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1948. 9. 9)

북한이 공식적인 국가 수립을 내외에 선언한 날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북한이 정식국호를 내외에 선언하게 된 것은 3년만의 일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날을 9.9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해방이 되자마자 군정하에서 ‘5도행정국’ 그리고 ‘북조선인민위원회’를 통해 사실상 통치행위를 계속해 왔고,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까지 창군해왔기 때문에 정권수립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소련 군정에서 김정일을 북한의 지도자로 지목하여 지배구조를 구성하여 왔기 때문에 공화국 수립은 대외적인 국가수립과 공식적인 김일성 내각을 출범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기 위해서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른 후 3일 후인 8월 28일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북한 출신 212명, 남한 출신 360명, 모두 572명의 대의원을 발표했다. 김일성 내각을 발족시키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1차 회의는 9월 2일 시작되어서 9월 10일 공화국 수립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회의가 길어지게 된 것은 각 정파와 계파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이것이 회의에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소련군정이 김일성을 북한의 수상으로 지명하였기 때문에 최고인민회의와 당, 내각의 주요요직을 다투는 자리가 된 것이다. 결국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김일성에 일임하기로 한 결과 9월 9일 일부 정파를 제외한 내각 각료를 발표하고 인민공화국 선포식을 가졌다.

인민공화국 선포식에서 김일성은 인민정권의 성격을 “남북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수립된 통일적 조선중앙정부”라고 규정짓고 4개의 과업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미소(美蘇)양군철수, 일제통치 청산, 일본 법령 무효, 자주적 민족경제건설, 교육·문화·보건 사업의 발전 등이었다. (김일성 저작집 4권 중)

The DailyNK 자료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