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광 KT 초대 개성지사장

“곽밥(도시락)이나 고기겹빵(햄버거) 먹고나서 빛섬유(광케이블) 점검합시다. 혹시 몸까기(다이어트)합니까?…”

요즘 정연광(鄭然光.53) KT 개성지사장은 낯선 평양말과 그 특유의 억양에 잔뜩 재미를 느껴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과 하루의 피로를 다소나마 덜고 있다.

은양말(스타킹), 가슴띠(브래지어), 가시아버지(장인), 단물(쥬스), 고기순대(소세지) 등등…

그는 지난해 12월28일 문을 연 대한민국 제1호 북한지역 전화국인 KT 개성지사의 초대 지사장이다. 개성지사의 개소와 함께 분단 60년만에 남북 직접 통신망이 개통, 남북 협력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정 지사장과 KT 직원 1명, 그리고 평양개발총국에서 파견된 북측 참사 2명 등 4명이 KT 개성지사의 식구 전부다.

“평소 남북간 교류협력 협상이 있을 때마다 사석에서 `통일되면 개성이나 평양의 전화국장 한번 해보고 싶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던 것이 초대 개성지사장을 맡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KT가 2004년 3월 정부로부터 개성공단의 공식 통신사업자로 지정된 뒤 개성지사장을 공모하자 “KT에서 30년간 근무한 경험을 살려 보람차고 큰 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공모에 지원했다.

공모에서 그는 1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초대 개성지사장의 영광을 안았다.

“초대 개성지사장에 임명된 것은 오랜 희망을 이룬 것으로 저에게는 대단한 자랑이고 가문으로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60년만에 남북간 직통 통신망을 개통하기까지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북축과 통신망 구축을 위한 최종 부속합의서에 합의하는 데 1년9개월이 걸릴 정도로 남과 북은 현격한 문화와 인식의 차이를 보였다. 개성으로 KT의 통신장비를 반입하는 데도 6개월이나 소요됐다.

지난해 11월15일 개성지사장에 임명된 뒤에는 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남북통신망 개통식을 앞두고 통신설비의 고장이나 통신망 장애가 발생한다면 국가적 망신이라는 생각으로 장비와 선로 점검을 거듭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남중수 KT 사장, 국회의원들, 언론사 취재진,그리고 북측의 고위 관계자 등 VIP들이 역사적인 남북 통신망 개통식에 대거 참석했습니다.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역사적인 순간에 장애가 발생하면 어쩌나 하면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역사적인 남북 직통 통신망은 개통당시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정 지사장은 “통신망이 고장나면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에 큰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모처럼 성사된 남북협력 사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서 “지금도 예비 자재 확보에 만전을 기울이고 자체적으로 복구훈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 2주일에 한번씩 2박3일간 서울에 있는 집을 찾아 가족을 만난다.

KT의 업무용 차로 북측 출입국사무소를 거쳐 비무장 지대를 통과한 뒤 남측 출입국 사무소를 나와 문산 통일대교를 건너서 자유로를 달려 서울로 온다.

“아내와 서로 떨어져서 지내다 보니 연애하는 기분도 나고 아주 좋습니다. 또 2주동안 회사 동료들의 근황을 듣고 경조사도 챙기느라 서울생활 2박3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북한 생활에 대해서는 비교적 만족하는 편이다. 하지만 식당이 1곳밖에 없어 식사를 다양하게 할 수 없고 위락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데다 목욕탕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는 개성지사장으로서 가장 역점을 두는 일에 대해 “개성공단은 남북 협력사업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서 “개성지사는 입주기업에 통신 인프라를 공급해야 하고 특히 서비스 중단이 없도록 통신망의 고장을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예방보전 활동, 선로순회, 위험지역 사전순찰 등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 현재 2만8천평인 개성공단 시범단지가 앞으로 1단계로 100만평으로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통신망 확충, 개성지사 이전, 통신센터 건립부지 확보 등도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다.

전화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포부를 묻는 질문에 아주 소박한 답변을 했다.

“초대 지사장으로서 임무를 다 끝내고 난 뒤 후임자로부터 `고생했다. 많은 일을 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