전쟁 개연성을 낮춰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보면 그 반대다. 동맹을 맺지 않은 비동맹국 사이보다는 동맹들 사이에 전쟁이 오히려 발생하기 쉽다. 또 참전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나라는 전쟁에 휩쓸리기 쉽고 전쟁참여율이 높아 동맹은 전쟁확대의 경로로 될 수 있다. 더욱이 대국은 동맹 체결 5년 이내에 동맹 구성국 외의 나라와 전쟁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향후 군사동맹의 참여 금지는 또한 남북이 외국과 군사동맹을 맺음으로써 한반도가 외세의 각축장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며 외세의 힘(군사력)을 빌려 상대를 제압하려는 민족 분열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대결정책의 폐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 향후 군사동맹의 참여 금지는 남과 북이 군사동맹에 참여함으로써 중립적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지역의 전쟁이나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남과 북이 각기 한반도 바깥 지역을 적용범위로 하는 동맹을 외국과 맺는다 하더라도 동맹을 맺는 이상 다른 나라의 전쟁이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다른 나라 민족(국가 또는 인민)의 자결권을 침해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초석으로 되기 때문에 한반도 역외 지역 대응을 위한 군사동맹은 한반도 평화협정 및 평화체제 구축과 양립할 수 없다.


또 남이든 북이든 외국과 동맹을 맺게 되면 중립적 지위를 잃게 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통일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외세로부터 견제와 압박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③ 한(조선)반도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조약과 협정의 폐기(18조 2항)


18조 2항은 남북이 다른 나라와 맺은 각종 조약 또는 협정 가운데 한반도 통일에 대한 외국의 간섭이나 무력통일을 허용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폐지하도록 한 규정이다.


1954년 11월 17일에 발효된 한미합의의사록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관련 조항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은 국제연합을 통한 가능한 노력을 포함하는 국토통일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미국과 협조한다.


2. 국제연합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국군을 국제연합군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둔다. … ….


3. 경제적 안정에 배치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자원 내에서 효과적인 군사계획의 유지를 가능케 하는 부록 B에 규정된 바의 국군병력기준과 원칙을 수락한다.

이 한미합의의사록은 남측 군사력과 내정,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협정으로 보장해 주는 것으로, 이러한 협정의 존립은 남북이 민족적 이해에 입각해 자주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 갈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또한 2002년 제34차 SCM에 보고된 ‘한미공동협의 결과’는 흡수통일, 통일 이후 미군 주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지속 등 ‘미래 한미동맹’의 상을 밝힌 비밀문건으로, 일본을 포함한 군사동맹 지속과 한반도 흡수통일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협정이나 조약은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자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볼모로 잡고 내정과 통일 과정, 통일 이후까지를 간섭하려는 것으로, 남북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6) 향후 외국군대 및 군 기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의무(19조)


19조는 주한미군이 철수한 뒤에 남북이 어떤 형태로든 외국군대와 외국군기지를 다시금 새로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이는 우선 외국군대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해 온 근본원인이라는 역사적 인식을 반영한다.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고, 이는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또 한국전쟁은 외세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되고 훨씬 참혹한 결과를 낳았으며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더욱 복잡해지고 지체되게 되었다.


정전 뒤에도 철수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주둔해 온 주한미군은 직접 대북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동시에 한국군에 대해서도 남북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을 강제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수시로 전쟁위기와 군사적 긴장을 불러왔다.


이에 19조는 외국군대가 한반도 평화 위협의 근본원인이라는 역사인식 속에서 외국군대를 배격함으로써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규정된 것이다.


