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생위원회, 北 대학생들 아니다

▲ 대남부서의 지시를 받는 조선학생위원회

1박 2일 일정으로 금강산 남측 대학생 4백여 명, 북측 대학생 1백여 명이 상봉모임을 가졌다.

이번 행사의 북측 주최측은 ‘조선학생위원회’다. 북측 대표단은 ‘조선학생위원회’ 이름으로 ‘남북 대학생 민족자주 반전평화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조선학생위원회는 노동당의 지시를 받아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기 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순수한 남한 대학생들을 불러들여 정치적 목적으로 유괴시키는 것은 청년학생 운동에 별로 환영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조선학생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 한마디로 노동당의 ‘나팔수’다. 순수 대학생 조직이 아닌 것이다. ‘조선학생위원회’는 89년 임수경 씨가 북한에 왔을 때도 동행했던 북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구 사로청) 산하 학생조직이다.

조선학생위원회는 대남부서 단체

‘조선학생위원회’는 남쪽의 전대협(이후 한총련)과 대등한 자격의 ‘외교채널’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은 ‘김일성청년동맹’에 걸어놓고 있지만 실제 활동은 조선노동당 대남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지시를 받는다. 소속된 사람들은 학생 신분도 아니다.

중앙당 대남사업부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과 요직을 맡고 있으며, 그들은 어느 대학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중앙당 대남사업부의 직접 지시를 받는다.

기자가 북한에 있을 때 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마친 직후인 7월 중순경, ‘조선학생위원회’가 각 대학 사로청 위원장에게 ‘임수경 대표의 13차 축전 참가는 조국통일에 빛나는 장을 아로새긴 민족대축전’이라는 강연제강(교양자료)을 내려보낸 바 있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학생위원회는 89년 13차 축전에 남측 대표를 참가시키기 위해 끈질긴 작전을 펼쳤다. 조선학생위원회 김창룡 위원장과 남한의 전대협 임종석 의장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가지면서 참가를 추진해 오다가 임수경 학생을 독일을 경유해 입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때 김창룡과 임종석이 전화통화를 마치고 김창룡이 “수화기를 먼저 놓으십시오”라고 하자, 임종석이 “동지들이 먼저 놓으십시오”라고 사양했다는 이야기도 강연제강에 들어 있었다.

임수경 동행자들 대부분 대남요원들

조선학생위원회도 임수경의 입북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펼쳤다.

당시 임수경은 북한 대학생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북한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본 남쪽 사람이자, 대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기자도 대학생이어서 임수경 학생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 전부터 “남쪽 사람들은 자유주의 사상(황색바람)에 물들어 얼굴색도 노랗다”고 들어왔는데, 막상 임수경을 보니 얼굴이 희고 예뻤다.

당시 임수경 주위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포진됐다. 철저한 보안을 위해 요원들이 대거 투입됐고, 엘리트들이 동행했다. 보디가드로 참가했던 사람들은 대남연락소 요원들이었고, 임수경과의 대화를 위해 동원되었던 학생들도 이목구비가 출중한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니까 임수경의 대화 상대는 동원된 대학생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대학생 신분을 가장한 요원들이었다. 김일성대 학생, 김책공대 학생 신분으로 임수경과 동행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 선전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도 있었고, ‘통일열망’을 부각시키기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들도 있었다.

사이비 민족공조론에 이용만 당한 것

13차 축전이 끝나고 임수경 학생은 김일성, 김정일 접견을 비롯하여 백두산, 만경대, 혁명열사릉 등지를 참관했다.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도 모두 요원들이었다. 그런데 이 요원들이 한 말은 모두 사전에 각본에 들어있는 말뿐이어서 자연스런 대화가 되지 않았다. 임수경도 “학생들이 너무 딱딱해 말할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임수경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북한에서 쓸 만한 사람은 김일신밖에 없다”는 말한 적이 있는데, 김일신은 당시 신의주 백사유치원에 다니던 9살짜리 시인이었다. 나이가 어리니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말했던 것이 임수경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임수경이 이러한 발언을 하게 되자, 중앙당에서 “대학생들이 원문(미리 짜여진 각본)없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능력을 키워라”는 지시가 내려질 정도였다. 당시 임수경의 자유로운 언행은 북한 학생들에게 자유사회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임수경을 세뇌하기 위해 조선학생위원회는 김 부자와의 접견을 주선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오히려 북한 대학생들에게 자유에 대한 동경,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강화시켰을 뿐, 요원들의 목적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 금강산에 간 한총련 학생들 중에 임수경만큼 인기를 끌 만한 학생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북한 핵문제로 김정일 정권이 여러모로 불리해진 상황에서 북한의 사이비 ‘민족공조론’에 이용만 당하고 돌아온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