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문명의 통일이 한반도 통일의 핵심이다

통일은 왜 해야 하는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세계에서 적절한 이유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대륙은 민족을 분류하기도 힘들다. 유럽도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고, 아시아도 일본을 제외하면 단일민족 국가가 거의 없다. 세계 여러 나라가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고,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만일 우리가 민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면 민족적 분류 측면에서가 아니라 통일신라 이후 지난 1,300년 동안 강력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공동체를 유지해 온 민족이라는 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통일의 당위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동질성은 통일을 추구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마련해준다.

다음으로, 남한과 북한은 같은 국가인가? 대한민국의 헌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 의하면 남북한은 단일국가다. 이것을 통일의 당위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남한과 북한은 지난 60여 년 동안 독립국가로 운영되어 왔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도 남한과 북한을 독립국가처럼 대하고 있고, 유엔도 남북한을 각각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중해야 하지만 헌법에 단일국가라고 나와 있다는 것이 통일의 절대적 당위성을 충분히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대한민국의 헌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이 거의 70년 가까이 계속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지향성이 강하다는 증거이다.

셋째로, 남북한 주민들의 통일열망이 당위성을 제공해주는가? 그런 측면도 있지만, 과연 통일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인가? 여론조사를 해보면 통일에 대해서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 사람이 다수다. 물론 북한 주민들 대부분이 통일을 지지하겠지만 남한은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지지도 반대도 안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모든 한반도 주민이 통일을 열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통일 열망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남한에서도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력한 에너지나 열의를 갖고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결국 통일을 지지하거나 열망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반대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보다 월등히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본다면, 통일의 당위성은 주로 한반도인의 통일에너지, 통일에 대한 열망에서부터 온다. 통일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통일을 열망하는 에너지의 합이 통일을 반대하는 에너지의 합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이 통일의 당위성을 설명해 주는 주된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통일하는가?

통일은 한 마디로 주권의 통일과 문명의 통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오해하는 게 있다. 통일 하면 제도의 통일이라든지, 이념의 통일이라든지, 문화의 통일이라든지, 경제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도, 이념, 문화, 경제는 통일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남북한 사이에 주권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각기 다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다양한 이념을 존중하고 포용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념의 통일이라는 게 필요하지도 않다. 이념의 통일은 김일성 체제 하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자유세계에서는 추구할 필요가 없다. 문화의 통일도 통일국가를 구성하면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다. 급속하게 적극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남북한의 생활양식이나 의복, 사고방식을 굳이 통일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언어는 남북한을 통합하는 표준어를 제정할 필요는 있으나 언어 역시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문화는 서로의 것을 존중하면 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의 경제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 북한 경제에서 당면해서 필요한 인플레이션율, 통화발행정도, 고용정책이 남한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경제 통일을 반드시 하는 게 좋은지 의문이다. 제도, 이념, 문화, 경제의 통일은 반드시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일하는가? 핵심적인 것이 주권의 통일과 문명의 통일이다. 주권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권의 통일이 안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권의 통일을 우선적이고 절대적으로 해야 한다. 주권은 글자 그대로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서 홍콩이나 마카오의 주권은 중국에 있다. 홍콩이 행정도 독립적으로 하고 있고 정치체제, 경제체제도 중국과 다르게 운영하고 있고, 영사문제, 무역도 독립적으로 처리하지만, 홍콩의 주인은 중국이고 궁극적 권력은 중국이 갖고 있다. 이것이 주권문제다. 주권의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권이고, 둘째는 외교적인 인정(주권을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인정을 안 해줄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권이라고 볼 수 있다. 주권 문제만 해결된다면 다른 문제는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주권 다음으로 문명의 통일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장기적인 과제로서 추구해야 한다. 문명의 통일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으면 통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고 통일이 제대로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문화의 차이는 꼭 극복할 필요도 없고, 극복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언어, 의복문화, 식문화, 음악, 미술 등 문화적 차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문명의 차이는 대단히 크고 극복하기 쉽지 않다. 문명의 차이 중에서 과학지식, 생산기술, SOC(사회간접자본)는 비교적 빨리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권의식, 정치적 주인의식, 민주적 의식과 태도,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 법치의식, 타인에 대한 존중, 소수에 대한 보호 등의 문명적 차이는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없다. 한국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이 대단히 빠른 시간에 발전하고 과학기술도 성장했지만, 문명적인 면에서는 다른 선진국과 여전히 격차가 있다. 성공적인 통일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결국 문명적인 통일을 얼마나 잘 성취하느냐로 귀결된다. 정밀하게 추산해본 적은 없지만 30~40년 내에 문명적 통일을 이룬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통일된 지 20년이 조금 넘었는데, 동독 출신의 메르켈 총리의 집권에서 상징화되듯이 문명적 차이를 거의 극복했다. 동서독은 17세기말부터 근대문명을 공유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명적 갈등요소가 크지 않았다. 독일 국민들 특성상 규율을 잘 지키고 인내심이 강한 것도 갈등을 잘 수습하는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