또 19조에서 남과 북이 향후 외국군대 및 외국군 기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한 것은 외국군대의 주둔과 외국군 기지의 설치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이 협정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평화협정 이후 남과 북 사이의 분쟁이나 이견은 모두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또 외세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남과 북이 분쟁이나 이견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군대를 불러들이고 기지 설치를 허용한다면 이는 상대에 대한 힘의 우위를 통한 강압적 해결을 꾀하는 것이 되고 또 외세에 의존하게 되어 남과 북이 분쟁이나 이견을 외세의 개입 없이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한 이 협정을 위반하게 된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 남과 북 어느 한 쪽이라도 외국군대의 주둔과 외국군 기지를 다시 허용한다면 남북 간 군사력 균형이 파괴되고 열세에 놓인 다른 한 쪽도 외국군대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평화협정 이전과 같이 우리 민족은 자주권 상실을 자초하게 되어 한반도 평화가 다시 외세의 손에 맡겨지는 결과를 낳게 되고 남북 간 대결의 골이 메워지기는커녕 더욱 확대될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주둔비용을 부담하게 돼 민중복지의 개선도 기대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 19조의 규정은 남과 북이 남북관계가 아닌 국제정치 차원에서 또는 국내 경제 차원에서 외국 군대의 주둔이나 외국군 기지의 설치를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금지한다.


향후 남북이 외국과 동맹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며 한반도에 외국군 기지 설치나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외국군대나 외국군 기지는 제3국(가령 중국, 러시아, 대만, 일본 등)을 겨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이 어떤 이유로든 외국군대의 주둔과 외국군 기지의 설치를 허용하게 되면 중립적 지위를 스스로 잃게 되어 지역 및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폭넓고 통일적인 국제적인 지지 확보도 곤란하게 되고 남북이 패권을 다투는 나라들의 견제와 압박 대상이 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외국군대와 외국군 기지는 남과 북 어느 한 쪽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외세의 패권 추구의 볼모로 되는 것이며, 그 결과 다시 외세에 의해 우리 민족의 의사가 재단되고, 분열과 대립의 역사가 재연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 우리 민족이 다시 자주권을 상실하고 반목과 대결에 빠지지 않으려면, 남의 전쟁에 휘말리거나 동북아시아 군비경쟁과 패권 각축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외국군 주둔 및 외국군 기지가 어떤 이유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7) 한반도 통일방식의 규정(20조)


20조는 한반도 통일방식(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의 통일은 남북 간 오래된 합의 사항으로 여기서는 재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통일방식을 규정한 취지는 통일이 한반도 평화에서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 때문이며 한반도 평화가 통일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담보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조항이 전문이나 1조에서 밝힌 한(조선)민족의 통일 권리를 확인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통일방식을 밝힌 것은 평화협정이 분단문제의 해결을 직접적인 목표로 내세우지는 못한다고 해도−이와 달리 정전협정 60항에 의해 소집된 제네바 정치회담에서는 통일방안 합의가 외국군 철수 문제와 함께 2대 의제였다−남북 간 평화공존의 제도화에 머무르지 않고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노력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평화협정이 단순히 통일원칙에 대한 지지 표명에만 머무른 채 통일방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통일을 궁극 목표로 하는 우리 민족에게 평화협정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바. 5장 평화지대․평화수역 설치와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실시


(1) 5장의 취지


평화협정 체결 자체만으로 남북, 북미 간 군사적 충돌을 완전히 방지할 수 없으며, 정세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무력분쟁과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례를 국제사회에서 적지 않게 경험해 오고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에는 협정 당사자 간에 다시 무력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 당사자 간 무력분쟁은 정치적 이해의 충돌을 해소하지 못하거나 또는 우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야말로 이를 막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안이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무력분쟁의 가능성을 사전에 막고, 군축을 통해 무력분쟁의 규모와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에 이 협정(안)도 5장에서 군사적 신뢰구축(22~25조)과 군축(26~27조) 조항을 두어 평화협정 체결 이후 발생할 수도 있는 무력분쟁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물론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은 단지 평화협정의 이행이 파탄 나게 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으로서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다. 이는 한반도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에 남북 군사력을 어떻게 통합하고 운용해 나갈 것인가 하는 통일 민족국가 상을 담보해 주는 의미 또한 함축하고 있다.


(2)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및 그 의의(21조)


21조에서는 “한(조선)반도에서 전쟁 재발의 우려를 완전히 없애고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남북이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실시한다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의 필요성과 의의를 규정하고 있다.


