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FP 대북지원’ 놓고 고민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최근 대북 식량지원 동참 요청을 받은 정부의 고민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북 지원에 대한 국민 여론과 인도주의 측면에서의 지원 필요성 등 자칫 충돌할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핵 상황 등에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한다는 원칙 아래 북한의 지원요청이 있으면 지원하고 요청이 없더라도 식량사정이 심각하거나 재난 상황일 경우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럼에도 북한이 지원요청을 하지 않자 정부는 지난 5월 옥수수 5만t 지원의사를 북측에 타진했고 북측이 거부하자 WFP의 북한 식량 실사 결과 등을 봐가며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정 받지 않으려 할 경우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군인의 총격에 살해되고 사건에 대한 우리의 공동조사 요구에 북측이 응하지 않아 대북 여론이 악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WFP를 통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백지상태에서 검토하는 신중한 접근법을 취하게 된 것이다.

홍양호 통일차관은 지난 22일 평화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원 규모, 시기문제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해서 입장을 정리한다는 생각”이라며 “조금 시간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신중 기조에는 박씨 피살사건 후 정부 차원의 각종 대북 물자제공을 보류하고 민간 인사들의 대규모 방북을 불허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접 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부 예산을 들여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국민 일반의 정서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홍 차관도 인터뷰에서 WFP를 통한 지원에 대해 “최근 남북관계와 관련된 국민여론을 많이 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60% 이상의 북한 주민이 하루 두끼로 연명하고 있다는 WFP의 실사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정치적인 고려를 떠나 대북 지원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최근 한 포럼 발제문을 통해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이라며 “WFP 등 국제기구의 경우 모니터링(분배감시) 체제가 우리측이 직접 대북 지원하는 경우보다 잘 돼 있기 때문에 더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임명된 서재진 통일연구원장도 21일 기자 간담회에서 “정부는 남북관계 경색 상황에서 금강산 피격 사건까지 터져 대북 지원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WFP의 요청에 긍정적인 방향의 반응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호재라고 본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는 국민 감정과 인도주의적 고려 등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전망이다. 국민 감정을 거슬러 지원하기도 어렵지만 북한 주민의 인도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도 장기적인 남북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등에서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원을 결정할 경우 지원량을 정하는 문제가 남는다.

현 정부가 주려고 했고, 작년 말 남북협력기금까지 집행하기로 결정했던 옥수수 5만t(약 200억원) 선에서 지원할 경우 별다른 절차가 필요없다.

하지만 WFP를 통한 지원 규모를 옥수수 5만t 이상으로 잡을 경우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올해 반영된 대북 쌀 차관 예산 1천974억원 중 일부를 WFP 지원으로 돌릴 수 있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WFP가 지난 20일 우리 정부에 요청한 대북 지원용 재원은 6천만달러(약 600억원)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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