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대북사업 선배는 김우중

14일 오전 입국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1995년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초기의 대북사업을 주도했다.

김 회장은 1992년 1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한 자리에서 당시 대우가 추진 중인 남포공단 가동문제를 협의했다.

김 주석은 김 회장과 회동 후 김 회장에 대한 인상이 대단히 좋다며 “민족경제사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해 대우의 남포공단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에 따라 대우는 총 512만달러를 투자해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와 합영으로 남포시 항구구역 신흥리에 민족사업총회사를 설립했고, 연간 셔츠 300만장과 재킷 60만장, 가방 30만개를 생산해 수출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잘 나가던 대우가 1999년이후 공중분해되면서 대북경협은 틀어지고 말았다.

김 회장은 5년 8개월 동안 해외도피행각을 벌이면서도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해 양빈 사건 이후 중단됐던 신의주특구 개발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또 2003년 9월 제8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쪽에 남아있는 형 윤중(당시 78세)씨와 상봉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 회장의 독특한 대북투자 방식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당시 북한 노동자 월급이 월평균 40달러에 불과한 데도 “조선 노동자에게도 월 1천달러 이상 받는 남한 노동자의 절반은 줘야 되지 않느냐”고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대북사업에 참여했던 재미사업가 김찬구씨는 “김 회장의 감상적인 (대기업) 논리가 북한 진출에 관심 있던 해외동포 중소기업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면서 “한국기업의 대북투자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