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군, 탈영병 엄청 늘었다

▲ 북한 국경수비대의 모습 <사진:RENK>

최근 북한군은 군인들의 탈영, 귀대 거부 등 군기문란 사건이 급격히 늘고 있다.

조-중 국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은 “배고픔과 열악한 생활환경을 못 이겨 탈영하는 군인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탈영군인들에 대한 ‘특별검열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탈영병 찾으러 갔다가 본인도 탈영

중국 왕칭(旺淸)에서 만난 탈북자 서명식(가명. 29세) 씨는 1년 7개월 남은 만기제대를 포기하고 1월 말 탈영, 국경을 넘었다. 탈북 직전 그는 함경북도 00시에 위치한 모 구분대(남한의 대대급)의 상사로서 부소대장이었다.

“보급이 너무 어렵다. 영양상태가 심각한 군인들을 집으로 보내 건강을 회복하게 한 후 귀대시켜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집으로 가는 군인들이 늘었다. 작년 가을에는 우리 소대에서만 ‘영양결핍’으로 4명이 귀가됐다. 문제는 집에 갔다가 귀대하지 않는 군인들이 많이 늘었다. 탈영인 것이다.”

지난 1월 초 서씨에게 부하들을 데리고 오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서씨는 김모 상등병의 집주소를 들고 함경북도 00군에 도착했다. 평소 친형처럼 자신을 따르던 김 상등병은 부대 복귀를 거부했다. 도리어 서씨에게 함께 중국에 나가 장사나 하자고 설득했다. 김 상등병의 어머니까지 합세해서 서씨를 구슬렸다는 것.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듣고 보니, 내가 배곯고 고생하면서 끝까지 군대 마쳐봐야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상등병 아버지가 중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크게 장사를 하는데 나보고 중국에 가서 일을 하면 뒤를 봐주겠다고 했다. 이틀을 그 집에서 같이 있다가 나도 군복 벗고 국경을 넘었다”

서씨는 ‘북한은 군대부터 먼저 보장해주지 않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군대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물론 먹을 것, 입을 것을 군대가 먼저 보장받는다. 하지만 인민군대라고 다 같지 않다. 휴전선 경비사단이나 특수부대, 보위부, 공군, 해군에 먼저 보급이 간다. 우리 같은 일반 군부대는 제대로 보급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도로국 애들보다는 낫다. 도로국이나 공병국 애들은 겨울에 군복도 제대로 못챙겨 입어서 멀리서 보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구별이 안 된다”

현재 북한의 군인들은 두 부류가 있다. 군복 입고 총을 든 군인들과 군복을 입고 삽, 곡괭이를 든 군인들이다. 지금 북한은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있는 군인들까지 먹여 살릴 능력이 없다고 서씨는 말한다.

소대원 34명 중 32명이 도망

2003년 11월에 탈북, 현재 중국 옌지(延吉) 근방 농촌에 살고 있는 전충호(가명. 25세. 양강도 운흥) 씨는 00여단 공병국에서 군 복무 도중 2003년 4월에 탈영했다. 전씨는 소대원들 6명과 함께 탈영했다.

“공병국이라고 해야 군복 입은 건설노동자가 전부다. 신병교육 때 총 몇 발 쏘면 군사훈련은 끝이다. 제대할 때까지 온갖 건설작업장에 다 불려다니며 삽과 곡괭이질만 한다. 보급도 맨뒤에 주니까, 항상 배고프다. 재작년 봄에 우리 소대원이 34명이었는데 6명은 영양실조 때문에 집에 가고, 나머지도 도망갔다. 그때 우리 중대에서는 ‘아침에 눈뜨면 한 놈씩 없어졌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나는 우리 소대원들 6명과 같이 나왔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소대원 34명 중에 2명만 남아서 소대 자체가 없어졌다고 했다.”

정확한 통계는 불가능하지만 후방 부대에 탈영자가 많고, 일반 군대나 예비임무가 주된 부대일수록 탈영자가 많다. 그렇다 해도 한 개 소대가 없어질 정도로 대량탈영이 어떻게 가능한가.