군사적 신뢰구축(Confidence-Building Measures)은 분쟁 당사자 사이의 군사 활동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우발적 무력충돌과 기습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말한다. 통일부는『남북기본합의서 해설』에서 군사적 신뢰조성에 대해 “남북한이 상호 상대방을 무력으로 공격하지 아니할 것이며, 군비의 유지는 상대방이 공격해 올 경우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뢰를 갖도록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제반 조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 사전 통고 및 통제,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군 인사 상호교류 및 정보교환 등은 그 예다.


이에 반해 군축(disarmament)은 군사력의 감축 내지는 철폐를 가리킨다.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충돌을 막고, 상호 불가침 및 체제 존중 등의 과제를 담보해 주는 군사적 조치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군사적 신뢰구축은 현존 무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어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공고히 하는데 본질적인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평화협정이 명실상부하게 평화협정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군축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군사적 밀도가 높고 긴장이 첨예한 곳이어서 군축이 빠진 평화협정은 결코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지 못한다.


또한 정전상태 하에서 반세기 넘게 남북이 증강해 온 무력(인원과 장비)을 그대로 두고서 평화공존과 통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아울러 군비경쟁으로 그 동안 남북 민중이 짊어져 왔던 버거운 경제적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군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한반도 군축에 관한 기본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평화협정은 이를 기초로 그 이행 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21조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당사자를 남, 북,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오래 전에 북에서 군대를 철수시켰고, 군사기지도 없기 때문에 당사자에서 제외시켰다. 미국은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한반도 군축 및 군사적 신뢰구축과 관련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또한 외국군과의 군사연습 및 훈련 금지(24조), 주한미군 철수와 군축의 상호 연동(26조), 핵우산 불허(27조), 외국으로부터 무기도입 금지(26조), 동북아 비핵지대화 실현 노력(27조) 등의 의무로부터 직∙간접적인 규정을 받게 된다.


(3)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22조) 및 서해 해상의 평화수역화(23조)


이 평화협정(안)은 남북이 직접 군사적으로 대치해 왔고 정전상태 하에서 가장 군사적 충돌이 잦았던 지상 경계선과 서해 해상 경계선에 군사적 신뢰구축의 일환으로 평화지대와 평화수역 개념을 도입하였다. 평화지대와 평화수역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이를 25조(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조항)에 포함시키지 않고 각각 독립적인 조항으로 두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로의 전환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한 조치로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제 12조)에 합의함으로써 기본 틀에 접근한 바 있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로의 전환은 군사적 신뢰구축의 한 조치로서 남북 간의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기습공격의 가능성을 낮추는데 기여할 것이며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높여 군축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끌어내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정전상태 하에서 비무장지대가 오히려 무장지역으로 되어 무력충돌의 접점으로 되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전환하는 것의 군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은 10․4 공동선언에서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을 적극 추진”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서해 분쟁수역에 육상과 같은 평화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은 남북 민간인들의 자유로운 어로 활동과 통항은 보장되나 군함과 군용기의 출입은 통제되는 수역을 의미한다. 서해 평화수역을 설정하게 되면 남북 간 무력충돌의 위험이 가장 큰 지역에서 서해교전과 같은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고 서부전선 일대의 밀집된 군비태세에 변화를 가져와 군사적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어로구역의 설정은 분쟁수역의 일부를 남북 어민들이 공동으로 조업하고 공동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설정된다. 공동어로구역은 평화수역 안에 설정할 수도 있고, 평화수역과 따로 설정할 수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부속합의서에 별도로 규정하도록 하였다.


이렇듯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로의 전환과 평화수역 및 공동어로구역 설정은 단지 남북 간 군사력을 격리·배치하여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막는다는 군사적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 민족의 평화의지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견인차로서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남북의 군사력이 모두 철거된 속에서 남북 민간인들이 한 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 민족번영의 전형을 창출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의 금지(24조)



이 조항은 남과 북이 한반도 안에서 어떤 외국군과도 연합 연습 및 훈련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평화협정 이전에 실시돼 온 모든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이 평화협정 발효와 함께 즉시 중지되며 이후에도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조항은 남북 모두에 적용되지만 주로 한미 양국에 적용된다. 왜냐하면 북쪽에는 외국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는 반면 남에서는 수시로 북을 겨냥한 한미연합군의 전쟁연습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군(주한미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이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즉시 중지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을 낳고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왔기 때문이다.


