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北대사관 “정치범수용소 명단 두고가라”

런던 방문 이틑날에는 영국 의원 세 사람을 만났다.


영국 보수당의 하원 의원 두 사람과 상원 의원 한 사람이다. 데이빗 린딩턴(David Lindington)은 보수당 하원 의원이다. 그는 보수당이 만약 내년 5월경으로 예상되는 선거에서 집권하면 영국 외무부 인권 담당 차관으로 내정돼 있다. 


그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은 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제는 북한 주민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행동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보수당 하원 의원 토니 발드리(Tony Baldry)는 구체적으로 영국이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고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특히 그는 영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임을 강조하며 상임이사국 영국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이에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정광일씨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유엔에서 북한 수용소 사찰팀을 구성해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이 북한에 핵 사찰팀만 조직해서 운영할 것이 아니라 수용소 사찰팀을 만들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또 하나는 북한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대북 방송 등 외부 정보 유입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의 의식이 마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인권 침해를 받아도 그것이 인권 침해인지 모르고 한국 전쟁을 북한이 일으켰음에도 미국이 일으켰다고 믿음으로서 허위적 반미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북한의 근본적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상원의 캐롤라인 콕스는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같은 상원의 데이빗 앨튼 과 함께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실제 북한을 방문하여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런던 시간으로 화요일 오후 5시반에 진행되었던 북한 인권 청문회도 콕스 여사가 조직한 것이다. 그 만큼 그는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이었다.


북인권 청문회 성공적…영국 언론 관심도 뜨거워 


영국 의회에서 진행된 북한 인권 청문회는 성공적이었다. 미국 청문회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그래도 북한과 별 이해관계가 없는 영국이란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청문회치고는 분위기가 뜨거웠다. 예약된 방이 꽉 차서 서서 청문회를 들어야 했을 정도이다. 런던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원정을 온 사람도 있었다.


청문회가 끝나고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의 한국 교민들 중에는 북한 대사관과 교류를 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런던 북한 대사관에 이 서기관이라고 있는데 아주 신사적(gentle)이고 사람이 좋다는 칭찬을 연발했다. 그리고 영어도 아주 잘한다는 칭찬을 곁들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 서기관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궁금해졌다.


런던 방문 이틀째 되는 날에도 영국 언론들의 관심은 아주 뜨거웠다. 인터뷰를 진행한 언론사만 해도 5개는 되었다. CNN, BBC도 1시간 가량씩 인터뷰를 하고 영국의 최대 일간지인 더 타임즈와 가디언 그리고 영국 주재 아사히 TV까지 동참했다.


이런 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은 11월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12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보편적 정기검토가 맞물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방문 첫날 두 개의 라디오와 하나의 TV 인터뷰까지 진행했던 정광일, 이성애 두 탈북자들은 둘째날에는 5개 인터뷰까지 강행군하는 바람에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일정이 빡빡해 분, 초까지 쪼개 써야 하는 바람에 점심은 거의 샌드위치로 떼웠다. 이성애씨는 처음 나온 해외 여행이라 음식이 맞지 않아 큰 고생을 했다. 정광일씨는 좋아하는 담배도 여유있게 필 시간이 없었다.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방문


우리는 셋째날 아침에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을 방문했다. 런던 대사관은 런던 시내에 있지 않고 런던 서쪽 외곽에 위치했다. 일반 가정집 건물을 대사관으로 쓰고 있었다.


정광일 씨가 일하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2004년부터 북한 수용소 수감자 명단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009년까지 5년동안 모은 것이 187명이었다. 우리는 이 187명의 명단을 북한 당국에 제시하고 이들의 생사 여부를 묻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죽었다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해명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11월 4일 10시경 북한 대사관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북한 대사관에서 문을 열어줄리 만무하고 어떤 구두 대답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런던 대사관을 찾아간 사람은 필자, 정광일 씨, 세계기독교연대의 티나(Tina) 이렇게 세 사람이다. 티나는 세계기독교연대의 인권 담당 국장으로 있다. 우리는 북한 대사관 정문 인터폰을 통해 어서 문을 열고 자료를 수령할 것을 요구했다. 정광일 씨와 필자는 한국말로 자료를 수령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응답이었다.


그런데 Tina가 영어로 “우리가 건네줄 것이 있으니 문을 열고 나와서 받아라”고 말하자 인터폰을 통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좋은 발음의 영어로 “우리는 만남을 원치 않는다. 그냥 자료를 문 밑에 두고 가면 받을 것이다”고 답변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깜짝 놀랬다. 자료를 문 밑에 두고 가면 받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대사관에서 자료 받기를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자료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인터폰을 통해 영어를 대답한 사람은 어제 청문회 때 들은 기관원 같았다. 영어 발음도 아주 좋고 대답하는 어투도 전혀 화가 나 있거나 짜증이 섞여 있지 않았다. 아주 정중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나니 이 서기관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그 자료에는 수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되어 있다. 탈북자들의 한결 같은 말은 북한에서는 김정일과 관련된 일이면 간부들이 김정일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그 자료는 김정일에게 보고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판단 된다.


그 뿐 아니라 그 현장에는 BBC, KBS, MBC 기자들이 와 있었다. 기자들은 우리가 187명 명단을 전달하며 북한에게 해명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김정일은 이 언론 보도도 보고 받을 것이다. 때문에 김정일이 187명 명단을 보고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 셈이다.


북한이 이 명단에 대해 향후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대표단을 이 명단을 좀 더 이슈화시켜 캠페인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북한 대사관에서 이 명단을 받은 것은 우리 유럽 대표단의 가장 큰 성과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 대사관 방문을 마치고 CNN 스튜디오에 가서 어제 못다한 인터뷰를 마저 한 다음에 고속 열차인 유로스타를 탔다. 벨기에 브뤼셀의 EU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벨기에에 가려면 프랑스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해저 터널을 지나 프랑스를 경유해 브뤼셀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그 만큼 유럽은 가까워 보였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리를 맞아준 것은 세계기독연대 벨기에 지부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세계기독연대에서는 네사람이 나왔다. 런던에서 함께온 세계기독연대 인권 담당 국장인 티나, 그리고 벨기에 지부에서 일하는 안나(Anna), 소피아(Sofia), 그리고 로러(Laure)였다.


재밌는 것은 세계기독연대에서 일하는 이 네 사람 모두 국적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티나는 영국인, 안나는 미국인, 소피아는 핀란드인, 르어는 프랑스인이었다. 한 사무실에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브뤼셀은 EU 본부가 있는 것이기에 그 만큼 더 세계화된 것 같았다. 한국도 언젠가는 이렇게 국제화된 나라가 될까 생각하면서 브뤼셀 방문 첫날을 마감했다.<계속>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