“인민군대에도 경무부(남한의 헌병대)가 있다. 경무관들은 역전이나 시내 중심지에서만 검열한다. 불시 검열도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군기강 상태를 검열한다. 부대에서 누가 탈영하면, 해당 소대나 중대의 간부들이 잡으러 나간다. 내가 있던 소대는 소대장, 부소대장이 도망가니까 소대원들이 탈영해도 잡으러 나설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총도 없으니까 꼭 잡아야 될 이유도 없다.”

만기제대 해도 입당 안 되고, 입당해도 볼일 없어

중국 룽징(龍井)에서 만난 북한 주민 심기서(가명. 49세. 함북 길주) 씨는 군대 나간 아들이 요양하러 오자 아예 중국으로 빼돌려 하얼빈의 이모집에 맡겨 놨다.

“아들(당시 18세)이 재작년 겨울 군대에 나갔는데 넉 달 만에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보급이 안 돼 집에서 요양하고 다시 오라고 부대에서 보냈다는 것이다. 이대로 군대에 다시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열흘 뒤에 여기(중국) 이모네 집으로 보냈다. 한 보름인가 있으니까 부대에서 상사가 아들을 찾으러 왔는데, (아들이)아직 회복이 안 됐다고 하고 2천 원 쥐어주고 돌려 보냈다.”

중국을 왕래하면서 장사하는 심씨는 현재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는 듯했다. 북한의 중산층이라면 매끼 잡곡을 섞은 중국산 쌀밥 정도는 먹을 수 있다. 심씨는 12년간 군복무를 마쳤고 30살에 입당했다. 심씨는 아들의 군대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요즘은 군대에 갔다와도 별로 쳐주지 않는다. 예전처럼 입당에 유리한 것도 없고, 취직도 어렵다. 그냥 젊은 시절에 노력 동원 다녀온 것밖에 안 된다. 일찍부터 장사해서 돈버는 것이 제일이다. 돈만 쓰면 생활제대(군생활 부적응 제대)도 가능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영악해져 군대에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부모가 못 도와주면 그냥 이쪽(중국)으로 내빼는 애들도 많다.”

먹고 사는 방법은 오직 장사뿐

지금 북한에서 먹고사는 유일한 길이 ‘장사’다. 식량문제만 해도 그렇다. 과거 인민군대는 인민들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것을 받아먹기만 하면 됐다.

지금은 평양 이북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장사에 나서고 있다. 협동농장이나 기업소들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식량을 비롯한 모든 생필품은 ‘장마당’으로 몰린다. 생필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다. 군인들은 개별적으로 장사를 하지 못하니 대책이 없는 것이다.

탈북자 서씨는 “2002년 7.1 조치 직후까지는 주변 농장에서 군량미를 걷었는데, 요즘은 국가가 신경을 안 써준다. 보급은 안 나오지, 부대가 갖고 있는 땅은 관리가 안 된다. 군관(장교)들은 이리저리 챙겨먹는데 병사들은 자기 집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군대, 대대적인 검열 예고

투먼(圖們)의 허운택(가명. 37세. 함북 회령) 씨는 “국경수비대를 시작으로 조만간 탈영자들에 대한 검열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내내 회령 쪽과 무산 쪽에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단) 검열이 있었는데, 군대는 연선문제(민간인들이 국경 넘는 것을 도와주는 것)를 최우선 검열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검열을 하다보니까, 부대마다 군인들 수가 모자랐다. 군인들 중 연선문제, 불법거래(밀수)를 눈감아 주는 행위가 없는지 일일이 조사를 하는데, 이름만 있고 부대에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만간 검열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지난 여름부터 함경북도 국경지역의 ‘검열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2월에 끝난 비사회주의 검열 때문에 3명의 민간인이 총살당했고, 수십 세대가 강제추방 당했다. 3월은 청진을 비롯한 해안지역에 대한 검열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최근 김정일은 핵보유를 발표하는 등 강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선군정치’를 떠받치고 있는 북한의 군대는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밑으로부터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군대가 약화되니까 김정일은 더욱 핵무기 전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 곯고 괄시 받는 인민군 병사들이야말로 ‘선군정치’라는 허장성세(虛張聲勢)를 가장 먼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균열은 가장 깊숙한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김정일은 과연 알고 있을까?

관련기사

[탈북군인] “식량난 때 우리 소대 절반 탈영했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
박인호 기자 park@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