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거지들’ 막말 들어도 北가족 생각에…”

중국 지린성 옌지(延吉)에서 만난 김미옥(가명, 53)씨는 친척방문 비자를 발급 받아 1년 전 중국으로 오게 됐다. 지금은 조선족 치매 노인의 간병을 맡고 있다. 간병을 하는 노인이 잠든 사이에 잠시 취재팀을 만나기 위해 나왔다는 그는 남한 사람을 만나게 돼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북한에 두고 온 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라면서 한참을 지긋이 바라보다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여기에서 이렇게까지 살 수밖에 없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존심도 내려놓고, 납작 엎드려서 살 수밖에 없다. 돈만이라도 벌어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사는거다.”

멀쩡한 몸으로 군에 입대했던 아들이 발목이 부러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 온 순간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조선노동당 당원인 그는 한때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사로 버는 돈으로는 군대에서 장애를 얻은 아들을 비롯해 가족들을 부양할 수가 없었다. “젊어서 그렇게 됐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수술할 때도 마취제가 없어 소금을 뿌려 치료했다. 3000위안을 주고 겨우 제대는 시켰는데 그동안 얼마나 못 먹었던 지 온 몸이 땡땡 부어 있었다”며 “내가 아는 사람은 군대에 보낸 아들을 배낭에 넣어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애가 너무 야위어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에 가면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라는 말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다.

북한의 해외 인력 파견은 당국의 기관 및 기업소에 의해서 엄격히 제한·통제되며 지위나 성분, 뇌물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해외 파견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일반 주민들은 돈벌이를 위해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중국에서 경제활동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바로 김 씨와 같이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단기간 비자를 발급받은 사사(私事)방문자들이다. 이들은 체류 기한이 지난 이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불법적인 신분이다 보니 공식 파견 노동자들보다 노동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법적으로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받는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불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보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다. 보모나 간병, 청소, 식당 허드렛일 등이 전부다. 보모나 간병인의 경우 일의 특성상 하루 24시간을 일해야 한다. 김 씨는 “하루 종일 치매 할아버지 병간호를 해야 하니까 개인적인 생활을 전혀 하지 못한다. 식사 준비부터 대소변 처리, 청소, 말동무는 물론 새벽에도 병수발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며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을 주는 곳에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가. 조선에서는 돈을 주는 곳이 없다. 여기는 길 청소만 해도 돈을 준다. 노력만 해도 돈을 주니까 그게 정말 좋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중국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이영심(가명. 55) 씨는 몸이 아픈 남편을 돌보면서 장사를 하다 큰 빚까지 지게 됐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동네 남성을 따라 나섰다가 그 길로 한족 남성에게 팔렸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기는 했지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금은 조선족 할머니를 돌봐 드리고 있는데 눈치를 봐야 하는게 제일 힘들다. 할머니는 편히 지내라고 하지만 그렇게 지내지는 못 한다”며 “식사를 함께 할 때도 있지만 혹시나 얘기가 나올까봐 할머니가 먹은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 역시 “이 곳에서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다. 조선에서는 타락(좌절)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일 한 만큼 단 돈 50원이라도 벌 수 있지 않나. 그게 좋다”며 일 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 대해 만족해 했다.

그는 이어 “주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더라. 좋은 주인집에서 일하면 아플 때 약도 챙겨주고는 한다. 그런데 내 친구 중에는 기침을 자꾸 한다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도 있다. 우리는 아플 자유도 없다”고 했다. 김 씨도 “‘조선의 거지들’이라고 막말하는 집도 있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날에는 밤에 소리 내서 기차게(숨이 넘어가게) 울었다”며 “상처가 되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中방문 비자 받으려면 무조건 뇌물…매달 이자 갚기도 버거워

