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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29일부터 7월 3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
정부관계자는 정 장관의 방미(訪美) 목적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및 남북 장관급회담 결과를 미국측에 설명하고 이후 남북관계 및 북핵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미 과정에서 정 장관은 17일 김 위원장에게 제안한 ‘중대 제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미국측에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정 장관은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면담을 신청해 논 상태다.
정 장관은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 자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의했다는 ‘중대 제안’에 대해 “북한측에 먼저 제의하고 미국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이 사전 협의도 없이 북한에 먼저 제안하고 사후에 미국에 통보한 것을 두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한국정부, ‘중대 제안’ 대북 유인책으로 활용
‘중대 제안’ 내용은 대규모 경제지원이 될 것으로 확실시 된다. 체제보장이나 핵 폐기 프로세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핵 폐기 이행에 따른 ‘초기 준비기간’에 중유공급 및 다자 안전보장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 표면상으로는 큰 마찰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일단 시기 문제가 나선다. 미국은 명확한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동결에 따른 지원을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시점을 좀더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대북(對北) 유인책으로 활용하자는 의도다. 미국의 조건 없는 핵 폐기 입장과 상충되는 부분이다.
또 미국은 6자회담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너무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경우 계속 지연 전략을 쓸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정부의 대규모 경제지원이 핵 폐기 검증이 끝나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결국 원활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더 양보하라는 대미 압박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정 장관은 부시 행정부 핵심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함께 대북 강경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체니 부통령과의 만남은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일단 만남이 성사될지 여부가 관심이다.
체니, 정 장관에게 남북관계 속도조절론 펼칠 듯
체니 부통령은 지난달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국민의 빈곤과 굶주림을 방치하는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지도자중 한 명”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평가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네오콘(新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현실주의 성향이 강해 이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장관은 체니 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문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시점이나 핵 포기를 명시적으로 표명하지 않은 이상 남북 화해 분위기만으로는 설득에 한계를 보일 것 같다. ‘핵 관련 성과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당장 물어올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체니 부통령은 한국 정부가 김정일의 ‘민족공조’ 전술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는 지난 2월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비료지원 중단’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샀을 만큼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을 펴왔다.
북한에서 큰 환대를 받은 정 장관이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도 관심이다. 결국 관건은 ‘중대한 제안’에 대한 양국간 협의 결과에 따라 달렸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미국은 매 사안마다 조율과 협의가 필요할 만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