한미연합 연습 및 훈련은 방어훈련이라는 한미 군 당국의 주장과 달리 대북 공격과 점령을 가상한 공격 연습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왔다. 북도 한미연합연습을 북침 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그 중지를 줄곧 요구하는 한편 그 때마다 대응조치를 취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되풀이되어 왔다.


한미는 매년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을지포커스렌즈 연습, 래피드 썬더(Rapid Thunder : 전시전환절차) 연습 등 한미연합사 주관의 전구급 연습과 이와 연계된 ‘반기 단위 효과중심작전 관련 훈련’(EBaO), 터보캐드(Turbo Cads) 연습, 쌍용훈련 등 대규모의 전쟁연습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전쟁연습은 그 자체로 상대방에 대한 무력위협에 해당된다. 한미 연합연습이 통상적인 군사기동훈련을 가장한 상태에서 곧바로 대북 기습공격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연습은 방어가 아닌, 선제공격과 북 정권의 붕괴를 목표로 하는 작전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공격연습이다. 한미 당국은 한미 연합연습이 통상적인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연습 내용 및 동원되는 인원과 장비로 볼 때 대북 공격연습임은 잘 알려진 대로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대 테러전, 긴급재난 구호를 구실로 한 외국군대와의 훈련도 그 자체로 대북 군사개입을 노리거나 이른바 북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9나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 5027 등과 연동되어 있다. 유엔사의 특수전 훈련, MPAT 훈련 등이 그 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한미 연합연습이 단순히 북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미 연합연습이 계속되는 한 동북아 신냉전 구도는 더욱 고착되게 된다. 외국군과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금지는 한반도가 청·일, 러·일전쟁과 같은 외세의 각축장으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취해져야 할 조치이다.


또 미군이 한미 연합연습을 통해 새로운 군사교리와 신무기체계를 시험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 공군의 훈련장으로 되어 온 매향리 국제폭격장이나 직도, 필승사격장 등이 바로 그와 같은 미군의 시험장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한반도가 미군의 세계 군사 패권을 위한 군사교리와 신무기체계의 시험장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도 모든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국군대(주한미군)와의 연합연습 및 훈련 금지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이런 조치는 남북 간의 신뢰를 조성함으로써 다른 평화군축 조치를 취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의 즉각 금지는 외국군대의 철수가 3년 이내에 이뤄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그 사이 혹 있을 수 있는 우발적인 무력충돌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의 금지는 외국군대가 완전히 철수한 뒤에도 적용되는 규정이다. 남과 북이 설사 외국군대의 주둔을 허용하지 않고 외국군 기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국군대와의 연합 연습 및 훈련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커다란 군사적 위협이 된다.


그리고 이 외국군대와의 군사연습 금지 조항은 필리핀의 경우처럼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뒤에 군사훈련을 빌미로 필리핀에 사실상 다시 주둔하는 것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5) 군사적 신뢰구축(25조)


이 조항은 우발적 무력충돌과 기습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취지를 밝히고, 대규모 부대이동의 사전통보 및 통제, 군사연습과 훈련의 사전통보 및 통제, 군 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등을 예시하고 있다. 평화지대나 평화수역 설정에 따른 부대배치 등도 논의될 수 있다.


다만 세부적인 이행 사항은 부속합의서로 정하되, 평화협정과 함께 체결해 발효와 동시에 이행될 수 있도록 하였다.


통보 및 통제(제한) 대상 부대규모와 그 방법은 부속합의서에 규정하도록 했는데, 독립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단위인 군단, 사단, 혼성여단까지를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연습과 훈련은 다른 개념으로, 두 개념 모두 통제 및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군사 당국자 간 직통전화 설치와 운영은 부분적으로 이미 남북 간에 이행되어 온 분야다. 직통전화는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평택 2함대 사령부와 남포 서해 함대사령부 간에 설치돼 2005년 8월 13일부터 정상적으로 가동된 ‘서해 군사 핫라인’ 3개 회선을 포함해 총 9개 회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연합뉴스 2005. 8. 13.) 통신수단의 현대화에도 합의하였다.


