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계 학교 ‘親김정일’로 망한다

▲ 5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50주년 기념행사 中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족학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열 학교가 128개이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계 학교가 4개다.

그런데, 민족학교의 압도적 수를 차지하는 조총련의 교육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조총련계 학교의 교육내용이 김정일 독재 정권의 이익을 대변할 뿐, 동포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에 저출산 현상까지 더해져, 최대 4만명이 넘었던 민족학교의 학생수는, 현재 1만 2000명 전후까지 줄었다. 특히 2002년 김정일의 ‘일본인 납치문제 사죄’ 이후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민족학교의 대표격인 재일 조선대학교의 학생수는 운영 한계점인 1천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각 지방에서는 문을 닫는 민족학교가 늘어나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다.

金부자를 숭배하는 공민교육

조총련은 민족학교들의 교육을 ‘민족교육’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북한당국이 해외 공민에 대해 실시하는 ‘공민교육’이다. 즉 북한당국의 교육방침에 근거해 ‘조선민족’이라고 하는 형식에 ‘북한의 사회주의’ 내용을 일본 상황에 맞게 수정해 실시하는 교육이다.

조총련은 이러한 교육 내용을 ‘북한공민교육’이라고 말하지 않고, ‘민족교육’으로 선전하고 있다. 다수의 재일동포가 북한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민족’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또한 남북통일에 있어서 북한의 주도권을 옹호하려는 의도와도 관계가 있다. 북한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민족통일전선 노선’이라고 자칭하며 표면적으로는 ‘민족교육’을 내세우는 것이다.

조총련의 ‘민족교육’ 선전 때문에 많은 동포들이 ‘북한공민교육’을 ‘범민족적 교육’이라고 오해했다. 일본에서는 우리민족의 언어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포들이 주체가 되는 자주적 교육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교과서를 비롯한 모든 교육방침을 북한당국이 결정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가 일본의 실정에 맞게 개편되었다고 하지만, 사상교육 과목인 <사회>나 <혁명역사>는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지나친 거짓말을 약간 수정했을 뿐이다.

민족학교 교실에서 김부자의 초상화를 내렸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것도 동포들의 반발 때문에, 조금 양보했을 뿐이다. 지금도 교실에 초상화 대신에 ‘유화(油畵)그림’을 장식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교과서 내용의 유연화는 초급, 중급 학교에 한정되어 있고 고급학교의 <사회>나 <혁명 역사> 교과서는 이전의 것과 거의 같다. 그들의 최고 학부인 조선대학교에서는 지금도 김부자 숭배가 과제물의 내용이다. 교수 같은 직위와 박사 등의 학위도 북한당국으로부터 수여되고 있다. 대학 당국도 자신들을 ‘해외국립대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0년 12월에 조선대학교 평의회를 지도했던 조총련 허종만 책임부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1994년 5월 6일에 ‘조선대학교에서는 학생을 정치사상적으로 제대로 준비시키는 것에 중심을 두고, <주체의 세계관> <수령관> <민족관>을 인생관으로 하는 혁명가, 확고한 청년 핵심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조선대학교는 본질에 있어 재일조선인 운동의 대를 잇는 주체의 청년핵심을 기르는 원천지이다.”

허종만 책임부의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충실한 인재를 만들어 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총련이 말하는 ‘민족교육’의 본질이다.

조총련 결성 이후 ‘민족교육’ 퇴색

재일동포 사회에서 자주적 ‘민족교육’을 실시했던 시기가 있었다. 해방 직후, 일본 전국에 설치된 국어강습소나 민족학교가 열렸다. 이때의 학교 수는 6백개가 넘었고, 학생수도 6만이 넘었다. 재일동포 스스로가 민족자주정신을 뿌리내리고, 보다 새로운 민주주의 민족국가 건설의 담당자를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자주적 ‘민족교육’이었다.

이러한 교육활동은 <재일본조선인연맹>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조직은 어떠한 공권력과도 결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일본 점령 통치가 시작되면서 1949년에 해산당했다. 그 후 이 조직이 조총련에 계승되면서, ‘민족교육’이 ‘공민교육’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1955년 5월에 결성된 조총련은 ‘재일 조선인을 공화국(북한)의 주위에 단결시킨다’는 강령을 첫 번째로 채택하고 있다. 조총련 산하의 재일동포들을 북한당국의 해외 공민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조총련은 일본에 있는 조선노동당 산하 대중단체이면서 북한당국의 행정 기관 성격을 갖고 있었다. 내부에 ‘학습조’를 만들면서 김부자가 주도하는 통일운동의 측면을 지원하는 ‘조선노동당 일본 지부’라는 본질적 성격을 완성했다.

북송사업 이후 우상숭배 강화돼

1959년 ‘북송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민교육’의 색채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국선의 왕래가 시작되고, 조총련에 대한 조선노동당의 지배가 강화되자 ‘공민교육’이 체계화 되었다. 1967년 조총련 ‘제8회 중앙대회’ 이후, 김부자를 숭배하는 내용의 커러큘럼이 자리를 잡았다.

김정일의 등장 이후, 민족적 소양을 쌓거나 타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몸에 익혀야 할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관에 근거하는 인간 교육이 소홀해졌다. 교과서는 김일성 일색이 되고, 역사적 위인이나 세계의 문학은 사라졌다.

몇 년 전, 일부의 조총련 상근자들과 교육관계 간부들이 유력 상공인과 함께 조총련계 민족학교의 교육내용을 일본의 실정에 맞추어 개혁하는 개선안을 조총련 중앙에 제출했다. 당시 조총련 중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총련 중앙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하더니, 개선안을 제안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쫓아내고 슬그머니 넘어갔다.

간부 자식들도 일본학교로 전학

1970년대에 이르러 재일동포들은 북송선보다 일본정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조총련은 동포의 생각과는 반대로 공화국 공민 교육을 강화시켜 갔다. 때문에 많은 재일 동포들이 자녀들을 일본 학교로 전학시켰다.

이 움직임은 조총련 간부 중에도 퍼졌다. 이것에 위기감을 느낀 조총련 중앙은 “간부의 자녀는 조선고교 졸업까지는 일본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고, 지침을 따르지 않는 간부에 대해서 좌천, 해고 등의 압력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들에게 진학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해 주지 않아 동포들의 반발을 샀다.

파국 임박, 암울한 미래

민족학교들의 교육내용 개선은 현 조총련 중앙 집행부의 퇴진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동포들과 학부모의 강한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현재 조총련 산하에 남아 있는 동포들과 학부모들의 대부분은 북한당국이나 조총련 기관들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혹은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인질처럼 붙잡혀 있는 상황이다.

조총련의 내부에서는 개혁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설사 북한당국의 간섭 없이 동포사회의 주체적인 운영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각 학교들의 심각한 재정상황에 대한 뚜렷한 타개책도 없다.

재일동포 사회는 향후 어떻게 민족교육을 되찾아 가야 할 것인가?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바라는 재일동포들의 고뇌만 깊어질 뿐이다.

박두진 / 본지고문


-일본 오사카 출생
-(前)在日 조선대학교 교수
-일본 통일일보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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