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부 TV방송사들이 북한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아달라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의 요청을 수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본 방송사들의 ‘신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조총련은 일본 방송사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지명하는 인사들을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경우 향후 방북 취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도쿄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박두진 코리아국제연구소 소장은 30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조총련이 일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일본 방송사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일부 민영방송은 이미 조총련의 요구를 수용, 북한 문제에 대한 논조를 완전히 바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총련이 지목한 블랙리스트는 박 소장을 비롯해 이영화 간사이대학 교수, 고영기 데일리NK 도쿄지국장,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 대표 등이다.
박 소장, 이 교수, 고 국장 등 3인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1990년대 일본에서 북한인권개선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이시마루 대표는 1990년 중반부터 중국 두만강·압록강 지역을 직접 방문해 북한 내부 상황을 취재해온 독립 언론인이다.
이들 모두 김정은 3대 세습을 반대하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을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연구가 빈약한 일본 사회에서 북한 내부변화를 제대로 분석하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박 소장은 “일본 방송사들이 북한을 방문해 취재하려면 조총련과 조율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례”라면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세력이 축소된 조총련 지도부가 ‘일본 방송에 대한 통제’에 앞장섬으로써 김정은에게 충성을 표시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방송 언론의 공정성’ 차원에서 일본 의회에서도 거론됐다.
일본 유신회 미야케 히로시(三宅博) 의원은 지난달 9일 일본 의회에서 열린 ‘북한에 의한 납치 문제 등에 관한 특별위원회’ 자리에서 “아무래도 방송국들은 (조총련의) 압력에 굴복하여 4인을 TV에 내보내지 않고 있다”면서 “박두진 소장은 2013년에 모 방송에서 TV 출연·녹화·감수 등 83차례 취재를 받았으나, 2013년 후반부터 취재 협조가 크게 줄었고, 2014년부터는 출연정지 조치가 취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야케 의원은 이어 일본의 방송법을 상기하며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주무부처인 내각 총무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 역시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갑자기 도쿄의 방송사들로부터 프로그램 출연 제안이 뚝 끊겼다”면서 “이는 방송사들은 스스로 언론의 자격을 포기한 것으로 앞으로 국제사회는 일본 언론의 자유도, 독립성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도쿄 방송가의 한 소식통은 “도쿄의 방송사들은 사실상 4인을 출연시키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다만, 보도국이나 외신부 담당자들이 침묵 속에서 조총련의 압력을 수용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교양 프로그램 담당자들 중에는 이러한 요구에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조총련은 이미 2011년 말부터 도쿄의 각 방송사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조총련에서 국장 직함을 달고 있는 서 모 씨는 김정일 사망 직전부터 도쿄 방송사들의 외신부를 돌아다니며 “당신들이 자주 출연시키는 박두진, 이영화, 고영기, 이시마루 지로를 이제 그만 출연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이어 서 모 씨는 “이영화와 고영기는 ‘공화국의 수배 대상자’다. 그리고 박두진은 조총련에서 나간 사람이다. 이시마루 지로는 가짜 영상을 만들고, 그 자체도 공화국 법을 위반한 것인데, 출처도 모르고 확인도 안 되는 (내부)영상을 왜 사용하는가”라며 항의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한 “조총련은 2012년 초 도쿄의 5개 방송사에 이들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공문까지 발송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방송사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조총련의 요구를 무시하는 수준이었으나, 2012년 4월이 지나면서 분위가 달라졌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4.15)을 맞아 20여개의 외신을 평양에 불러들여 장거리 미사일 발사 현장과 김일성 생일 기념식 등을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이때 일부 일본 방송사들에게만 방송취재가 허락됐다.
이미 평양에 지국을 개설 한 교도통신과 국영방송인 NHK는 가장 먼저 방북취재가 허용됐다. 그러나 도쿄방송(TBS), TV아사히, 니혼TV 등의 민영방송사들은 조총련을 통해 비자를 신청하고, 베이징에서 방북여부 답신을 기다리게 했다.
북한은 또 ‘일본인 유골 문제’와 관련해서 2013년 6월 일본인 유가족 9명의 방북 과정에서는 무려 일본 기자 36명의 동행을 허락하며 일본 언론사 간 경쟁을 부추켰다.
2013년 북한의 최대행사로 꼽히는 ‘7.27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당시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도 일본의 방송사들에게 취재가 허용됐다. 당시 취재에 참여했던 일본 방송사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현대화된 평양의 모습을 집중보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식통은 “방송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경쟁사는 그 화면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 화면을 갖고 있지 못하면 이건 굉장히 큰 부담”이라며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장면이나 김일성 행사 장면 등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리 취재 욕구가 강하더라도, 특정 단체의 압력에 따라 방송 출연자를 선별하는 것은 일본 언론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우”라면서 “언론으로서는 자격 상실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도쿄 방송가에서는 4인의 방송출연 금지조치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방송가의 또 다른 소식통은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고, 이에 따라 조만간 일북관계가 상당한 진전을 보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면서 “결국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 북한관련 보도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조총련의 유혹과 압력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언론계는 이산가족상봉 행사나 개성공단 방문 취재 등에서 각 언론사 담당 기자들이 ‘공동기자단’을 꾸려 북한당국의 개별 언론사 통제에 대응한다. 그러나 일본은 ‘공동기자단’ 문화가 없다는 점에서 개별 방송사들 스스로 언론의 사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오사카의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이번 일이 평양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총련 사정에 밝은 오사카의 한 소식통은 “김정일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이후 일본에서 조총련의 기반은 사실상 거의 무너졌다”면서 “조총련 본부 경매 문제, 조총련계 학교에 대한 지원 문제 등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조총련 지도부가 단독으로 일본 방송사들에게 덤볐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양의 후광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조총련 지도부로서는 평양의 지시가 떨어지면 무조건 관철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어쨌든 조총련이 김정은의 홍위병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 4인’이 단순한 반북(反北)인사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모순을 정확히 지적해온 북한 전문가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이 높아진다.
박 소장은 과거 조총련의 핵심세력을 키워내는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치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경력이 있어 누구보다 북한과 조총련의 실체에 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본에서뿐 아니라 남한의 언론에서도 그의 분석을 빈번하게 소개하고 있다.
재일교포 3세인 이 교수는 1980년대 일본에서 남한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1991년 일본 교수로는 최초로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에서 유학했다. 평양 체류동안 북한의 독재 시스템을 몸소 체험한 후 일본에서 ‘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를 결성하여 북한인권 운동을 주도해왔다.
역시 재일교포인 고 국장은 이 교수와 함께 RENK를 창립하고 중국의 탈북자를 구출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북한당국으로부터 ‘공식 수배’를 받았다. 김정은의 최대 치부로 꼽히는 생모(生母) 고영희의 과거를 특종 발굴한 경력이 북한을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두혈통’을 내세우며 권좌에 오른 김정은의 생모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고경택의 딸로, 귀국선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북한은 2012년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영화까지 제작했다가 이를 급히 수거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 저널리스트가 촬영한 북한 내부 영상’으로 유명해진 독립 언론인이다. 한국·일본 방송을 통해 소개된 북한 내부 영상의 상당수는 그의 작품인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 서울 유학시절 남한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하며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 지금까지 북한 내부에서 북한인 저널리스 육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