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 해체 전면에 내걸 때

▲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한장면 ⓒ데일리NK

지난해 10월 9일 북한은 전격적으로 지하 핵실험을 단행했다. 국제사회는 북하의 도발에 경악했고 유엔은 신속히 제재를 추진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베를린에서 미국과 북한이 만나 BDA에 묶인 북한 자금 해제를 합의하고 에너지 지원도 약속했다. 뒤이어 6자회담이 재개되고, 2•13합의가 발표됐다.

미국 부시 정권은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뒤 역설적으로 김정일 체제를 보장하고 대북 유화정책으로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이 북쪽의 체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중국과 한국 정부도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게 된다. 대북 강경책을 구사했던 미국까지 나서 북한의 체제를 지원한다면 상당기간 김정일의 체제는 당분간 안전하게 존속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상황의 개선을 바라 온 당사자로서 이러한 정국 변화는 그리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시도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현재 김정일 체제를 미국이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김정일 체제가 존속하는 한 북한인권 개선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인권참극을 당분간 그대로 지켜본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문제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도 수용소 해체 가능

필자는 몇 년 전 잊을 수 없는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이 논쟁은 필자가 소속된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 내부에서 있었다. 북조선의 강제 수용소에 관한 것이었는데, 필자는 수용소가 없어지는 것은 김정일 체제가 몰락해야 가능하다는 일종의 정론에 대해 격렬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필자의 이러한 견해는 수용소는 지금이라도 즉각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가 작용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김정일 체제의 변화를 추진하지 않는 사람도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가 사라지지 않아도 극단적인 인권유린 장소인 수용소 폐쇄만큼은 내외적인 여론을 통해 가능하다고 당시는 생각했다.

이 논쟁 이래 수년이 지났다. 수용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북한인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다. 부시 정권이 들어서고 필자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방향에 대한 기대를 높이 갖게 됐다.

필자가 그동안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에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악의 축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느꼈다.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개별적으로 제기하기 보다는 김정일 체제의 붕괴 환경을 조성하는 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보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은 최근 들어 후퇴하기 시작했다. 김정일 체제에 대해 강경전략을 구사했던 네오콘의 힘이 약해지면서 체제 문제 이전에 핵확산을 막는 클린턴 정권 시대의 정책으로 후퇴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이 유화정책으로 바뀌고 있고 체제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외부적 환경은 멀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다시 몇 년 전 김정일 체제 존속하는 동안에도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앞에서 필자가 김정일 체제가 존속하는 조건에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가 가능하다고 밝힌 조건에서 첫번째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인권유린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과신은 스스로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라는 운동을 결과적으로 소극적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체제 붕괴가 멀어진 이상, 수용소 해체도 멀어졌다고 생각해도 되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강제 수용소 해체를 전면에 내세울 때이다. 핵사찰과 함께 수용소 사찰을 실현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범수용소 출신 강철환•안혁이 함께 쓴 「대왕의 제전」(文春文庫 상하) 읽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대왕의 제전에 대한 중국어 판을 연내에 제작할 수도 있다. 요덕 스토리의 일본 공연도 성공시켜야 한다. 내년 북경 올림픽 전에 강제 수용소 문제를 중국 정부, 한국 정부에게 제기해 정확한 태도를 표명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수용소 경비병 출신 안명철 씨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완전통제구역 정치수의 운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그 동안 이러한 활동이 부족했던 것을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북한의 강제 수용소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선 완전통제구역의 정치수의 운명의 문제다. 여전히 존재하는 다섯 내지 여섯 개의 정치범수용소는 모두 완전 통제 구역이며 이들은 여전히 참혹한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처지를 강요당하고 있다.

오가와 하루히사/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 명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