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WFP 대북식량요청에 ‘신중·담담’

‘대북 식량지원 찬반논란’에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 호소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정부가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 지원하겠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아닌 국제기구가 최근 지원을 호소해옴에 따라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일 “현재 WFP를 통한 지원 여부는 결정된 바 없으며 향후 여러 가지 상황과 제반 요소를 고려, (지원여부를) 검토해 나가겠다”고 원론적인 선에서 입장을 밝혔다.

현재로선 지원 행보를 서두르는 듯한 정부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미 북측 요청이 있으면 지원하고, 요청이 없더라도 식량상황이 심각하다고 확인될 경우 지원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 둔 만큼 WFP의 요청이 지원 여부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는 분위기다.

한 소식통은 “과거 WFP를 통해 거의 매년 일정량을 북에 지원했지만 올해는 정부가 세워둔 원칙이 있는 만큼 상황이 다르다”면서 “WFP가 지원을 호소해왔지만 북한이 우리에게 직접 요청한 것은 아닌데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요청여부에 관계없이 지원하는) `긴급지원’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정부 판단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담담한 기조는 지난달 27일께 WFP의 지원요청을 공식 접수한 정부가 접수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1일 언론 보도가 난 뒤 확인요청을 받고서야 공개한데서도 묻어난다.

한때 식량지원에 유연하게 접근하는가 싶던 정부가 이처럼 담담한 기조를 보이고 있는 데는 최근 어수선한 국내 정치적 상황과 북한의 변함없는 대남 비난 기조 등이 두루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현 상황에서 WFP를 통한 지원은 순수 인도적 목적 달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남북 당국간 대화복원으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게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또 국내 여론 측면에서도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수동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 보다는 이미 세워둔 원칙에 따라 주도적으로 지원여부를 정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핵심 당국자들의 판단이다.

다시 말해 `주고도 뺨 맞았다’는 비난까지 각오하고 남북관계의 전환점 마련 차원에서 WFP의 요청에 즉각 응할 수도 있지만 여러 여건상 그런 모험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1년간 50만t) 결정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우리의 대북 지원을 재촉하는 요인이라는 쪽 보다는 `원칙에 따라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가 있다.

다만 정부는 북한의 객관적 식량사정이 우리 분석치보다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거나, 시간이 흘러 긴급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악화될 경우 WFP를 통한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예상했다.

예를 들어 WFP측이 자체 분석을 통해 파악한 북한의 식량사정이 우리가 분석한 것(120여만t 부족) 보다 한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 WFP의 요청에 응하는 식으로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 경우 정부가 지난해 대북 수해 지원 차원에서 주려고 했다가 공급이 미뤄진 옥수수 5만t 제공 방안 등이 우선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