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맴돈 남북적십자회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줬으면 하는 기대 속에 열린 제8차 적십자회담이 제자리만 맴돈 채 막을 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후속 화상상봉과 대면상봉 일정,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 속에 포함시켜 협의.해결 등에 합의했지만 이러한 합의 내용은 이미 작년 2월에 열렸던 제7차 적십자회담 합의문에도 담겼었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남측은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별도상봉과 생사확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지만 북측의 외면 속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15차례에 걸쳐 이산가족 만남이 이뤄진 상황에서 이제는 그 범위를 정치적으로 민감한 납북자.국군포로 문제로 확대해 남북간 인도적 사업의 질적 수준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거부하고 예전처럼 이산가족의 범주에서 상봉과 생사확인 등이 찔끔찔끔 이뤄지는 방식을 고집했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시인했다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역풍을 맞았던 북한으로서는 이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적십자회담을 통해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푸는 현재의 방식을 뛰어넘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가 정상회담이라는 정치적 회담체를 통해 풀렸던 만큼 남북간에도 장관급회담이나 특사, 나아가 정상회담 등을 통해 빅딜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시절인 2006년 4월 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한다’고 합의하고 적십자회담이 아닌 별도의 협의채널을 검토했던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이번 회담에 참가했던 북측의 최성익 대표 등은 남측 언론의 납북자.국군포로 용어 사용까지 문제삼는 구태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별도 논의채널의 구축이 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가 몇번의 회담만으로 풀리기는 어려운 것인 만큼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북측에 제기해 나갈 것”이라며 “북측이 이 문제에 호응해 올 수 있는 남북관계와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었지만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 남북간에 추진해왔던 대면상봉과 화상상봉을 계속 이어가고 기상봉자를 대상으로 영상편지를 시범적으로 교환하기로 한 것은 나름의 성과로 평가된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은 대부분 일회적 상봉에 머물러 상봉자들에게 만났던 가족을 그리워하게 하는 후유증을 남겼었다는 점에서 영상편지의 교환은 의미를 가진다.

이를 통해 ‘생사확인-상봉-서신교환’이라는 이산가족 해법이 형식적으로 갖춰지게 되면 앞으로 이산가족 면회소를 통해 소식을 교환하고 재상봉으로 이어가는 방식까지도 검토해볼 만 하다는 분석이다.

또 화상상봉에 이어 영상편지라고 하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남북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정보과학기술(IT)이 도입되는 또 한번의 사례를 만들게 됐다.

이외에도 이번 회담에 나선 북한은 이미 남북 적십자사 간에 합의한 평양 적십자종합병원 현대화 사업에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경제적 실익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북한의 보건.의료문제를 지원하는 적십자병원 현대화사업을 매개로 하는 남북의료교류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담 관계자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서 진전은 없었지만 그동안 추진해오던 이산가족의 상봉은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함으로써 인도적 문제의 지속성을 유지키로 했다”며 “다음 회담 일정도 합의한 만큼 이번에 풀지 못한 숙제들은 앞으로 계속 제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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