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강제이주, 北정권 ‘부메랑’된다

북-중 국경지역은 과거 북한의 ‘유배지’였다. 이른바 남반부 출신과 성분이 나쁜 사람들을 대거 강제이주 시켰던 곳이 함경도, 자강도, 양강도 등 국경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회령 등지에 살던 국경주민들을 또 다시 내륙지방으로 강제이주 시켰다고 한다. 이른바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단)가 이 지역을 샅샅이 검열하여 비사회주의 행위 시범케이스에 적발된 수백 명을 감옥에 끌어가고, 탈북자 가족이나 외부와 연계돼 재산을 축적한 수십 세대는 함경남도 요덕과 황해도 옹진 등으로 추방당했다는 것이다.

검열과정에서 적발된 중범죄자나 한국행을 시도한 탈북자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사형(속칭 ‘실내처리’)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유배지였던 국경지역 주민들이 최근 10년 동안 중국으로 대거 탈북하고, 급기야 휴대폰으로 외부세계의 정보가 다량 유입되자 체제불안을 느낀 당국이 다시 이 지역주민들을 내륙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한-중 수교 후 국경지역 ‘사상의 전초선’으로 규정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 중에는 유독 함경도 출신이 많다. 국군포로 등 남한 연고자들도 꽤 된다. 북한은 한국전쟁 때 국군포로들을 남한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이른바 사회주의 근로자로 개조시킨다며 북부 탄광이나 광산으로 강제이주시켜 험한 일만 시켰다.

또 황해도와 개성에 살던 사람들도 대거 북쪽으로 강제이주 시켰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중국이 개방되면서 국경지역은 해외로 탈출할 수 있는 유리한 지역으로 변했다. 과거 유배지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잠재적 거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92년 한-중수교가 되자 북한당국은 38선을 ‘계급의 전초선’으로, 국경지대는 ‘사상의 전초선’ 으로 규정하면서 국경지대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국경경비대가 지키던 것을 새로 ‘국경경비사령부’를 조직했다. 30리에 1개씩 있던 국경초소를 5리에 1개로 증설했다. 그리고 한 개 초소에 한 개 소대씩 배치하고, 군견들을 내려 보냈다. 기동수단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국산 ‘베이징’ 지프차와 말(馬)을 순찰용으로 내려 보냈다.

국경지대에는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와서 들여보낸 휴대폰이 많다. 북한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는 루트가 마련된 셈이다.

현재 북한당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휴대폰 탐지기를 국경에 설치하고 휴대폰 색출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북한당국의 추방정책이 드디어 웃돌 뽑아 아랫돌 고이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체제불안만 낳는 추방령

강제추방은 연루된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포함되는 ‘연좌제’다. 필자도 북한에 있을 때 연좌제로 인해 강제추방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기자가 살던 곳은 평양-개성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지역이었는데, 어느 날 그 주변에서 사는 가정환경이 복잡한 사람들을 철거시키라는 중앙당 행사과(김정일의 호위를 맡은 부서)의 지시가 떨어졌다.

가정환경이 복잡한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김정일이 지나갈 때 테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방 당조직에서 안전부 주민등록과의 문건을 뒤져 과거 부모들의 과오까지 문제삼아 자식들을 다른 곳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기자 옆집에 살던 사람도 옛날 아버지가 부농출신이었는데 토지개혁 때 숙청되었다고 한다. 하필 그날이 옆집 사람 생일날 이었는데, 당조직으로부터 짐을 싸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아내는 ‘잘난 남편’ 때문에 몇 번을 쫓겨 다닌다고 눈물을 흘렸다. 옆집 가족은 그동안 김정일이 별장으로 가는 도로 주변에 산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다른 데로 쫓겨갔다고 한다.

이튿날 짐을 싸서 직장의 트럭에 실려 옮겨간 곳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불과 고개 하나 넘는 다른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고개 하나 넘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나?’라며 사람을 못살게 구는 당국의 추방령을 비난했다.

이번에 국경에서 내륙으로 강제이주된 주민들도 불만이 쌓여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륙지방도 김정일로서는 ‘안전지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일이 강제이주 시키는 지역도 날이 갈수록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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