군 인사교류는 군 인사의 상호 방문을 통해서 그 동안의 불신을 풀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킴으로써 신뢰를 조성하는 것이다.


군사정보의 교환은 남북 상호 간에 군사 활동의 투명성을 높여 신뢰를 쌓으려는 것으로, 국방비나 병력에 관한 자료의 공개나 교환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남북이 이미 합의한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 등도 군사적 신뢰구축에 해당된다.


(6) 군축(26조)


이 조항은 남북 간 상호 재래식 군축의 의의와 방향, 방식, 실시 시기, 대상 등을 규정하고 있다. 세부 사항은 부속합의서에 따른다. 핵무기, 탄도미사일 감축·폐기는 북미 간 직접 협상이나 6자회담에서 다뤄질 사안으로 대상이 아니다.


이 조항은 군축의 의의를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을 막고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군비경쟁의 포기와 항구적 평화 보장은 남북이 각기 상대방의 공격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가능하다. 이는 군사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거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는 담보될 수 없다.


남북은 모두 공격적 군사교리와 전략을 채택하고 있고, 또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반도는 만성적인 전쟁 위협에 처해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은 남북이 공격적 군사교리와 전략을 폐기하고 방어적 군사교리와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이에 기초해 공격적 무기체계를 비롯한 전력 감축을 해야 한다.


남북한 병력은 합하여 무려 180여 만 명에 달한다. 이는 초강대국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더 많은 병력이다. 이러한 병력 규모는 각기 상대방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220만 명의 대병을 보유한 중국과 맞서는 대만의 병력이 27만5천명(2008년 현재)에 불과하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영국 등의 병력이 10∼28만 명에 지나지 않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통일 한국의 병력은 20∼30만 명이 적정선으로 보이며, 따라서 통일 이전 평화공존 단계에서 남북은 병력을 각각 10∼15만 명으로 감축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각각 10∼15만 명의 병력만 보유하게 된다면 상대가 전면 공격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종 무기체계와 장비도 방어적 군사교리와 전략, 병력 수준에 맞춰 감축하되 상대방의 종심 깊은 곳을 타격할 수 있는 지대지, 공대지, 함대지 무기체계를 우선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무기체계 중에서 대표적인 공격용 무기인 탱크, 장갑차, 야포, 전투기, 공격용 헬기, 함정(잠수함, 상륙정 포함) 등이 주된 감축 대상으로, 이들 무기체계의 양과 질을 일정 수준으로 감축, 제한해야 한다.


또한 평화협정이 발효되면 외국으로부터 각종 공격용 무기와 그 성능 개선을 위한 부품과 기술의 도입을 금지해야 한다. 한편으로 군축을 하면서 한편으로 외국으로부터 공격용 무기와 부품과 기술의 도입을 허용한다면 양적 측면에서는 군축이 이뤄질지 모르나 질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군비경쟁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며, 남북 간의 현격한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면 군축 자체가 남의 일방적 질적 전력 우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군축은 평화협정 발효와 동시에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평화협정 협상 시 군축이 정식 의제로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평화협정이 발효된 뒤 군축에 관한 협상을 시작한다면 군축은 장기적 과제로 미루어질 공산이 크며, 그 만큼 평화협정 체결 의미를 반감시킬 것이다.


이에 이 시안은 평화협정 발효와 함께 군축이 시작되어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추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유럽 재래식 전력 감축 조약(CFE)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3년 내 군축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한반도는 유럽과 달리 영토가 매우 좁고 군축 당사자가 다자가 아닌 남북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인원과 무기 배치가 많은 부분 이미 상대에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합의와 이행, 검증이 비교적 용이하다.


