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8일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앞선 방북결과 언론브리핑에서 공개하지 않은 김정은의 메시지를 미측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내용에 이목이 집중된다.
지난 6일 1박 2일 일정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정 실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4월 말 개최 등의 남북합의 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정 실장은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추가로 갖고 있다”고 말해 북미대화 성사를 위한 ‘히든 카드’가 남아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2박 4일 간의 방미 일정에서 미측과 총 세 차례의 면담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먼저 미측 안보·정보 관련 수장 두 명과 만난 뒤, 이어 대북 관련 부처의 장관 3명과 2+3 형태로 회동할 예정이다. 또 귀국 전에는 백악관에 들러 김정은의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하고, 북미대화에 나서기를 촉구할 계획이다.
현재 일각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김정은의 대미 메시지와 관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 및 폐기’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ICBM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을 협상장에 이끌어낼 카드로 내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북한은 지금 핵·미사일 개발 마무리 단계에서 근본적인 기술적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며 “그동안의 발사 패턴을 보면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부분은 확실히 보여줬는데, 쏘아 올린 미사일이 대기권에 재진입한 뒤 이후 목표물까지 유도하는 종말 기술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고,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일단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협상국면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ICBM 중단을 내건다 해도 손해 볼 게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입장에서도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는 ICBM 개발 중단 카드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밖에 김정은의 대미 메시지에는 현재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 문제도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2020년 미국 대선의 척도가 될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억류 미국인 석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기 타개책의 하나가 될 수 있는 만큼, 미국으로서도 솔깃할만한 제안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이 같은 관측에 대해 “모두 추정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다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정 실장이) 북미회담에 임하려는 북한의 의지와 자세, 또는 비핵화에 대한 더 구체적인 북측의 워딩(발언)을 중심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 이상의 생생한 내용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북미 대화 성사 여부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김정은의 대미 메시지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리 측 방미단이 들고 올 ‘보따리’에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일단 김정은의 비핵화 대화 의지 표명과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유예) 언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한편에서는 섣불리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남북에서 나온 발표들이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북한은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두고 볼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남북합의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북한의 진정성은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성명을 내고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신뢰할만한 그리고 검증 가능한 구체적인 조치를 보기 전까지 우리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대의 압박’ 원칙을 강조하는 등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