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PSI 참여 놓고 고심 거듭

이명박 대통령이 5일 대량파괴무기(WMD) 비확산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함에 따라 WMD 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한국의 정식 참여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유엔과 국제 핵비확산.군축위원회(ICNND) 등을 통한 범세계적인 군축과 대량파괴무기 및 운반수단의 비확산에 대한 협력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성명과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비록 ‘유엔과 ICNND 등을 통해서’라고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비확산을 위해 한국 정부도 일정부분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인 만큼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PSI에 정식 참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PSI는 핵무기를 포함한 WMD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공해상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한국은 PSI의 8개항 중 역내.외 훈련의 참관단 파견, 브리핑 청취 등 옵서버 자격으로 가능한 5개항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정식참여 ▲역내.외 차단훈련시 물적 지원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

PSI의 주요 대상이 북한인 만큼 북한의 반발 등을 고려해 유보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호주와 정상회담을 계기로 WMD와 운반수단의 비확산을 공식 거론함에 따라 PSI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공식 참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공동성명 및 행동계획과 우리 정부의 PSI 참여 여부는 무관한 것이라고 부인하면서 이 같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을 수행중인 청와대 외교안보 관계자는 “이번 공동성명 및 행동계획과 PSI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양자 차원에서 기존 협력 사업을 재확인하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우리가 새롭게 이니셔티브를 취하자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체제 내에서 협력하자는 내용”이라며 “특별히 PSI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인 핵공급국그룹(NSG), 쟁거위원회(ZC),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바세나르체제 등 다자체제에서 수출통제와 관련한 협력을 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협력을 활성화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인 셈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한국의 PSI 정식 참여 여부에 대한 논란은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보협력과 관련해 정상차원에서 공동성명과 행동계획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리 정부도 공식참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PSI 정식 참여를 실무선에서 꾸준히 타진하고 있는데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비롯해 WMD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의 확산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정부는 PSI의 취지와 의도는 공감하고 어느 수준으로 참여할 것이냐는 우리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PSI에 대한 참여를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참여의지를 시사했다.

미국의 민간 클레어몬트 연구소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도 북한이 지금까지 중동지역 국가들에 스커드 미사일 1천기 이상을 수출했고 최근엔 이란과 시리아 등에 대포동2호 미사일 관련 기술을 제공했다고 밝히는 등 북한의 WMD 확산 의혹이 무수히 제기되고 있어 차제에 PSI 참여를 공식 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물론 정부로서는 PSI 참여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의가 우선돼야 하는데다 북한이 인공위성 탑재 로켓 발사를 준비하고 남북 접경지역에서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PSI 참여를 공론화하기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PSI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해 온데다 북한의 로켓 발사 등으로 WMD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더욱 높아질 경우 정부가 PSI 정식 참여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연합