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어떻게 평양으로 가져갔나

서울대 규장각은 22일 ’조선왕조실록 보존을 위한 조사 연구’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남한에서 국보로 지정(제151호.1973년)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년)된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22일 북한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리조실록(조선왕조실록)은 민족의 우수한 문화재부”라며 6.25전쟁 당시 실록이 어떻게 서울에서 평양으로 옮겨졌는지를 소개했다.

사이트에 따르면 북한은 전쟁이 발발한 지 열흘도 채 안 된 1950년 7월초 “서울의 한 도서관 먼지 속에 나뒹굴던 1천800여권의 리조실록”을 평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김일성 주석은 교육부문 일꾼들을 최고사령부로 호출,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왕조실록을) 꼭 구출해 와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것.

이에 따라 최고사령부는 군사 작전도에 ’리조실록 구출 노정’을 그려넣고 수송을 담당할 군용차량을 배치했다. 각 부대와 관련 기관에는 실록 운반을 위한 ’최고사령관 명령’도 하달됐다.

사이트는 이어 “전쟁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 작전”으로 실록이 최고사령부에 안전하게 보관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원래 묘향산 사고와 전라도 적상산 사고를 거쳐 일제시대 서울 장서각에 옮겨진 것이다.

적상산 사고본이 묘향산에서 적상산으로 이관된 때가 1633년이니 417년만에 다시 평양으로 돌아간 셈이다. 서울대 규장각과 국가기록원에 있는 실록은 강화도 정족산본과 경북 봉화의 태백산본이다.

북한은 전쟁 후 실록의 국역과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는 1975부터 국역작업에 돌입해 16년만인 1991년 번역본(400권)을 내놨다. 이는 남한의 한글본(413권)보다 3년 앞선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북한은 “그 양의 방대성과 사료적 가치로 인해 둘도 없이 귀중한 문화재, 세계 문헌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국보적 문화재”(조선대백과사전)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제작업체는 최근 조선왕조실록을 연대별ㆍ단어별로 검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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