또한 남북 간 상호 군축을 주한미군 철수와 연동해 추진하도록 했는데, 이는 남북이 각자의 전력 수준을 상대의 군비증강과 연계하여 정당화해 온 그 동안의 사정과 관련된다. 남과 미국은 북의 전력 우위와 남침 위협을 들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화해 왔으며, 북은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와 이들에 의한 고성능 공격용 무기도입을 줄곧 위협으로 인식해 왔다. 따라서 북으로서는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하고 있는 조건에서 남만 군축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할 것이며, 남으로서는 북이 군축에 나서지 않는 조건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남북 상호 군축과 미군철수를 연계하는 것만이 한반도 군축을 실현하는 방안으로 될 수 있다.


(7) 핵우산 제공 금지와 동북아 비핵지대화(27조)


이 조항은 남북이 핵무기를 제조, 반입, 배치하지 않을 의무 및 미국이나 러시아 등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지 않을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항 외에 따로 핵 재처리 시설이나 핵연료의 반입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특별히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이 조항은 한반도 비핵화의 내실을 다지고 그 외연을 확대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한층 공고히 다지고자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남에 핵무기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검증되고 북의 핵무기가 폐기되어 전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남이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 받고 북 또한 가령 러시아로부터 핵우산을 제공 받게 된다면 한반도 비핵화란 군사적으로 별 의미가 없게 되고 남북은 여전히 핵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나 러시아로부터 핵우산을 제공 받는다는 것은 남이 동맹을 연장하거나 북이 새로 동맹을 체결할 경우 현실화될 수 있는 것으로, 한반도 비핵화로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하자는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따라서 핵우산 제공은 한반도 비핵화와는 양립할 수 없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군사적 대결과 군비증강을 종식하고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해 주는 시금석으로 된다. 이에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북의 핵무기와 함께 폐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명실상부한 것으로 만들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의 외연을 동북아시아로 넓히는 것이다. 남북이 핵무장을 하려는 주된 원인의 하나가 주변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통해 남북이 핵무장을 하는 원인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50년대부터 소련과 중국이 제기한 이래로 북 당국이나 미국 일본 내 학자들도 주장해 왔으며, 최근 들어 한국의 일부 연구자들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중심으로 반경 2,000Km 내외에서 핵무기 소유, 배치, 사용을 금지하는, 나아가 핵 함정이나 항공기의 통행까지를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미·러·중·일의 군사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실현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의 핵무기 보유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핵무기 보유국가의 인정이 동북아 핵 감축과 비핵지대화의 지렛대로서 얼마만큼 역할을 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후부터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외면한 것과 달리, 북의 경우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후에도 변함없이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추구하고 있어 동북아 비핵지대화의 기본 동력은 마련된 셈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가 의제로 제기될 가능성은 그 만큼 커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협정과 동북아 비핵지대화는 관련 당사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동북아 비핵지대화 논의의 장은 한반도 평화포럼이 아닌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 실무그룹이나 또 다른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이 시안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핵무기 보유 국가인 미국과 중국 등의 당사자들에게 동북아 비핵지대화 실현에 노력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사. 6장 평화협정의 이행을 위한 공동위원회


(1) 6장의 취지


평화협정은 체결도 어렵지만 그 이행은 더욱 어렵다. 평화협정이 규정한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평화협정은 파탄 나게 되고, 당사국 간 관계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의 적대적 관계로 되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이행을 점검, 관리할 기구의 구성과 운영은 평화협정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에 6장은 각 당사국에 부여된 의무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 관리할 기구의 구성과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평화협정의 이행 당사자는 각 당사국 정부이므로 이 장에 따라 구성되는 기구는 실무적 성격의 기구라 할 수 있다. 이 기구는 의무이행 사항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남·북·미·중 대표로 구성되는 4자 공동군사위원회, 남북 대표로 구성되는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로 나뉜다.


(2) 4자 공동군사위원회(28조)


28조 1항은 남, 북, 미, 중 4자가 공동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이 4자가 이 협정의 당사국으로 되어 있어 의무사항의 이행을 점검하고 관리할 책임도 지기 때문이다.


