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때 北 해안포 발포시사 감청”

북한군이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발발 이틀 전 해안포를 거명하고 ‘발포’라는 용어를 세 차례 언급했으나 당시 군 수뇌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군의 통신 첩보를 수집한 제5679 정보부대의 부대장을 지낸 한철용 예비역 소장은 11일 발간한 ‘진실은 하나'(팔복원刊)란 제목의 회고록을 통해 “북한 서해 8전대와 경비정간 교신한 내용을 감청(SI첩보)해 만든 긴급초시보고와 낱(단편)첩보에 각각 1회, 종합정보보고서에 1회 등 모두 3회에 걸쳐 ‘발포’라는 도발용어를 적시했다”며 “그러나 국방부는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한 전 부대장은 “지금도 해군에서 당시 긴급시초보고와 낱첩보 2건을 원문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우리 함정을 공격할 ‘무기’ 이름을 거명했고 이를 통신감청으로 확인했다”며 “지난 1967년 우리 해군함정 당포함이 북한 해안포의 집중사격을 받고 침몰했는데 그 SI첩보 내용은 이 사건을 예견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한 전 부대장은 “6월14일 국방부 블랙북(일일 주요정보보고서)에 항공사진에 의한 지대함 실크웜미사일 발사대가 식별됐다는 정보가 수록됐다”며 “직감적으로 북한이 1차 수단으로 공격이 실패하면 지대함 미사일을 쏘려는 후보계획까지 수립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국방부는 북한 해군의 대함미사일의 전자파가 탐지되어 채프(회피수단)를 살포하면서 확전을 우려해 격파사격을 중지했다고 발표했는데 북한의 대함미사일 전자파는 교전 종료 훨씬 뒤에 탐지됐다”고 설명했다.

한 전 부대장은 “6월20일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이 여느 어선들과 달리 칼과 도끼 등으로 위협하며 나포 시도에 완강히 저항했다”며 “그 어선에는 우리 해군 함정을 정탐하기 위한 북한 정찰국 요원들이 승선했을 확률이 높고 나포시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려워 그처럼 완강하게 저항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월29일 오전 10시25분부터 31분간 진행된 교전에서 참수리 357호는 258발의 포탄을 맞고 예인 중 침몰했으며 우리 해군은 북한 경비정(등산곶 684호)을 향해 76㎜ 함포 등 200여발을 쏘았으나 격침시키지는 못했다.

한 전 부대장은 “북한군의 계획적인 도발 의도를 모른 채 평상시와 같은 교전규칙대로 가까이 차단기동에 나섰다가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받아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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