김 씨의 경우 북한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숨기고 있다. 그는 “주인집에서 무시할까봐 중국 사람이라고 말하고 일한다”며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임금도 떨어진다. 나라가 못 사니까 어디서 왔다고도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도 업신 여기는 것 같고, 매일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마음 한 구석이 항상 불편하다”고 했다. 중국 조선족이라고 속여서 그가 받는 월급은 2000~2500위안 정도다. 그는 “여기에도 정해진 것이 있다. 할아버지 대소변 받는 사람은 얼마, 아기들 돌보는 사람은 얼마, 이런 식으로 정해진 게 있다. 그래도 애기들 돌보는 것보다는 이게 편하다. 애기들은 잘 못하면 부모가 난리 난다. 그래서 애기 보모는 월급이 많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씨는 집 주인도 그가 탈북자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어를) 전혀 못 했지만 그래도 말은 알아야겠다 싶어 책을 사서 혼자 공부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한족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걸 기억해 놓고 집에 와서 책을 펴고 다시 외우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나는 1500위안 정도 받는데 중국 사람들보다는 적게 받는 것이다. (탈북자라는) 치부가 있으니까 그거라도 만족한다. 그렇지만 제 때 받는 것도 아니다. 밀릴 때도 있지만 재촉을 하지는 못한다”며 “돈을 받으면 어디에 숨겨놔야 할 지 걱정을 많이 한다. 베개 속에 넣기도 하고 어떤 곳에 숨겨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비자 발급을 위해 쓴 뇌물과 이자,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생활비를 제외하면 실제로 이들이 쓸 수 있는 생활비는 100위안도 안 된다. “잠자리와 식사 모두 주인집에서 함께 해결하니까 필요한 돈이 많지는 않다. 화장품이나 기본적인 생필품은 주인댁이 챙겨주기도 하고 10원, 20원짜리 싸구려 물품을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한다”며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친척방문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수다. 김 씨는 “비자를 받기 위해서 15,000위안(한화 300~400만원)을 고이고 왔다. 그 돈은 모두 빌릴 수밖에 없었다. 비자를 받기까지 (나는) 1년 8개월 정도 걸렸는데, 어떤 사람은 5년이 지났는데도 비자를 못 받아서 오지를 못했다. 뇌물을 줬다해도 뇌물 값이 적으면 많이 낸 사람한테 밀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북한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다. 북한에서는 사금융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상 고리대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 씨의 경우 한 달에 이자를 1000위안 씩 보내줘야 하는데 한 달 이자를 갚지 못하면 다음 달에 이자로 1000위안이 또 붙는다. 빚은 커녕 이자를 갚기도 버거운 상황인 것이다. 그는 “빨리 빚을 갚아야 하니까 오직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정신이 다 거기로 가 있다. 아픈 것도 모른 채 돈만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뇌물을 고이려면 이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자를 감당 안 하면서 중국에 오는 건 불가능하다. 천천히 갚으려고 하면 빌린 원금이 불어나고 또 불어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중국 체류 북한 노동자들을 돕는 조선족 사업가도 “중국에 나오는 것은 힘이 있고 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뇌물이면 다 되는 것이었다”며 “(중국으로 나오려면) 뇌물을 많이 줘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뇌물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1만위안씩 낸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돈이 어디있나. 큰 돈을 빌리기 때문에 이자를 감당하는 것이 힘들다.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노임을 많이 받는 힘든 일을 찾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언제 북송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 씨는 몇 달 전 길을 걷다 차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공안국과 교통대에서 와서 사고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붙잡힐 생각에 두려워서 골목으로 도망쳤다. 붙잡히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다”며 체포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그는 만약 공안에 단속될 경우 “(북송 당해서) 이 세상을 못 본게 된다”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내가 살아야 새끼도 내 신세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해 ‘엄마랑 남한에 갈래’ 물어보니 붙잡힐까봐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하더라. 중국에 있어보니 개방이라는 것이 이렇고 백성이 잘 살아야 하는데 영도(김씨 일가)들은 제 나라를 딱 쥐고 영도 노릇해서 먹고 사는데 우리 백성들은 통일이 되어서야 다 이롭게 되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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