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당은 이미 세 번 죽었다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이다.

김일성은 소련극동군 88특별교도여단에서 대위로 근무하다 1945년 9월 평양으로 돌아왔다. 스탈린은 88여단 소속 항일 빨치산들이 북한해방에 한 명도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군정을 실시하면서 조선노동당을 세운다. 소련은 당 사업을 비롯하여 주요 국가기관에 고문들을 배치하고 스탈린주의 노선에 따라 북한을 재편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스탈린이 세운 것이다. 스탈린은 이후에도 당 사업 경험이 있는 재소(在蘇) 고려인 허가이를 보내 조선노동당 사업을 주관하도록 했다.

45년 10월 24일 ‘김일성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한 김일성은 47년 인민위원회 위원장, 48년 9월 내각 수상이 되었다. 김일성의 뒤를 봐준 사람은 스탈린이었다.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는 흥미있는 일도 있었다. 김일성의 라이벌은 남로당 박헌영이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 앞에서 시험을 본 적이 있다. 누가 공산주의 지도자로 더 적합한가를 놓고 시험을 본 것인데, 사실은 누가 더 스탈린에게 충직한가를 따져본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무슨 문제를 ‘출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이 끝난 후 스탈린은 박헌영의 답안지까지 김일성에게 주면서 “알아서 처리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 되면서 2차 사망선고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키면서 결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전쟁중 박헌영을 ‘미제 간첩’으로 몰아 남로당계를 숙청했고, 허가이 등 소련파를 몰아내고 당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중소간 이념분쟁을 교묘히 이용하여 소련파, 중국파를 모두 몰아내고 58년 빨치산파를 주축으로 유일독재체제를 세웠다.

이후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독재의 기반으로 삼고 94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이라는 작은 땅에서 ‘신’(神)으로 군림했다.

다른 공산권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당-국가 체제로 출범했다. 당이 국가를 지도하면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당은 곧 ‘수령의 영도’로 변질됐다.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은 53년 스탈린 사망 후, 중국은 개혁개방과 동시에 수령론과 개인숭배를 용도폐기했다.

하지만 74년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김일성은 더욱더 ‘신’이 되어갔다.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면서 김일성을 살아있는 신으로 만들어준 대신 아버지로부터 절대권력을 물려받았다. 58년 김일성이 유일독재체제를 세움으로써 조선노동당이 1차 사망선고를 받았다면, 74년 김정일이 유일사상체계와 10대 원칙을 정식화 하면서 두 번째 사망한 것이다.

시체가 된 조선노동당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실시했고 조선노동당은 완전히 김정일의 사(私)조직으로 전락했다. 조선노동당은 세 번째 죽음을 맞은 것이다. 94년 이전까지 그나마 김일성사상(주체사상)이 당의 지도사상이었다면, 지금 북한은 이미 주체사상도 사망했고, 선군사상, ‘총대사상’이 대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남한의 지도사상이라면, 북한은 ‘장군님의 총대사상’밖에 남은 것이 없다. 조선노동당은 이미 시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괴한 일이 21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록 취소되긴 했지만 조선노동당 60돌을 맞아 남한의 민간대표단이 방북을 추진했다. 백보를 양보해도 이미 시체가 된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식에 참석해보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김정일은 10년간 선군노선을 밀고나가면서 대외적으로는 핵과 미사일, 내부적으로는 공포, 감시로 체제를 유지해왔다. 식량과 에너지는 한국과 중국,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버티고 투자가 필요 없는 관광사업과 무기밀매, 마약, 위조달러 등 각종 국제비리로 달러 고갈을 벌충해왔다.

DJ의 햇볕정책이 김정일의 ‘수호천사’로 등장한 이후 김정일은 햇볕정책을 달러와 식량, 비료 등이 들어오는 창구로 활용했다. 이 정책은 노무현 정부 들어 ‘민족공조’ 노선으로 더욱 격상됐다.

김정일, 독재통치의 한 축 잃어

10년 전의 김정일 정권과 지금을 한번 비교해보라. 탈북자는 줄어들었고, 남한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과거와 같은 식량난은 사라졌으며, 북한을 둘러싼 대외관계는 남한을 비롯하여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김정일은 악몽 같던 10년 전을 떠올리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조선노동당이 주민들로부터 왕따가 되면 될 수록, 군으로 통치중심이 옮겨가면 갈수록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조선노동당은 북한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지 오래다. 지금 당을 믿는 북한주민은 거의 없다. ‘영광스런’ 당원증은 이제 귀찮은 종이조각으로 변질돼 버렸다. 김정일은 독재통치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의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중국이 인권문제를 ‘방어’해내는 힘은 중국 공산당의 힘이

지, 인민해방군의 힘이 아니다. 군이 인권의 힘을 방어해낼 수는 없다. 이미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은 조선노동당이 인권의 힘을 물리칠 방법은 없다. 조선인민군이 인권의 힘을 물리칠 수는 더욱 없다. 김정일은 내부에서부터 점차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은 김정일 정권의 현주소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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