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방북기는 게으름과 무지로 쓰여졌다

▲ 2일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김정일과 악수하고 있는 조정래 씨

며칠 전 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방북한 모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설가 조정래 씨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상회담 특별수행단으로 방북한 조 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김정일의 만찬장 모습을 소개하면서 “목소리도 초대소 큰 홀이 꽝꽝 울릴 정도로 높고, 술도 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엄청난 주량을 과시했다”면서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건강 문제에 이목이 끌려 있을 때여서 술을 몇 잔 마셨는지도 궁금했고, 조 씨의 앞뒤 발언이 워낙 과장된 표현이 사용돼 발언의 진실성 여부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만찬에서 기자들은 행사 초반부에 밖으로 나와 진행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10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김정일이 와인을 많이 마셨느냐’는 물음에 “조금씩 마셨다. 여러 잔 받았는데 조금씩만 마셨다”고 말했다. 조 씨의 발언이 부풀려졌음을 통일부 장관이 확인해 줬다.

도올 김용옥 씨 방북기를 읽다 보니 조 씨가 서해갑문을 방문한 자리에서 방조제 건설 역사를 담은 비디오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마지막 제방이 연결되는 장면에서 인민들의 눈물과 함성이 터지는 순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참고로 서해갑문은 수 조원이 투입됐지만 국제 항만시설로도 부족하고 홍수조절 기능도 의심된다고 한다. 이번 평양 수해가 그것을 증명한다. 오히려 북한 경제몰락의 전조등 역할을 했다는 게 대다수 탈북자들의 평가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 때는 수 천명이 수장된 것으로 유명하다.

“김일성 동상 앞의 꽃은 인민의 순결한 마음”

김용옥 씨는 김일성 동상을 방문했을 당시 일화도 소개했다. 김 씨가 동상을 찍으려고 하니까 조 씨가 위를 찍지 말고 밑을 찍으라고 했단다. 그러고서는 “우리가 체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꽃송이에 담긴 인민의 순결한 마음 그 자체야 왜곡할 건덕지가 없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 씨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장편소설 아리랑을 썼다. 이 소설에는 땅 수탈에만 관심 있는 일본인들, 하와이에 역부로 팔려가고 지주의 수탈을 피해 만주로 도망치는 조선인들, 살해당하고 고문당하는 항일운동가들, 일본인에게 능욕 당하는 조선여성 등 억압당한 자들의 수난이 집중 조명된다.

김정일 체제에서 북한 주민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 그리고 수십만 명이 조국을 버리고 해외를 유랑하고, 수십만 명이 여전히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다. 일제만 민족을 억압한 것이 아니다. 김일성 동상 앞에 꽃을 놓는 주민들의 마음이 순결하다면 일제시대에 천왕 만세를 부르고 강제징용에 나섰던 조선 청년들의 마음도 순결했다는 말일까. 김일성이 훌륭한 지도자이고 인민의 존경을 받지만 체제는 잘못됐다는 그럴듯한 엉터리 논리라도 만드려는지 궁금하다.

김일성 동상 앞에 놓인 꽃은 인민의 지친 숨소리와 허기진 땀이다.

김일성 동상에 받칠 꽃은 무조건 생화여야 한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과 사망한 7월 8일이 되면 지방 주민들은 야산으로 꽃을 찾아 다닌다. 민둥산에 뙈기밭 작물까지 심어놔 꽃이 드물다. 꽃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손발이 지치고 살갗이 패여도 꽃을 구해야 한다.

평양은 온실에서 꽃을 재배한다. 각 인민반이나 기업소 당위원회에서 꽃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주민들은 비싼 돈을 주고 꽃을 사와야 한다.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으로 꽃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빈손은 모진 비판과 책벌을 의미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도 어쩔 수 없다. 간부들이 준비한 꽃은 항상 풍성하다. 동상 주위에서 좋은 꽃만 골라 올리거나 온실에서 관리한 꽃 중에 일등품만 수거해 가기 때문이다. 동상 앞에 꽃은 그렇게 순결하게 쌓여간다.

“아리랑은 최고의 관광상품 될 수 있다”

조 씨는 스스로 쓴 방북기에서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 공연에 대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역동적이고 예술적인 세계 유일의 집단 뮤지컬. 단 체제 선전이 끼어 있는 것이 옥에 티. 누구나 한 번쯤 보아도 좋을 장관이고, 북이 중국과 베트남처럼 개방하면 외화 획득을 쉽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씨가 아리랑 공연 자체를 대형 뮤지컬에 비유하고 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1년 가까이 학교까지 거르면서 중노동에 버금가는 훈련에 자식이 시달려야 한다면 어느 부모가 공연에 내보낼까? 그것도 공연 기획자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체조 선수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뻣뻣한 허리를 혹독한 훈련을 통해 선수 수준으로 만든 다음, 십만 명이 기계 톱니처럼 움직이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개혁개방 이후에도 가능한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상식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조 씨가 민족애가 강해서 북한을 따듯한 시선으로 본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보려는 기자를 좀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우리시대의 대작가로 추앙 받는 사람이 북한 당국이 평양에 밝혀준 화려한 불빛과 정성스런 만찬, 꽃술을 들고 ‘환영’을 연호하는 십만 군중에 넋이 팔려 북한의 현실과 주민들의 처지를 왜곡한다면 이는 용서 받지 못할 일이다.

필자가 소설가는 아니지만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이 필수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현장을 일일이 찾는 작가 특유의 성실함과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조 씨가 평양을 방문하기 전에 남한에 와있는 탈북자 몇 명만 만나고 갔어도, 이들의 수기를 몇 편만 읽고 갔어도 평양의 진면목을 꿰뚫어 보지 않았을 성 싶다.

때론 게으름과 무식도 죄가 된다. 배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잘 모르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면 이는 큰 죄가 된다. 작가 조정래 씨가 그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는 한국정책방송 KTV에 초청돼 2부작 특별대담 ‘조정래의 2007 통일 아리랑’에서 방북 내용을 들려준다고 한다. 끔찍하다. 코끼리를 연구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온 이야기를 국민이 들어야 한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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