2항은 이 기구가 확인하고 점검할 사안(임무)을 규정한다. 4자 공동군사위원회는 ▲ 국제연합군사령부 해체(3조), ▲ 평화협정 발효 후 3년 내 외국군 철수 및 외국군 기지의 철거(4조), ▲ 주한미군 철수 시까지의 미군 병력 1:1 교체(5조), ▲ 당사자들의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준수(11조), ▲ 주한미군 철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 폐기(12조), ▲ 한(조선)반도 안 외국군과의 연합 연습 및 훈련 중지(24조), ▲ 남북 두 당사자 간 군축 이행 및 협의(26조) 등의 이행을 공동으로 확인하고 점검한다. 즉, 위 사항을 이행할 책임은 해당 당사자가 지지만, 사안의 성격 상 그 이행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은 4자 공동군사위원회가 하게 된다.


3항은 4자 공동군사위원회의 구성, 업무절차, 활동수단, 경비, 소재지 등 실무적 사항을 규정한다. 소재지를 판문점 부근으로 한 이유는 그곳이 남북의 지상 경계선에 위치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4자 공동군사위원회는 미군철수가 완료되고 북의 핵무기가 폐기되면 해소한다. 이는 미군철수와 북의 핵무기 폐기가 완료되면 4자 공동군사위원회가 점검, 관리할 사항도 기본적으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3)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29조)


29조 1항에서 4자 공동군사위원회와 별도로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를 두기로 한 이유는 남북이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서의 지위를 갖고 다른 당사국들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이행을 확인, 점검할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에 따른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와, 이와는 내용적으로 연관되면서도 다른 차원, 예컨대 10·4 선언의 이행을 위해서 구성·운영되는 기구의 관계는 남북 협의에 따라 상호보완적으로 운영된다.


2항은 남북이 확인 점검할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 전환과 그 관리(22조), ▲ 서해 평화지대의 관리(23조), ▲ 남북 각각의 외국군과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중지(24조), ▲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25조), ▲ 남북 간 군축 이행 및 협의(26조) 등이 그것이다.


3항은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의 구성, 업무절차, 활동수단, 경비, 소재지 등 실무적 사항을 다룬다.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의 주 사무실은 판문점 부근에 두면 될 것이다.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는 위의 임무가 종료되면 해소한다.


(4) 이행 기구의 운영 원칙과 이견 시 조정 방안(30조)


30조는 4자 공동군사위원회와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의 운영 원칙과 이견 시 그 조정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4자 공동군사위원회와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는 전원 합의의 원칙 아래 운영되며, 다만 이견이 발생하면 이를 국제평화감시단에 제출하고 그 조정에 따르도록 하였다.


아. 7장 국제평화감시단


(1) 7장의 취지


이 평화협정의 이행을 감시, 감독할 기구(4자 공동군사위원회와 남북 공동평화관리 위원회)가 이견이 발생하여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평화협정의 이행은 중단되거나 좌초된다. 따라서 이견을 조정하는 장치는 관리 기구의 구성 및 운영에 못지않게 평화협정 이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고리다. 이에 이 시안은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국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국제평화감시단을 구성하여 평화협정의 이행을 감시, 감독하고 관리 기구 내 이견을 조정하도록 하였다.


(2) 국제평화감시단의 임무 및 구성(31조)


① 임무


국제평화감시단은 이 협정의 이행을 감시, 감독하고 당사국 사이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국제평화감시단은 4자 공동군사위원회의 임무인 28조 ②항 각 호 및 남북 공동평화관리위원회의 임무인 29조 ②항 각 호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들을 감시, 감독하고 그에 관한 이견 발생 시 이에 관한 조정권한을 행사한다.


② 구성


국제평화감시단 구성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조정 역할을 어느 한 쪽 당사국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수행할 수 있는가 여부다. 이런 기준에서 국제법상 중립국, 한국전쟁에 교전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나라, 미국이나 중국,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지 않은 나라, 이 협정의 4개 당사국의 간섭이나 압력에 대해서 독립성을 견지할 수 있을 만큼 국제적 위상을 가진 나라 중에서 5개국을 선정했으며 가급적 대륙별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하였다.


