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장관은 ‘햇볕’에 거꾸로 꿰맞추나

정세현(사진) 전 통일부 장관이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보수세력, 참여정부, 미국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27일 한 강연회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수측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미국이 유연하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말했다.

잠시나마 쌀 차관과 2.13합의를 연계시키려고 했던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요즘 대통령 옆에 누가 있는가가 중요한지 실감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참여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현재 북한에 대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며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북한 문제가 한미간 주도권 경쟁을 해야 할 문제인지,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 있는지 적잖이 궁금하다. 정 전 장관의 발언 배경부터 살펴보고 정답을 찾아보자.

그는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 가진 강연회에서 “북한의 체제붕괴에 대한 공포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압박 정책이 북한의 지난 7월 4일 미사일 실험과 10월 9일 핵실험을 하게 된 배경”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북한은 이미 변화하고 있으며 압박 대신 대화와 지원을 통해 이를 더욱 가속화 할 수 있다”면서 지원과 포용만이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햇볕의 원조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은 시기에 “(미국) 네오콘들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과 장관이 미국 책임론을 넘어 네오콘 음모론까지 제기한 것만 봐도 이들이 ‘햇볕 도그마’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정 전 장관이 제기해온 ‘미국 책임론, 북 핵포기 당위성, 지원만이 개혁개방 견인, 정상회담 필요성 등은 그간 10년의 햇볕정책의 결과 북한 핵실험과 우리 국민의 ‘퍼주기’ 여론까지 확산돼 그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 전 장관이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햇볕정책에 대해 북한 최고 수뇌부의 판단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월간 중앙 최신호는 장용순이라는 북한 고위 관리가 작년 12월 원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김정일의 의중을 전달하는 강연의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장용순은 이 강연에서 김정일의 외교 방침은 미국은 견제하기, 중국은 안타깝게 만들기, 남한에 대해서는 ‘주무르기’ 전략이라고 했다. 북에게 남한은 주무르는 대상인 셈이다.

또한 김정일이 ‘우리는 수령님대 우리 조국의 아들 딸들이 낙동강에서, 남녘땅에서 흘린 피 값을 기어이 받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결심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용순은 ‘미국 것들이 우리를 졸라매는 한 군수공업을 민수로 돌릴 수 없다. 명백하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통일될 때까지 허리를 졸라매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장용순의 강연은 녹취 내용과 정황 등을 볼 때 조작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 강연에 따르면 김정일은 남측을 주무르며 지원을 받고 군사력을 계속 증강, 결국 통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실로 되든 그렇지 않든 김정일의 기본 전략은 이것이다.

장용순의 강연을 통해서도 정 전 장관의 ‘북한을 압박하지 않고 지원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실시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주장이 얼마나 나이브(naive)한 생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햇볕정책 주창자들이 현실과 이상을 혼돈하면서 이상이 정의라는 왜곡된 신념으로 발전해왔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미국과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다투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족공조를 한미공조의 우위에 두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접근이다. 정 전 장관은 이제라도 과거 남북문제를 냉철하게 접근했던 학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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