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핵주권론’의 허와 실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정치권 일각을 중심으로 `우리도 독자적인 핵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핵주권론이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했지만 과연 유효한지를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는 완곡한 표현에서부터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라는 노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핵주권론은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하자’는 핵무장론과 `평화적인 농축과 재처리 능력을 갖추자’는 핵주기완성론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핵무장은 일본 등을 자극해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데다 중국, 미국의 반대에 부닥칠 것이 분명해 가능성이 없다는게 중론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28일 “안보위기 상황을 이용해 보수층을 자극하려는 정치권의 감성적인 주장에 가깝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도 “허황된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핵주기완성’은 국제법상 막혀있지 않은데다 농축과 재처리를 자체 해결했을시 경제적 이득도 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잖은 지지를 얻고 있다.

◇ 우리의 핵이용 권리 어디까지인가 = 한국은 세계 5∼6위권의 원자력 강국이지만 핵이용 권리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우리는 핵무기 제조로 전용될 수 있는 이른바 민감기술인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이 두가지를 금지하는 규약이나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핵이용 권리가 제한적인 것은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가 이를 하지않겠다고 국제사회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1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갖추지 않겠다’고 밝혔고 1992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에 이를 반영했다.

이에따라 우리는 원자력발전용 핵연료인 농축우라늄을 미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발전 뒤 생기는 사용후 연료도 재처리를 하지 못하고 수십년간 창고에 쌓아놓고 있다.

1974년 체결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도 우리의 핵이용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협정에는 `사용후 핵연료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에는 미국의 동의를 받는다’고 돼 있다. 따라서 재처리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사용후 핵연료로 실험을 하는 것도 건건이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한다.

◇ 힘얻는 핵주기완성론 = 그동안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우라늄 채광→농축→핵연료 제조→사용→사용후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지금처럼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닌 경제적 이익 및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 발전의 전체 공정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시 전력수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농축 우라늄을 해외에서 수입하지 않고 직접 농축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재처리는 폐기와 관련이 있다.

지금은 마땅한 처리방법이 없어 저장시설에 쌓아두지만 재처리를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부피면서도 친환경적으로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등 일부 국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철저한 감시하에 농축과 재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적 감시하에 농축과 재처리를 하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며 “경수로는 연료봉을 재처리한다해도 플루토늄 비율이 60-70%에 불과해 무기로 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원자로 형태에 따라 흑연감속로를 사용하는 북한은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기 쉽지만 경수로를 쓰는 우리나라는 재처리를 해도 불순물이 많이 섞여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눈초리에서 다소 자유롭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같은 `핵주기완성론’은 어디까지나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사항이어서 일부 정치권에서처럼 북핵의 대응 차원으로 논의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 실제 가능할지 여부는 불투명 = 국제법상 막혀있지 않고 경제적.에너지 안보적 측면에서 필요성이 있다해도 우리가 실제 농축과 재처리 능력까지 갖춰 `핵주기완성’을 이룰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우선 핵물질 재처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정부는 재처리를 추진하지 않는다는게 현재까지 방침”이라고 전제한 뒤 “설사 우리가 재처리를 추진한다해도 가능여부는 전적으로 국제정치, 즉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즉,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한국의 핵투명성을 인정하고 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처리(1980년대 초반)와 농축(2000년)과 관련된 실험을 했던 사실이 2004년 드러나 자칫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될 뻔하는 등 홍역을 치렀던 데서 보듯 재처리와 농축은 국제사회에서 극히 민감한 사항이다.

특히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핵무장론’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재처리를 추진한다면 국제사회가 그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정부가 사용후 연료의 처리방안과 관련, 재처리의 대안으로 이미 건식재활용 방식을 연구중인 것도 굳이 정부가 재처리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한수 핵주기공정기술개발부장은 “건식재활용을 거치면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는 줄어들고 친환경적으로 변해 재처리와 비슷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불순물이 많아 무기전용 가능성은 훨씬 낮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1년부터 건식처리시설을 시험가동한 뒤 2025년께 본격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미국과 개정협상을 준비중인 한미원자력협정에도 재처리 문제는 반영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부 당국자는 “원자력협정이 만들어진지 너무 오래돼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지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릴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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