이런 기준에 의거해 두 중립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가운데 스위스를 선정했으며 나머지 4개국은 아시아에서 인도와 말레이시아, 유럽에서 스웨덴, 남미에서 브라질을 선정하였다.


일부에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국제평화감시단을 구성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유엔 자신이 한국전쟁의 교전 당사자였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국제평화감시단을 구성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며 유엔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다시금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한편, 한반도 평화협정을 감시·감독하는 기구에 미국과 중국 등 이해당사국을 참가시키자는 주장이 있는데 평화협정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당사자가 자신을 감독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불공정한 방안이다.


(3) 국제평화감시반의 편성과 국제평화감시단의 운영(33조, 34조)


국제평화감시단의 임무 수행을 위해 산하에 감시반을 편성한다. 감시반의 편성과 운영은 베트남 평화협정 등 다른 사례를 참고하여 감시단 구성국 대표들이 이 협정 당사자들과 협의하여 정한다.


국제평화감시단은 협의와 만장일치 원칙 아래 운영되며, 조정 업무가 끝나면 종료된다. 국제평화감시단의 종료는 미군철수가 완료되고 남북 간 군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자. 8장 부칙


(1) 8장의 취지


8장은 한반도 평화회복을 위해 당사국들이 취해야 할 조치(내용)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 협정이 국제법으로서의 효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사항들 가령 협정의 발효 요건, 이 협정 발효 뒤의 수정⋅보완 문제, 작성 언어 등을 규정한다.


(2) 서명 즉시 발효토록 규정(부칙 35조)


이 평화협정은 각국 협상 대표의 서명과 함께 발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화조약(평화조약)의 발효시기는 별단의 규정이 없는 한 서명 시이다.”


다른 사례를 봐도 서명 시 발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베트남 평화협정(1973. 1. 27.)이나 보스니아 평화협정(일명 데이턴평화협정:1995. 12. 14.), 코소보평화협정(1999. 6. 9.), 캄보디아평화협정(1991. 10. 23.) 등은 서명과 동시에 발효하도록 되어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간의 상호관계 원칙을 정한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1988. 4. 14.)은 그 발효 날짜를 명시하고 있는 데 서명한 한 달 뒤인 1988년 5월 15일을 발효 날짜로 정해놓고 있다. 반면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비준서를 교환한 날로부터 발효하도록 되어있다.


이 평화협정이 서명과 함께 발효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50년 이상이나 그 체결이 지체되어 왔고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이 겪은 오래 동안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에 따른 한반도 평화협정의 절박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이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평화협정에 합의하고서도 각국의 국내 사정(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그 발효가 늦어지거나 아니면 혹 있을 수도 있는 좌초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각 당사국의 국내 승인절차는 각자의 법에 따라 차이가 있고 또 각국 사정에 따라 정책에서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서명 즉시 발효토록 한 것은 이런 각 당사국의 불일치한 국내 요인 때문에 한반도 평화협정의 발효가 지연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그 발효와 함께 즉시 이행되도록 규정한 조치들이 적지 않다. 유엔사 해체나 외국군과의 연합연습의 중지 등이 바로 그것이며 남북 간의 경계선도 즉시 적용된다. 이런 조치들은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즉시 이행되어야 할 조치들이다. 만약 이것이 각 당사국의 국내적 승인 절차의 지연 때문에 그 이행이 늦어진다면 그 사이 평화협정의 성실한 이행에 대한 신뢰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 협정이 발효 뒤 각국이 자국 내에서 국내법적 승인 절차(비준)를 거치는 것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협정(또는 평화조약)은 휴전협정과 달리 해당국 정부의 비준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다수국가가 참가한 평화협정(또는 평화조약)의 경우 어느 특정 국가가 이를 비준하지 않으면 설사 평화협정이 발효된다고 하더라도 비준하지 않은 국가와의 사이에는 전쟁상태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으로 본다.


(3) 작성 언어


이 협정은 당사국이 남과 북, 미국, 중국으로 되어 있어 각각의 언어로 작성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동등한 효력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어느 한 당사국이 이행과정에서 자기 문서(언어의 차이)를 근거로 자의적인 해석(적용)을 우김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분란을 막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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