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후 평양 배치 안되면 이혼도 불사”

▲ 북한의 대학졸업증

남한은 요즘 대학졸업식 기간이다. 남과 북의 대학은 교과내용이나 교수방법에서 많은 부분이 다르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의 사상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공계 교과목은 내용이 대체로 비슷한 것같다. 북한에서도 졸업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는 졸업에 필수적인 과목이다.

남한은 자유의사에 따라 대학을 선택한다. 시험을 통해 입학하고 학비는 자비 부담한다. 북한은 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것까지 비슷하고, 학비는 나라에서 대준다. 반면 남한은 졸업 후 진로를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북한에서는 당에서 배치해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심리는 남북이 비슷한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게 학점을 받아 좋은 회사에 들어가 돈 많이 벌고, 값진 명예를 성취하려고 목표를 세운다. 북한 대학생들의 심리도 비슷하다. 단, 돈보다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졸업식 때는 학장과 대학 당비서 등이 주석단에 앉는다. 학장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크나큰 사랑과 배려로 오늘 여러분들이 졸업하게 되었다”며 “사회현장에 나가 충성을 다하라”고 축하연설을 한다. 졸업파티는 각 소대(북한의 대학은 군사체계로, 학급도 그렇게 부른다)별로 일인당 얼마씩 내고 먹자판을 벌인다.

북한에서는 졸업 후 배치받을 때 성적이 우수해야 좋은 데로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졸업시험을 치기 전에 배치되는 곳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북한에서 출세를 하려면 당, 군대, 대학은 필수 코스다. 졸업 후 배치를 잘 받기 위해서는 대학입학에 못지 않게 모든 ‘빽’ 을 다 동원해야 한다. 학생들은 3학년쯤 되면 졸업후 배치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밑에서 뇌물로 올려 밀고, 위에서 지시해 끌어당긴다’는 2중 작전을 펼친다.

이혼하면 했지 평양시는 못떠

말이 나온 김에 실제 있었던 북한의 어느 졸업생의 경우를 보자.
1990년 평양 김책공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전력공학부 전기자동화과를 졸업한 제대군인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성격이 차분하고 진취성이 강해 학급에서도 ‘엘리트’로 명망이 자자했다. 학점도 높아 졸업 후 전력공업위원회나 연구소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서른이 지났으니 재학기간에 장가는 갔고, 아내는 평양 제1백화점 판매원을 하고 있었다. 평양시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또 평양주민들을 먹여 살리지 못해, 인구를 해마다 축소해 주민들을 지방으로 내려 보낸다. 그도 집이 없어 처갓집에 얹혀살다가 눈치를 봐가며 기숙사에서 가끔씩 나와서 자기도 했다. 신혼살림이 재미없다고 짜증내는 아내를 달래며 실력으로 성공해서 꼭 평양에 배치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졸업시험을 잘 치렀고, 대학당국과 1차 담화를 끝내고, 전력공업위원회의 최종담화에서 평양에 근무하기로 하고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식 날, 배치받은 곳은 함경도 부전강발전소였다. 억장이 막혔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인적도 드문 심심산골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는 당국을 찾아가 “담화할 때는 평양으로 하고 배치는 산골로 하느냐”고 따지니, “당에서 가라면 가지, 동무는 당의 배려로 공부를 하고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계자는 “정 그렇다면 자격박탈을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훗날 알아보니 자기가 가게 되어있던 중앙기관에는 공부도 안하고 허구허날 연애나 하며 빈둥대던 순천시당 조직비서 아들이 배치받아 갔다.

이제 아내를 어떻게 달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여자들은 평양에 대한 집착이 강해 남편과 갈라서면 갈라섰지, 절대로 지방에는 시집을 안 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평양에 있으면 그래도 공급이 괜찮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판매원 자리를 따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갈라져 이혼하고 말았다.

평양은 주민들이 살고싶어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철저히 봉쇄구역으로 해놓고 검문소에서 지방사람들이 평양으로 올라오는 것조차 통제한다. 지방의 차들이 증명서가 없이는 평양시를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학졸업 기간이 되면 평양에 남는 사람과 평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로 한동안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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