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진지로 변한 국가인권위원회, 이제 정상화돼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인권침해는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관통해보면, 인권이 발전해온 궤적이 선명하다. 인간의 이성이 깨어왔고,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이동해오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지키려는 핵심은 모든 인간의 차별 없는 인권보장이다.

한국은 경제발전의 기반 위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성공시켰다. 직선제 대통령선거를 추구한 목표는 자유와 인권의 보장이다. 민주화 항쟁을 주도하였다고 자신들의 역할을 견강부회하는 좌파 인사들은 그들이 추구했던 인권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지금 곤혹스런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바로 북한동포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부르짖던 자유와 인권을 북한 주민들은 향유할 수 없는가? 그들은 180도 태도가 돌변해서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애써 모른 척했다. 아니 북한 정권을 비호하려 했다. 북한 주민의 먹는 문제가 먼저이니, 인권은 그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고 도망갔다. 지난 두 정권의 1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면서 북한정권을 비호하던 결과가 과연 식량문제를 해결하였나?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해결하였나?

그들은 국제기준에서 북한 인권을 다룰 일이 아니고, 북한의 특수사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하였다. 제2차 대전 후 유엔체제 하에서 인권은 급신장하였다. 남아연방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오늘의 시점에서도, 북한인권의 특수성을 운위하는 것은, 마치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밀로세비치의 인종청소를 그들의 특수 사정을 감안해서 이해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특수성에 비추어 눈감아주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북한주민의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개인의 인권이 소속 국가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독재자들의 구시대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민주주의자인가? 하물며 ‘진보주의자’라는 명칭은 가당치도 않다.

그들이 열 올려 부르짖던 민주주의 신념은 권력쟁취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인권에 대한 구시대적 억지논리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치명적인 약점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그들의 변명은 자신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웃음꺼리다. 어찌 국민과 전 세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의 국가인권위원장은 임기를 4개월 앞두고 사표를 제출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인권위의 인원과 예산을 줄이는데 대한 항의표시라고 하면서, “정권은 유한하고 인권은 영원하다”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실은 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데 대한 양심의 가책은 아니었을까.

선진적인 인권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한국에서, 10년 동안 대부분의 인권위원과 직원들이 친북적 이념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얀마에서 이라크 사태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표명하던 인권위가 북한 인권을 외면했던 모순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치명적인 과오다. 그러고도 임기라는 방패 뒤에 숨으려 한다면 비겁하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털고 자리를 떠나면, 오히려 인권위원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고, 대한민국의 인권체제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람시의 이론에 따른 좌파의 진지로 변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국민들은 동조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새 인권위원장은 인권위 정상화를 위해 큰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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