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발발 8년 역사의 빛과 그림자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에 앞서 한국 선수들이 제2연평해전으로 사망한 전사자들을 추도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 폐막 하루 전. 이날은 대한민국과 터키와의 3-4위전이 있던 날이다. 약 700만 명의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거리로 나왔고, 붉은 물결을 이루며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모든 국민들의 시선은 경기가 치러지는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특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경기 시작 전 대한민국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어쩌면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경기장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7만 명 중, 이 묵념이 불과 10시간 전 벌어진 북한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6명을 추모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서해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북한군의 기습포격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25분간의 전투 끝에 북한은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퇴각했다.


우리 해군은 6명이 전사(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하고 18명이 부상했다. 또한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했다.


작지 않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열기와 햇볕정책의 기조에 묻혀 이 전투는 ‘서해교전’이라는 이름으로 단신 처리됐다. 산화한 장병들도 ‘전사’가 아닌 ‘공무상 사망’으로 처리됐고, 장례기간도 주말을 포함해 3일 뿐이었다.


합동 영결식이 치러진 국군수도병원 실내체육관은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고, 국방부는 이곳 외에 다른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았다. 더구나 대통령, 국방부장관 등 고위간부들은 영결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유가족들은 아들과 남편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조국을 지키던 용사들이었다. 유가족들의 가슴엔 눈물만이 남았다.


29일은 제2연평해전 8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느덧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월드컵은 두 번이나 더 치러졌다. 하지만 남북이 대치한 안보상황은 변함이 없다.


최근에는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해군 초계함을 잃었다. 북방한계선에서는 아직도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진다.








▲제2연평해전에서 전투 끝에 침몰됐던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인양되고 있다. ⓒ연합


◆대응체계의 신속화, 대청해전의 승리로 이어져


제2연평해전은 피해 규모로 보면 우리군의 승리지만, 피해 또한 작지 않았다. 1999년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제1연평해전에서의 완벽한 승리와는 다른 결과였다. 이는 불합리한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은 소극적 대응이었다.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이었는데, 이렇게 번거롭고 방어적인 대응방식으로는 적의 선제공격에 쉽게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제2연평해전도 적의 기습적인 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2004년 해군은 연평해전을 계기로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교전수칙을 바꿨다. 이전 5단계 교전수칙에서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을 강화해 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교전수칙 개정은 대청해전에서의 승리를 가져왔다. 2009년 11월 10일 서해 대청도 근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우리 해군은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해군의 잠수정을 반파해 퇴각시켰다. 인명피해도 없었다. 신속한 대응체계가 승리로 이어진 것이다.


◆기다림 끝에 갖춰진 전사자 예우


비록 2008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연평해전 추모행사와 전사자 처우도 격상됐다. 우선 2008년 4월에 ‘서해교전’이라는 용어가 ‘제2연평해전’으로 바뀌었다. 추모식도 정부기념행사로 승격됐으며,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겨졌다.


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된다. 2010년 5월 26일, 국방부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에게 보상금을 소급 지급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밝혔다.


2002년 당시에는 군인연금법에 ‘전사’항목이 없었고, 2004년에야 뒤늦게 전사 항목이 생겨 전사자로 분류됐지만 보상금은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았었다. 이에 따라 연평해전 유가족들은 사망 보상금 2억 원을 받지 못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특별법 제정이 추진된 것이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인근 해상에서 열린 기동훈련에서 윤영하함을 필두로 참수리 고속정들이 서해 해상을 누비고 있다. ⓒ연합


◆최신예 고속함으로 다시 태어난 영웅들


연평해전을 계기로 노후 된 참수리급 고속정들의 개량사업이 시작됐다. 함교와 기관실에 이중 철판 장갑판을 장착했고, 화력 강화를 위해 M60기관총을 K-6중기관총으로 교체했다.


침수에 대비해 펌프를 대용량으로 교체하고 해군본부와의 직접 교신을 위해 위성통신체계까지 구축했다. 이렇게 개량된 참수리급 고속정은 대청해전에서 큰 활약을 했다.


개량사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차세대 고속정 사업까지 이어졌다. 차기고속정(PKX, Patrol Killer eXperimental)은 해군이 2002년부터 추진한 대양해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수리급 고속정을 능가하는 전투체계를 갖춘 고속정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PKX의 1번 함이자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故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이 실전에 배치된 상태다. 동시대 인물의 이름을 함명으로 사용한 것은 윤영하함이 처음이다.


이어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이름을 딴 고속함 역시 진수되거나 건조중이다.


해군은 윤영하함급의 고속함들을 24척 건조해 참수리급 고속정을 대체할 예정이다. 연평해전의 영웅들이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안보의식 부재는 여전한 숙제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군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46명의 장병이 희생됐다.


국제적인 전문가가 참여한 합조단 조사결과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 이는 북한의 대남 도발이라는 위험을 안고 가야 하는 안보 현실을 일깨워 줬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북한의 공격설을 일관되게 부인하는 음모론에 빠져있다. 젊은이들 중 40% 가까이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민주당이 채택한 결의안에는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이 빠져있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격침 사건 이후에도 북한을 비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 안보의식 제고는 요원한 과제로 보인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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