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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당사자였던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 그는 쇠고기 협상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면서 축산농가의 경쟁력 강화 대책마련에 분주한 상태였다.
2008년 4월 29일.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정 전 장관은 MBC PD수첩 ‘광우병 쇠고기, 목숨 걸고 먹어야 합니까?” 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PD수첩 사회자는 정 전 장관과 협상단을 친일매국노로 비유했다. 그리고 쇠고기 협상 자체를 ‘역사에 부끄러운 짓’으로 규정했다.
그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소회했다.
“방송을 보고 있자니 미국 소가 전부 광우병에 걸린 소처럼 느껴졌다. PD수첩은 쇠고기 협상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광우병에 초점을 맞춘 공포드라마였다. (나는) 국민들을 광우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협상대표자인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일반 국민들은 오죽하겠는가?”
검찰수사 결과 MBC PD 수첩은 30곳이 넘는 왜곡과 오역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번역에 참가했던 한 작가는 당시 프로그램이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기 위해 불공정한 편집과 번역 왜곡을 서슴치 않았다고 말했다.
광우병 시위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관계자는 광우병 시위를 ‘위대한 민중의 발걸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에 기초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당사자였던 정 전 장관은 광우병 시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시위 현장에 몰려가 수난을 당하고 협상을 책임지고 사퇴한 그에게 촛불시위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당시 소회를 담아 펴낸 책 ‘박비향’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십만 국민이 치켜든 촛불의 기운을 한데 모아 매진한다면 농식품산업 또한 새 역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촛불시위를 단순히 원망과 공포로 보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희망가로 본 것이다.
27년 동안 농업 외길을 걸으며 ‘참다래 아저씨’, ‘벤처농업계의 이건희’로 불렸던 정 전 장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농업인답게 ‘현장 속으로!’를 외치며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온 나라가 촛불에 뒤덮였던 2008년 6월, 쇠고기 협상의 책임자였던 그는 국민과 소통하려 위험을 무릅쓰고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결국 5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정 전 장관는 촛불 때문에 물러났으나 촛불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몰려나온 국민들 가운데는 실체도 없는 광우병 공포를 조장하고 이용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나, 대다수 국민들의 촛불 속에는 우리 농식품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이 녹아있었다는 것.
정 전 장관은 그때를 회고하며 지난 정부가 쇠고기협상의 큰 틀을 모두 결정해 놓아 운신의 폭이 좁았다며 축산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과 국익에 부합하는 협상을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표 낼 각오로 협상에 임해 세계동물보건기구(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OIE) 기준 완전수용의 조건으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를 관철시킨 것은 진일보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고 국민 건강과 식탁 안전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촛불을 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불신과 불신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념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책 말미에 “아마도 인생길에서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뼈를 깎는 아픔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픔은 분노와 슬픔, 좌절로 끝내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벼랑 끝에서 딛고 일어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며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
특히 “다시 태어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의 향기가 된다며 한철골 박비향(寒徹骨 搏鼻香. 뼈를 깎는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다)의 세계를 열어 보여준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