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외교’속 김목사 죽어간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납북된 김동식 목사의 사망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김동식 목사는 98년에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 돕기 등 인도적 구호사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보육원 겸 선교센터인 ‘사랑의 집’을 운영하면서, 탈북 아동들인 이른바 ‘꽃제비’ 30여 명을 보살피고 있었다. 북한주민의 인권향상을 위해서도 음으로 양으로 헌신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3명과 조선족 6명에 의해 2000년 1월 16일 차량으로 납치돼 북한 당국에 넘겨졌다. 이후 지금까지 김동식 목사 납북은 아직까지 미해결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생사조차 불명이며, 일부에서는 이미 2001년 2월에 사망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목사 생사확인 요청도 안해

한 마디로 김동식 목사 납북사건을 보면, 3국의 정권적 범죄가 낳은 합작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하급의 국가기관)을 파견, 조선족과 합세하여 김동식 목사를 납치하도록 사주했다. 정권적 차원의 조직적인 테러를 범한 것이다. 이는 국제협약이 명백히 금지하는 비인간적, 반인도적 테러로서 북한이 테러국가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둘째, 중국은 인도적인 구호활동을 하는 김동식 목사(무고한 민간인)이 제3국에 의해 불법납치되는 것을 사전에 상당한 주의 의무를 다해 방지하지 못했다. 사후에도 중국은 북한과 외교적인 협상을 벌여 김 목사의 원상회복, 즉 원 체류지인 중국으로 송환되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국제법 위반행위를 구성한다.

이 지구상 어디에도 불쌍한 고아를 돕는 이유로 납치되고 부당한 고통을 받는 곳은 아마 중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북한과 공조하여 제2, 제3의 김 목사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 조장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 정부는 난민을 돕는 자를 ‘또 다른 난민’으로 만들고, 이들을 비인도적인 난민출처국에 의해 납치당하도록 방치하는 ‘비인도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한국은 지난 5년간 김동식 목사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해 납치문제를 ‘제대로’ 또한 ‘당당하게’ 거론하지 않았을 뿐더러, 생사확인 요청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물론 한 두차례 ‘조용하게’ 송환 협조나 생사확인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극히 형식적이고 일과성 행위에 불과했다. 정부는 김동식 목사의 생사를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자국민 못살리는 공무원, 월급 줘야 하나?

우리 정부에게서는 미국처럼 끝까지 찾아내고 기필코 송환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을 자극해 남북화해무드가 깨질까봐, 중국을 건드려 6자회담 분위기를 해칠까 전전긍긍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입장에서 그동안 정부가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일각의 비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 그러기에 외교부 관리의 입에서 해외 여행자들은 스스로 자기책임 하에 여행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손이 미칠 여유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다. 지금 정부는 ‘직무유기’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제 할일 하지 않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다.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정부에서 무사안일하게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우리가 꼬박꼬박 세금을 내어 봉급을 달달이 주어야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야당 의원이 중국 북경에서 탈북자 및 납북자문제에 대해 이를 국제사회에 고발(또한 중국 및 북한의 대응을 비난하는)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려 했다가 무산되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이 마이크를 끄고 기자들을 폭행하면서 밖으로 끌어낸 야만적 행위는 국제인권규범을 위반하는 ‘범죄적’인 폭거에 해당되는 것이다. 중국은 납북자문제로 인한 2차적 범죄를 백주에 저지른 셈이다. 인류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문제는 마땅히 금년 3월에서 4월 사이에 제네바에서 개최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에 대해 항의 한번 변변하게 하지 않고 있다. 서둘러 진화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른바 ‘조용한 외교’에 또 의지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인권국가가 될 수는 없다.

외교는 원래 조용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제적인 현안문제가 언제나 조용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이를 공론화하고 국제적으로 힘을 합쳐 압력을 가해야 해결될 때도 있다. 이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조용한 외교를 부르짖는 우리 외교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조용한 외교’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무의지와 무소신, 그리고 무능력을 가리우는 방패막이 될 수도 있다.

납북자문제에 관련된 중국과 북한은 전 국제사회가 힘을 합해도 단시일 내에 해결될까 말까 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국가들이다. 그러므로 조용한 외교는 효과적인 대응방식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김동식 목사와 같은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에 김동식 목사의 납북사건을 남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고, ‘나의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납북자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 기왕의 안이한 해결방식을 버려야 한다. 좀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납북자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김동식 목사와 같은 분이 나오지 않도록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을 설득, 생사확인이라도 실시해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우물쭈물 대고 있을 경우, 시민단체와 국제적인 양심세력이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정부는 더 이상 정부라고 국민들에게 주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김동식 목사 납북 방치는 더 이상 되풀이 돼선 안될 중대한 범죄행위다

제성호 / 객원 칼럼니스트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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