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빅딜’…한반도 정세 급변 조짐

북한과 미국이 2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연내 불능화를 고리로 한 빅딜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조짐이다.

양측의 합의는 비핵화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연내 전면신고,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양국 관계정상화를 위해 서로 주고 받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그 파장은 양국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강인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우리는 준비가 됐다. 결단을 내리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적어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드러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은 ‘한번 시도해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미국의 진심을 헤아리고 최후의 결단을 내릴 경우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유물을 한꺼번에 벗어던지고 평화체제로의 변환에 속도를 내는 신국면으로 빠르게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9월 중순에는 6자회담 본회담이 열린다. 제네바 합의 결과를 사실상 추인하고 세부 행동계획을 만들 것으로 보이는 이번 회담은 북핵 사태가 ‘근원적 해결’이냐 ‘일시 봉합’이냐를 가를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10월초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다. 6자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열리게될 남북 정상간 대좌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고 평화체제를 본격 논의할 중요한 합의가 나올 전망이다.

북.미 관계의 급진전에 맞춰 남북관계도 과감한 폭으로 화해와 평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대규모 경제협력이 추진될 경우 ‘북방경제’가 한반도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 클린턴 정부 말기 북한과 미국이 수교 논의 직전 단계에 다다른 것처럼 이번에도 북한과 미국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관계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과거 클린턴 시절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한 것처럼 조만간 방북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북이 성사되면 미국은 핵폐기를 전제로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어떤 방안으로 실현할 지를 집중 설명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10월에는 6자 외교장관회담도 성사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송민순 외교장관은 지난 1일 “(6자 외교장관회담이) 10월 하순께 개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장관들이 비핵화 및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와 관련한 모종의 합의를 도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부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는 이른바 4자 정상회담도 올해말 또는 내년초에 열릴 가능성이 높아 졌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최근 유일하게 비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북한과 일본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신임 외상은 지난달 28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에 대해 인도적인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자리에서 “납치문제와 모든 것을 관련시켜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납치문제에 진전이 있기 전에는 6자회담 틀에서의 대북지원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과거의 공식 입장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일본의 이런 변화조짐은 마치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패배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핵 외교와 관련, 대화기조로 급선회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북.일 양측이 납치문제에서 과거와 다른 유연함을 보여줄 경우 북일관계도 새로운 해빙의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문제와 연관짓는 상황이어서 북한측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도모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일본과 현안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과 일본은 오는 5-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를 열 계획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하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항상 그렇듯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을 수는 없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국내 정치역학을 고려하는 한국과 일본 등이 현재로서는 북한과 적극적인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황이 언제 변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북한으로서도 미국의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활용, 내부 체제결속과 경제적 이익을 얻어야 하는 판단을 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설 지 모르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불능화 단계까지 북.미 관계가 순항할 가능성이 높지만 내년 상반기 북한이 핵폐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는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이 체제유지의 관건으로 핵무기를 과연 포기할 지,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과연 북한이 안심하고 핵없는 다른 대안을 택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지가 향후 국면 흐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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