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철 수감된 ‘득장관리소’ 어떤 곳?

▲ 北 정치범 수용소 모습 ⓒ 일본 후지TV

정하철 전 노동당 선전비서의 정치범수용소행이 알려짐에 따라 ‘득장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득장 관리소의 소재와 규모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곳이 완전통제구역이기 때문에 살아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치범 수용소출신 김태진(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씨는 “득장수용소는 15호 관리소처럼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 구역이 있는 관리소”라고 증언했다. 김대표는 “정치범으로 찍힌 본인은 가족들과 격리되어 완전통제구역에 감금되며, 가족들은 혁명화 구역에 따로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 구역이 함께 있는 수용소는 지금까지 15호 관리소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득장관리소는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 구역을 겸비한 수용소로 파악된다.

일가족이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 구역을 갖춘 수용소에 끌려가는 경우, 일생 동안 서로 만날 수 없으며, 혹시 도토리 줍기와 야외노동 등 개별작업에 동원되었다가 길가에서 만나도 말을 걸 수 없다.

수용소 위치 묘연, 두 곳이 합병됐을 수도

정치범수용소 출신 김영순(북한민주화 운동본부 운영위원)씨는 “득장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사망한 前 제1집단군 사령관 정병갑을 비롯해 김일성 체제에 의해 숙청된 항일 빨치산 출신 간부들과 중앙당의 요직 간부들이 수감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은 “60~70년대 김광협, 허봉학 등 연안파들과 소련파들도 득장수용소에 끌려갔다”며, “90년 초 혁명화 구역에서 살아나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두 곳 중 한 곳(혁명화 대상구역)은 80년대에 해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 이정길(36세, 2002년 탈북, 가명)씨는 “내가 가본 북창의 정치범수용소는 두 곳”이라며, “득장 관리소는 생활을 잘하는 ‘모범생’들의 경우, 결혼까지 허용한 적이 있다” 고 증언했다.

현재 북창군에 정치범수용소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김영순씨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두 개소였던 것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높아지자, ‘수용소를 줄이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축소 또는 합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평남 개천의 ’14호 관리소’, 함남 요덕의 ’15호 관리소’, 함북 화성의 ’16호 관리소’, 함북 회령의 ’22호 관리소’, 함북 청진의 ’25호 관리소’ 등 5개가 통폐합된 시기와 거의 동일하게 득장수용소도 한 개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초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구조조정’을 한 바 있다. 북한은 정치범수용소를 통폐합할 경우, 수감자 중 처리할 대상들은 처리(처단)하고, 일반 혁명화 대상자들 중 ‘교양되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사회에 내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일반 범죄자 교화소를 만들거나, 다른 건물로 이용하여 수용소의 위치파악을 묘연하게 만들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