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화된 北 부정부패…그 기막힌 ‘두 개의 얼굴’

▲ 지난해 5월 대한적십자사 마크가 찍힌 비료를 배에서 하역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대거 배 위로 올라와 있다. ⓒ데일리NK

얼마 전 필자는 1980년대부터 사업차 북한을 방문해온 외국인과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외국인 사업가는 북한으로 수입하려는 상품에 문제가 생겨서 북한 직원을 찾아갔는데, 직원이 “관세 담당 간부들에게 돈을 좀 주면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외국인 사업가는 깜짝 놀랐다. 북한 공무원들이 뇌물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원래 외국인들에게는 뇌물을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지만 김일성 사망 후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너무 심각했다. 부정부패의 수준을 확실하게 측량하는 방법은 있을 수 없지만 북한의 부정부패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를 능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김일성 시대에도 부정부패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부정부패는 직접 돈을 주고 받는 방법보다 먼저 인맥을 활용했다. 힘 있는 사람들은 대학 입학, 외국출장, 특별상품 구매 등에서 인맥을 통해 ‘물물교환’처럼 돈을 주고 해결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직접 돈으로 뇌물을 주고 해결하는 것이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 보면 부정부패는 무조건 나쁜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부정부패에 ‘2개의 얼굴’이 있다. 역설이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부정부패가 서민들을 도리어 ‘구제’하는 사회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열악한 식량사정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는 식량문제를 해결한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험을 따라 배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히려 북한 당국자들은 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도록 노력했다. 북한의 법에 따르면 서민들은 개인 장사를 해서도 안 되고, 거주지역에서 여행증 없이 나갈 수도 없고, 개인 농업도 거의 못 한다.

만약 이런 정책이 법대로 계속 실시됐더라면 주민들은 더 많이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심화되면서 서민들에게 탈출구를 열어 주었다. 식량난 때 간부들도 생활이 많이 어려웠으니까 부정부패 행위를 자신의 생존수단으로 만들었다. 김일성 시기에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전례 없이 심각했던 북한사회는 하루 아침에 돈만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법대로 하면 굶어 죽을 수 있었던 북한 서민들은 부정부패 때문에 살아 남았다. 간부들에게 뇌물만 주면 ‘살인적인’ 법을 위반하고 장사 해서 살 수 있었다. 서민들은 고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식량이 있는 지역이나 중국으로 갈 수도 있었고, 국영경제에서 나오는 못하는 소득 대신에 다양한 개인사업을 통해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은 간부들이 뇌물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탈김(脫金) 시대’에도 부정부패 골치 아플 것

부정부패는 북한사회의 ‘자발적인 자유화’의 측면도 있다.

요즘 북한 사람들이 몰래 남한 드라마를 보고, 외국 방송을 듣고 중국을 갔다 오니까, 외국생활에 대해 옛날보다 더 잘 알고 자신의 체제에 좀더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부정부패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요즘 인민반장(인민반: 30가구 정도를 1개 인민반으로 묶어 당국이 감시·통제하는 제도)에게 외국 담배 한 갑을 주면 집에서 단파 라디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해주고, 국경 경비원에서 중국 돈을 주면 남조선 테이프를 밀수입할 수도 있다. 요즘은 돈을 진짜로 많이 주면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정치범도 석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부패에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부정부패가 북한 주민들의 생존 조건 중 하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정부패가 북한 개발의 길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된다.

최근 15년 동안 북한 간부들은 뇌물을 받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북한 사람들의 상식은 뇌물을 요구하지 않은 간부나 경찰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식량난을 경험한 북한 주민에게 부정부패는 “보편적 행위”나 “힘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김정일 체제가 무너질 경우에도 교육과 행정경험을 거의 독점한 간부계층은 ‘탈김(脫金) 시대’에도 북한이라는 땅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인재가 간부계층 외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북반부’가 될 경우에도, 親中 위성정권이 군림하는 지역이 될 경우에도, 또 북한이 그대로 분단 국가로 남아 있을 경우에도, 탈김 시대에 통치 엘리트들은 압도적으로 노동당, 인민군, 보위부 간부 출신으로 구성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옛날 습관을 쉽게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탈김 북한’에서 설사 그들의 연봉이 수억원이 된다 해도 간부 출신은 부정부패 행위가 습관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김부자 정권의 붕괴가 초래할 가치관 위기도 그들의 냉소주의와 이기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 같다. 그들은 투자를 남용하고 외국의 원조물품을 훔치고 자신에게 뇌물을 바친 사람들에게 계속 특권을 줄 것이다. 이러한 행위 때문에 이북 지역의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정성은 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우리는 부정부패가 개발도상 국가의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전망을 파괴시키는 요소 중 하나임을 잘 알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북한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조건은 조성되는 것 같다. 부정부패는 단기적으로 보면 약(藥)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毒)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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